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랄 적에 어른들은 이러셨습니다. “글을 쓰면 빌어 먹는다는데...” 이러시기도 했습니다. “글을 좋아하면 가난해 지느니라.” 또 있습니다.

“글에서 돈이 나오니, 밥이 나오니.”

 

저는 그 말이 그렇게 싫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97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가 압축성장, 고도성장의 궤도에 막 올라서려 하던 시기입니다. 그러니까 어른들 말씀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글에 매달리지 말고 우리 경제를 일으킬 무슨 전도유망한 다른 일을 도모해 보라는 것이었겠습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그 말이 싫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어른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말과 글의 세계에 빠졌습니다.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렇게 돼버렸습니다. 글로 밥을 벌고 돈을 벌었습니다. 그나마 그 알량한 재주밖에는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어쨌든 그 밥으로 부모님 공양하고, 새끼들을 키웠습니다.

 

 

돌아보면 용케도 견뎌왔다 싶습니다. 도망가고 싶었던 때가 왜 없었겠습니까. 30년 가까운 세월에 등줄기가 서늘해지던 순간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지겨울 때도 있었습니다. 글도 뭐도 안 될 때가 많을 때면 지독한 자기환멸과 분노, 자괴감과 울분에 일을 그만 작파하고 싶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만두지는 못했습니다. 밥 때문이었습니다.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 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나무, 2003

 

그러나 1년 여 전, 그렇게 언제까지고 지속되리라 믿었던 밥 버는 일터가 사라졌을 때, 그때의 당혹감과 두려움을 어떻게 표현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신분보장이 안 되는 별정직이어서 언제라도 그만두라 해도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막상 떠나려니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여 복잡했습니다. 무엇보다 여기서 그만두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습니다. 앞서 인용한 김훈의 글이 아니더라도 밥이란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인데, 그 밥이, 정확히는 그 밥을 버는 일자리에서 쫓겨나게 된 사태에 그저 멍할 따름이었습니다. 당장 밥줄이 끊겼습니다. 제 죽는 날까지의 수많은 끼니는 그렇다치고 아직 홀로 서지 못하는 자식들의 끼니는 누가 보장해 주겠는지요. “밥이 하늘이다”는 말이 이토록 절실해 본 적도 없지 싶습니다.

 

평생 책 등속을 읽고 글이나 쓸 줄 알았던 제 앞에 놓인 미래는 암담, 암울,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자 먼저 정신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울증, 공황장애에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았던 여러 병증이 찾아왔습니다. 이러다 죽겠다 싶었습니다. 여기에 이르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 죽을 수는 없지요. 역시 가족들의 밥 때문입니다.

 

술병은 잔에다 /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 속을 비워간다 //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 길거리나 /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 문 밖에서 /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 나가보니 /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 소주병, 소주병실천문학사 2004.

 

밥을 벌어온 일터에서 밀려나 빈 시간을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부쩍 혼자 밥 먹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요즘은 직장인들도 혼밥-혼자 먹는 밥을 이렇게 말한답니다.-, 혼술-이건 혼자 마시는 술이라지요.-을 즐긴다지만 밥이나 술이나 여럿이 먹어야 제 맛일 터인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끼니때를 맞아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면 참 난감합니다. 음식을 정하는 것은 차치하고 혼자 들어갈 만한 식당도 많지 않은 까닭입니다. 아예 점심시간에는 1인 손님을 받지 않는 곳도 있고, 찌개류 등속을 2인분 이상만 주문받는 곳도 있습니다. 그래도 잘 찾아서 밥을 먹긴 먹어야 합니다.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황지우, 거룩한 식사,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 1998

 

"먹는 일"이 "거룩"할 것까지야 있겠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보릿고개나 극도의 배고픔을 경험하고 또 통과해온 우리, 혹은 우리 윗세대에게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밥은 아직도, 여전히, 죽기 일보직전까지, 거역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는 행위는 내 몸에, 더운 목숨에, 한 세상 떠넣어주는 일이며, 동시에 어린 것들의 미래를 담보하는 행위인 까닭입니다. 어찌 거룩하지 않고, 어찌 눈물겹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거듭 돌아보면, 제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삶의 길은 온전히 밥을 찾아 떠돈 것에 지나지 않는 듯합니다. 그 밖의 것들은 다 밥을 얻기 위한, 밥에 복무하기 위한 부수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평생 ‘돈도 밥도 아니 나오는’ 말과 글로 밥을 번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가야할 길은 멀고 여전히 밥은 벌어야 합니다. 밥에는 대책이 없고 밥을 버는 데에도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이 대책 없는 밥이, 저를, 또 대책 없이, 내모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