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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2021년 5월 어느 날 기억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50여 년 전 중학교 미술 시간으로 돌아갔다. 책상 위에는 조각칼 몇 개와 도화지, 그리고 손바닥 2배 크기의 동판 조각이 보인다. 난생 처음 접해보는 판화 수업 시간이었고 날카로운 미소를 짓는 조각칼이 무서워 보였지만 미술 선생님의 고운 미소가 좋았기에 기다려졌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판화

여러 가지 미술 분야들이 있지만 요즈음은 게임 디자인부터 삽화, 애니메이션, 게임 그래픽, 게임 프로그래밍 및 웹툰 등 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미술 분야가 대중화를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기초 드로잉과 스케치를 위해 크레용이나 수채화 물감 그리고 유화 물감 등으로 2차원적인 묘사와 채색 중심의 심미안을 추구하거나 요구했다.

판화는 목판, 금속판, 석판 등에 형상을 새기고 잉크나 물감을 칠하여 종이나 천 등에 인쇄하는 회화의 한 장르이다. 똑같은 작품을 다수 만들 수 있는 만화처럼 복제 예술이며 또한 실용 예술이기도 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술 시간에 쉽게 접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약간의 방법만 익히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패브릭 소품을 만들고 실크 스크린처럼 응용해서 상품화하여 다량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북부캠퍼스 공방에서

2021년 5월 10일 판화 수업이 북부캠퍼스 공방에서 시작되었다. 총 4회 차 수업으로 5월 31일까지의 일정이다. 구청이나 동 단위 지자체 교육 프로그램과 일반 교육 센터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강좌라서 그랬는지 나의 눈에 먼저 띄었고 주저 없이 학습 지원 활동 대상 강좌로 콕 찍어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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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투어 드로잉과 힐링

강좌의 구성과 내용만 보면 의아스러운 점이 있다. 판화 작품이나 소품을 제작하는 수업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돌아 본다 해서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0명의 수강생들이 처음 시작한 작업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관찰해서 도화지 위에 컨투어 드로잉(등고선처럼 그리기 시작한 선을 끊지 않고 다 연결해서 그리는 드로잉 기법)을 하는 것이었는데 놀라울 정도의 기막힌 결과들이 도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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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를 개설한 목적이

공방의 작업하기 편리한 넓은 책상 위에서 제멋대로 뒹굴었던 판화 도구들은 제각기 자기 역할을 수행해냈고 한참을 얼굴도 들지 않고 작업했던 수강생들의 얼굴에는 알지 못할 미소가 보였다. 결과물 속의 형상은 바로 자신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강좌를 개설한 목적이 비로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미술 기법인 판화를 이용해서 50플러스 세대들의 지나간 삶을 돌아보게 하고 잠시나마 스스로를 힐링 수 있는 여유를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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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좌에서 무엇을 배웠나?

강좌에 참여한 수강생들의 작업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 분야처럼 몸과 마음을 움직여서 뭔가의 결과물을 도출하고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하고 소통이 되는 시간과 공간을 찾게 되는 것은 무의식 속에 잠재된 자아 찾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강좌에서 무엇을 배웠나?" 라는 상투적인 표현은 그동안 50플러스의 시간 속에서 숱하게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아서 이 강좌를 통해서 무엇을 공감했는지를 물어보았다.

"내 자신을 잘 몰랐고 잊고 살았는데 내 손은 나를 알고 있었네요…”

50플러스의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에 타고난 끼와 재주를 발휘하고 자랑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고,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은 50플러스 사업의 당사자로서, 동시에 수강생으로서 괜찮은 강좌가 있으면 얼마든지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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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강좌에서 수고해 주신 강사님들

엄태신: 2017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과 시각디자인 전공(전문사), 시각예술단체 내내로(NNR)의 소속 작가

정선주: 시각예술단체 내내로(NNR) 대표

 

NNR 소개

NNR(Ne-Ne-Ro, 내내로)은 내내, 항상, 늘이라는 의미를 가진 한국어 방언이다. NNR은 다양성과 분화의 과정으로 뭉쳐진 현대 사회에서 항상성을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들의 구성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NNR은 대도시 안에서 활동하는 동시대 작가들이 가지게 되는 고민과 자기 성찰을 적극적인 소통의 방식으로 제시하고, 동시대 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조사를 기본으로 구조적으로 탄탄한 작업을 진행시켜 대중과의 소통의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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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스케치를 마무리하며

단 4주차, 그리고 하루 2시간의 수업 일정은 늘 1시간 늦게 끝났고 집에서 추가 작업까지 했다고 한다. 작업 공정상 당일의 결과물을 도출하기에는 전체적인 일정 자체가 너무 짧았다는 수강생들의 공통된 의견이 있었다. 학습 지원단으로서 여러 강좌에 참여를 했었는데 이번 강좌처럼 수강생들의 관심과 집중도가 끝까지 유지되었던 사례는 처음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막 오픈해서 큰 걸음을 내딛고 있는 북부캠퍼스에 수강생들이 제작한, 생명력이 가득한 소품들이 전시물로 비치된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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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호 (서울시50플러스 북부캠퍼스 학습 지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