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이 시작된 그녀들

“그래! 나 갱년기다!”

 

 

“엄마 요즘 갱년기야? 왜 이렇게 예민해?” 이 한마디가 얼마나 서러운지. 월경을 시작하고 겪는 내내 조금만 날카로워도 ‘생리하느냐’는 핀잔을 듣던 게 엊그제 같은데, 월경이 끝나버리니 이번에는 갱년기라고 타박을 듣는 중년 여성들. 한국 여성의 평균 폐경 연령은 47.6세. 월경이 완전히 중지되는 폐경 전후에 갱년기가 시작된다. 안면홍조, 발한, 인지기능저하, 근육통, 정서변화, 수면장애 등 각종 신체 및 심리 변화를 급격하게 겪는 이 시기는 출산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그저 ‘참는 게 능사’라며 무작정 인내심을 발휘하는 여성들이 있다. 여성의 제2인생이 시작되는 시기, 시간에 맡겨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갱년기에 대해 알아보자.

 

 

 

 

 

월경 끝나야 갱년기? 불규칙하면 의심해야

많은 여성이 월경이 끝나면 그때부터 갱년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좁은 의미의 해석이다. 갱년기는 폐경이행기부터 폐경까지 아우르는 개념으로 크게 해석해야 한다. 난소 노화에 의해 배란 및 난소 호르몬 분비가 저하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마지막 생리 후 1년까지의 기간을 ‘폐경이행기’라고 하며, 무월경이 1년간 지속되는 상태를 ‘폐경’이라고 한다. 보통 폐경이행기에는 생리가 불규칙하게 나타난다. 난소의 노화는 여성호르몬 결핍을 가져오고 배란 촉진을 멈추게 한다. 여성호르몬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지칭하는 말로 난소·부신피질·고환·태반계 등에서 생성되며 월경을 시작하는 2차 성징을 발현하고 월경주기, 여성생식기운동, 수정, 착상, 초기배의 영양 공급에 맞는 환경조성 등에 관여한다.

 

폐경으로 인해 여성호르몬이 결핍되면 안면홍조, 발한 등이 가장 많이 나타나고 심하면 피로감, 불안감, 우울, 기억력 장애 등도 동반된다. 비뇨생식기계의 위축에 따른 증상으로 질이 건조해지고, 부부관계 시 통증이 심해지며(성교통), 생식기 면역 저하로 질염, 방광염, 배뇨통, 급뇨 등의 증상도 나타난다. 또 피부 및 관절계에 변화가 오며 골다공증 진행이 빨라지고 피부가 건조하며 위축될 수 있어 노화를 체감하기 쉽다. 특히 급성으로 여성 호르몬 결핍이 나타날 경우 이러한 증상들은 폐경 약 1~2년 전부터 시작되어 폐경 후 3~5년간 지속될 수 있다.

 

 

폐경은 제2의 인생 준비하라는 신호

폐경은 질병이라기보다 나이가 들면서 난소의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신체적 변화다. 물론 젊은 나이에 질병으로 양측 난소를 모두 제거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종종 병원에 내원하는 여성분들 중에 “이제 여자로서 끝났네요….” 하며 폐경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폐경은 난소에서 배란 및 여성호르몬 생산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일 뿐 여성으로서의 삶이 끝난 것은 아니다.

 

18세기 무렵까지만 해도 여성은 살아있는 동안 출산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일이 허다했다. 평균 수명이 짧았던 탓이다. 하지만 이제 폐경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하라는 신호로 생각하는 게 맞다. 병원에 내원한 환자 중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그분은 오히려 폐경 이후로 삶이 더 즐겁다고 한다. 폐경과 함께 갱년기 증상이 시작됐을 때 ‘나도 이제 늙는구나’ 싶어 초라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가족들에게 “나 폐경이 왔고, 갱년기가 시작됐다. 이제 밥은 각자 알아서 챙겨먹고 청소도 당번을 정해서 하자. 당분간 나만 생각하고 나를 제일 사랑하며 살겠다”고 선포했다. 전업주부의 휴업을 선언한 셈이다. 가족들에게 이해를 받기 위해 폐경과 갱년기에 대해 공부하고 설명하다 보니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이제야 찾은 듯 당당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동안 그녀는 엄마와 아내라는 입장에서 끝없는 가사노동에 시달렸고 마땅히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폐경이 그녀를 변화시켰다. 몸이 바뀌니 욕구의 방향과 힘도 달라졌다. 그녀는 모든 시간을 자기 중심으로 썼다. 친구들과 드라이브를 하거나 도자기 공방에도 다니고, 요가 자격증을 취득해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꿈도 생겼다. 폐경 이전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몸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몸이 건강할 때 가능한 이야기다. 아프면 말짱 도루묵이다. 폐경기에는 돈보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걸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따라서 폐경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하는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널뛰는 호르몬 분비를 안정시켜주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호르몬제’ 정말 만능일까?

폐경과 갱년기를 겪는 사람들은 쉽게 호르몬제 주사 요법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단 하나의 치료법이란 없다. 호르몬제를 젊음을 찾아주는 만능 약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장기간 복용할 경우 심혈관 질환, 유방암, 뇌졸중 등 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이 있으므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한방에선 무너진 신체를 되돌리기 위한 근본적인 호르몬 균형 치료에 집중한다. 자궁과 난소의 떨어진 기능을 회복시켜 갑작스러운 폐경을 막고 폐경 지연을 위한 보약을 처방하거나 건강한 자궁 환경을 위해 자궁과 난소를 담고 있는 골반 틀어짐을 개선하기도 한다. 특히 하복부 온열 요법은 적정 체온을 찾아주고 자궁 혈류 순환을 높이며 원활한 노폐물 배출과 면역력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과 적절한 운동, 건강한 식단이 중요하다. 추천 음식으로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풍부한 콩과 양배추가 대표적이다. 오징어와 홍합은 피를 생성해 생기를 돌게 하고 맑은 피를 보충한다. 굴은 혈중 콜레스테롤의 양을 줄여주며 관상동맥경화증과 고혈압, 혈전을예방해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윤정선 윤스한의원 대표원장
사진 윤스한의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