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세대에게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을 색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연인이나 친구와 같이 걷던 추억의 길이기도 하다. 성균관대 명륜당의 은행나무 밑에서, 남이섬의 은행나무길에서 사랑과 우정을 키워 왔었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멀리 아산 현충사 곡교천 은행나무길을 찾아가기도 하면서. 

 

노란 은행잎을 책 사이에 끼워 두고 릴케의 가을날을 읊조리기도 했다. 시인 괴테는 연인 마리아나 폰 빌레머에게 은행잎을 곱게 붙여 사랑의 편지를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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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사길 ⓒ 아산시 문화관광

 

그런 은행나무가 냄새가 싫다고, 잎이 노랗게 변하기도 전에 두들겨 맞는다. 한때 가로수에 달린 은행을 주워가면 절도죄로 처벌받는다고 엄포를 놓던 시절도 있었건만. 지금은 은행이 익기도 전에 두들겨 패서 떨어뜨린다. 민원이 심해서 해야 한다나. 은행나무는 슬프다. 한때는 가로수에 최적이라고, 이리저리 떠받들고 심더니, 지금은 싫다고 외면이다.

 

5060세대는 이 나라가 한창 발전하던 시기에 몸 사리지 않고 일했다. 워라벨은 꿈도 꾸지 못하고, 개념도 없던 시절이다. 무더운 여름을 견디고, 태풍을 맞으면서 꿋꿋이 버텨 노란 옷을 풍성하게 입고, 열매가 가득한 은행나무처럼 세월을 살아왔다. 이제는 세월이 변해 고루한 라떼 인생으로 외면받는다.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은 이유가 있다. 은행나무는 스스로 벌레로부터 보호하는 물질이 있다. 이런 이유인지 신생대부터 살아온 유일한 식물로 살아있는 화석이다. 병충해에만 강한 게 아니다. 지구 환경이 6,500만 년 동안 변화하는 속에서 적응해온 대단한 나무이다. 매연과 분진 등 공해에도 강하다. 이산화탄소와 아황산가스 등 유해 물질을 잘 빨아들이는 공기 정화 식물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가로수 총 30만 5,000그루 중 은행나무가 10만 6,000그루로 약 35%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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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가로수 

 

그런데 은행나무에 대한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떨어진 은행 열매가 내뿜는 악취로 매일 전화가 온다. 각 구청은 지금 은행과 전쟁을 하고 있다. 막대기로 때리고, 굴착기로 나무를 뒤흔들어 잎이고, 열매고 사정없이 떨어뜨린다. 그동안 매연을 잘 흡수해준 수고는 언제였냐는 듯이. 이 나라의 발전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5060세대를 라떼 세대로 치부하듯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이다. 수령이 1,100년 되는 천연기념물이다. 통일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이 심었다는 전설의 나무이다. 천년을 살아온 고목이지만, 지금도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다. 조선 세종 때 정3품 벼슬까지 받아 기품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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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

 

여기서 잠깐 궁금해진다. 은행잎은 왜 노랄까. 은행잎에는 엽록소와 플라보노이드가 있다. 플라보노이드는 엽록소의 광합성을 방해하는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고마운 역할을 한다. 플라보노이드는 노란색인데, 여름에는 엽록소가 워낙 강해 녹색으로 보이다가, 기온이 내려가면서 엽록소 분자가 파괴되어 녹색을 잃는다. 그러면 같이 있던 노란색의 플라보노이드만 보이게 된다. 

 

플라보노이드는 항균, 항암, 항바이러스, 항염 작용을 하는 걸 학자들이 밝혔다. 제약회사들이 징코민 등 여러 이름으로 은행잎 추출물을 정제하여 혈액 순환, 치매 예방약으로 판매하고 있다. 가을에 특히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를 올라가는 길은 은행나무 길이다. 여름에는 땡볕을 막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에는 푸른 하늘에 노란 색칠을 한다. 중부캠퍼스를 향하는 5060세대도 여름에는 고개를 숙이고 헉헉거리며 올라가지만, 가을이면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서 사뿐사뿐 올라간다.

 

떨어진 은행 열매가 냄새를 풍기지만, 여기서만은 은행나무를 후려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민원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배려 아닌 배려일까. 여기도 예외는 없다. 긴 세월을 같이 살아온 동지가 매 맞는 것 같아 보는 심정이 졸여온다. 

 

 

50+시민기자단 남영준 기자 (bransontik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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