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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짐을 일으킴으로 바꾸는 남자, 은퇴 후 그가 찾은 두 번째 일자리

누군가를 일으키는 일, 최충근 님의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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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세 명 중 한 명은 1년에 한 번 이상 낙상을 경험한다.

한 번의 낙상은 뼈의 골절뿐 아니라, 자신감 상실·우울감·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며 노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위기가 된다.

이러한 사고를 예방하고, 어르신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낙상안전지도사.

 

낙상안전지도사는 일상의 위험을 찾아내고, 예방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최충근 님(69)은 유도의 낙법정신을 바탕으로, 노년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유도에서 배운 낙법은 내 몸을 지키는 법이었지만,

지금의 낙법은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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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도 낙법에서 낙상 예방으로

 

그가 낙상안전지도사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유도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40대 중반까지 도복을 입었던 그는 유도에서 낙법은 안 넘어지는 게 아니라, 넘어지더라도 덜 다치게 하는 기술이에요.”라고 했다. 평생 몸으로 익힌 낙법의 철학이 이제는 어르신들의 낙상 안전과 맞닿게 된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유도를 했어요. 40대 중반까지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도장에서 살았죠.”

 

평생의 일부처럼 몸에 밴 낙법의 철학은, 세월이 흘러 어르신의 안전이라는 새로운 의미로 이어졌다.

 

낙법은 안 넘어지는 게 아니라, 넘어졌을 때 덜 다치는 기술이에요.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누구나 넘어질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죠.”

 

그는 지금도 그 철학을 믿는다.

넘어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힘을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낙상 예방이라고 말이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살고 싶다

 

평생 사업으로 바쁘게 달려온 그는, 은퇴 후 딸 내외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손주 돌봄 담당으로 지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환하게 웃는다.

손주가 제 무릎 위에서 깔깔 웃을 때마다 인생이 참 따뜻하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아이가 자라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자, 문득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이제 나는 뭘 해야 할까?’

그 무렵,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서울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의 낙상안전지도사과정을 알게 됐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내 시간을 써보고 싶다.”

그 말에는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세우려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오래된 바람이 그를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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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었던 나를 다시 찾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래된 기억 하나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날, 진흙탕에 미끄러져 급류에 휩쓸릴 뻔한 친구를 본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때 느꼈던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감정이 제 인생의 뿌리가 되었어요.”

 

그는 그 감정을 잊지 않았다.

성경 속 너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에 , 여기 있습니다.”라고 응답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곁에서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왔다.

 

그 마음은 그를 빈첸시오 봉사자, 사회복지사, 노인심리상담사로 성장시켰고,

이 모든 경험이 낙상안전지도사로서의 기반이 되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낙상예방 활동을 하던 중, 그는 한 어르신을 만났다.

사기를 당하고 쓰러졌어요.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손가락질받고창피해서 밖에 나가질 못해요.”

그 말을 들은 최충근 님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에게 낙상예방은 단순한 안전 활동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회복의 과정이었다.

손을 내밀면, 마음이 일어섰다.

넘어진 것은 몸이 아니라 관계였다는 걸, 그는 그 현장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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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배우는 따뜻한 안전

 

2025년 여름, 그는 광진구의 독거노인과 복지 수급자 120여 가정을 직접 방문했다.

좁은 방 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미끄러운 바닥엔 매트를 깔고, 욕실 문 앞에는 안전 손잡이를 설치했다.

이제는 넘어질 일이 없겠네요.”라는 어르신의 말 한마디에 땀이 눈물처럼 시원하게 흘렀다.

 

때로는 문전박대도 당했다.

괜찮아요, 안 넘어집니다.”라며 문을 닫는 어르신도 있었지만,

며칠 후 그 매트 덕분에 안 미끄러졌어요. 고마워요.”라는 전화가 오면

그의 하루는 환해졌다.

 

낙법이 내 몸을 지키는 기술이었다면,

낙상 예방은 사람의 마음을 지키는 기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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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법으로 시작해, 낙상 예방으로 완성하다

 

지금 그는 서울시와 해피에이징, 병원 기관의 협력으로 70~80대 어르신 대상 균형·근력 운동을 지도하는 낙상안전지도사 보조강사로 일한다.

지난 10월에는 드디어 정식 낙상안전지도사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유도에서 낙법을 배워 내 몸을 지켰듯, 이제는 타인의 안전을 지키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하루는 여전히 분주하다.

운동기구를 챙기고, 수업 전 미끄러운 바닥을 닦으며,

어르신들에게 균형은 나이보다 마음이 먼저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서는 것

 

최충근 님의 인생은 넘어짐을 통해 완성된 이야기다.

넘어짐을 막는 것은 단순히 근육의 균형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마음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손은 이제 어르신의 손을 붙잡는다.

그 손을 잡는 순간, 두 사람은 함께 일어선다.

그는 오늘도 말한다.

 

진짜 예방이란, 누군가의 손을 잡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글·사진 고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