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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교사에서 와인 셀러로

나는 다시 를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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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시니어의 삶이 달라지고 있다. 은퇴는 더 이상 끝이 아닌 또 한 번의 출발선이다. 오랜 경력을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며, 일에서 자아를 찾고 관계를 확장하는 신노년 세대. 그들은 나이를 핑계 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이니까할 수 있는 도전을 찾는다.

 

기자는 서울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의 잡챌린지 프로그램을 통해 와인 전문셀러로 첫발을 내딛고, 3개월간 인턴십을 마친 신영숙 선생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34년간 아이들을 가르쳐온 교사였다. 그리고 2024, 교단을 내려놓고 뜻밖의 선택을 했다. 바로 와인 전문셀러라는 새로운 직업에 대한 도전이었다.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전혀 다른 일을.”

 

교육과는 거리가 먼 와인. 왜 이 길을 택했을까.

 

신영숙 선생은 차분하게 말했다.

일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까지 해온 일과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죠. 재미있고, 배울 수 있고, 70세까지도 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에게 와인은 전혀 다른 세계의 언어였다. 하지만 그 낯섦은 오히려 설렘이었다.

 

■ "가르치는 것과 파는 것, 본질은 같아요"

 

표면적으로 보면 교사와 셀러는 완전히 다른 직업처럼 보인다.

하나는 가르치는 사람, 하나는 판매하는 사람.

 

그런데 이 변화가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이 역할 전환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신영숙 선생의 대답은 의외였다.

 

두 직업은 서로 다르지 않았어요. 교사는 학생에게 지식을 설명하는 일을 하고, 와인 셀러도 고객에게 와인을 설명하죠. 저는 설명하는 일을 계속해 온 셈이에요.”

 

물론 낯선 전문 용어들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질 때도 있었다.

품종, 빈티지, 테루아예전과 달리 외우는 것이 잘 안돼 애를 먹기도 했다.

 

그래도 틈날 때마다 와인 라벨을 살피고, 향과 맛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어요. 배우는 게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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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물방울그리고 20년 전의 첫 와인

 

와인과의 첫 만남은 20년 전 어느 식사 자리.

2005년경, 식사 중 와인을 권유받은 경험이었다.

레스토랑의 분위기, 와인을 따르던 웨이터의 손짓, 생소한 용어들전부 낯설었지만 부드럽게 마음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운명처럼 만화 신의 물방울을 읽게 되었다.

 

와인에 대해 문외한이던 주인공이 와인을 매개로 성장하고, 사람을 만나고, 삶을 넓혀가는 장면들이 참 감동적이었어요. 저도 언젠가 와인을 깊이 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 작은 감탄 하나가, 훗날 그의 인생을 바꾸는 씨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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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강점이 되다

 

와인 업계에는 젊은 셀러들이 많다. 60대라서 어려웠을까?

그는 60대라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젊은 매니저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궁금한 점을 물으면 척척 알려주시고, 제가 쉬도록 배려도 해주셨어요. 제가 존중했기 때문에, 저도 선배님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었죠.”

 

매니저의 평가는 더 인상적이다.

고객들이 선생님께 편하게 다가온다라고.

"그래서인지 제게 이것저것 고객을 응대하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중장년 고객과 자연스러운 공감대 형성, 인생의 맥락에서 와인을 이야기할 수 있는 깊이,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대화하는 태도. 이는 나이가 만들어준 특별한 매력이었다.

 

■ 와인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

 

신영숙 선생은 서울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의 잡챌린지 프로그램을 통해 체계적인 준비 과정을 거쳤다. 그저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준비를 도와준 것이다. 와인 기초 지식, 유명 산지의 특징, 품종 분석, 소믈리에 실무까지 8회차 교육을 거쳐 최종 테스트에 합격해야 인턴십이 가능했다.

 

"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서울시니어센터에서 마련한 프로그램 중 와인셀러라는 멋진 기회를 만났어요. 내가 직접 알아보려면 못 했을 텐데, 가르쳐주고 인턴십의 기회까지 주어져서 정말 좋은 기회였죠.“

 

인턴십 동안 수많은 고객을 만났다.

짧은 시음 한 모금에도 인생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

와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마니아들,

기념일을 위해 특별한 한 병을 고르는 사람들

 

그는 그들에게 와인을 권해드렸고, 그들은 자신이 권한 와인을 사 갔다.

 

제가 권해드린 와인을 사 가시면 속으로 맛있게 드셨으면했어요. 나중에 제가 진짜 셀러가 되어 단골이 생기면세상이 훨씬 넓어질 것 같아요.”

 

그는 와인을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라고 표현했다. 교사 시절 지식으로 학생들과 연결되었다면, 이제는 와인으로 사람들과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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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도전이 뇌를 젊게 한다

 

주변의 반응은 뜻밖에도 긍정적이었다.

 

모두 축하해주셨어요. ‘너무 잘 찾은 일이다’, ‘대단하다라며 응원해 주셨죠.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해하셔서 서울시의 시니어 일자리 프로그램을 많이 소개했답니다.”

 

그에게 시니어 일자리는 무엇일까.

 

시니어 일자리는 제2의 인생이에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 다른 관점,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죠.”

 

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사용되는 일이라 힘들다. 하지만 그는 강조했다. "새로운 도전이 뇌를 젊게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조심스럽게 꿈 얘기를 꺼냈다.

 

"강의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강의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와인 전문 강의, 자격증 등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10년 후 70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달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생각이나 행동이 늙지 않는 것.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 34년 교직 vs 3개월 인턴

   달라진 건 대상’, 변하지 않은 건 설명하는 마음

 

서울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의 잡챌린지 프로그램은 시니어에게 새로운 분야 진출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직무교육과 인턴십을 통해 60세 이상 서울시민의 현장 실무 경험과 취업 연계까지 지원한다. 신영숙 선생의 사례는 시니어의 경력이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34년 교직과 3개월 인턴.

겉보기엔 전혀 다른 두 세계지만, 그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학생에게 지식을 설명하는 교사나 고객에게 와인을 설명하는 셀러의 일은 둘 다 설명이 본질이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관계를 만드는 일.

그는 평생 그 일을 해왔다.

단지 설명의 대상이 학생에서 와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34년 교직에서 와인 셀러로. 그 도전의 여정이 우리에게 묻는다.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나이는 정말 한계일까?

 

 

 

그의 답은 명쾌하다. 새로운 도전이야말로 우리를 젊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글·사진 김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