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얽매임에서 잠시 벗어나기

이제 갓 퇴직을 한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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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마치고 퇴직하는 이들에겐 늘 몇 가지 고민이 따른다. 퇴직 이후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중 어느 하나 답 구하기가 만만치가 않다. 왜냐하면 이제까지는 자신에게 그런 본질적 질문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장인으로서 조직 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그것으로 평가 받아 왔고 결과가 좋은 경우 동료보다 좀 더 빠른 승진이라든지, 조금 더 나은 성과급을 받거나 또 그 반대의 경우 낙담을 하면서 제도를 탓하거나 씁쓸함을 느끼거나 하면 될 일이었다. 불만이 심하고 그것이 지속되는 경우 사표를 내고 빠른 퇴직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문제는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퇴직을 하게 되는데 그 이후가 여의찮은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선택으로 모든 일상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가장 자유로운 선택의 시간이 자신에게 주어지지만, 그 선택이 녹록지 않은 것이다. 작가 에리히 프롬의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시작된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영화 <박하사탕>의 대사가 자신의 것으로 다가오는 거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퇴직 후 나온 세계가 자신에게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고, 자신을 이곳으로 오라 하고 기다려 주는 곳이 없다는 현실이다. 어디든 또 소속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이 나온 공간에 머물기 위한 것보다 수십 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웃는 얘기로 나오는 순간 허허벌판의 아무도 없는 지옥이야, 그곳이 천국이었지가 된다.

 

다 그런 건 아니다. 통계적으로 대부분 그런 상실감을 느낀다는 거다자기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거지. 직장 내에서 자신이 어떤 사유로 자리를 비우고 복귀한 경우 일은 잘 진행되고 심지어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어 있는 것을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조금 숨 고르기를 하면서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는 경우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도 그리 쉽지 않다. 이런저런 진단지나 성향 검사 등을 통해 자신이 몰랐던 자신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그 답을 찾더라도 그 결과가 자신을 어디로 바로 데려가는 것은 아니고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극히 예외의 경우 한두 번의 선택으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는 경우도 있긴 하다.

 

나는 퇴직하면 이런 것을 할 거야”, “이런 것은 정말 내가 잘 할 수 있어에 대한 답을 갖고 출발한 이들도 직접 자신이 그 세계로 들어가 그것을 하면서 느끼는 실망감도 크다. 먼저 그 세계에 들어와 고수의 반열에 들어와 있는 이들이 지천이라는 것을 눈으로 목도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딱 현실이다.

 

 

 

그런데 답은 여기서부터이다. 지루하게 조금은 절망적으로 얘기된 전자의 것들은 대부분 오랜 직장 생활의 환경에서 고착된 자신의 틀을 벗어내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이다위 세 가지에 대한 질문과 고민,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답을 구하는 시간은 퇴직자가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지금껏 생활을 위한 의무적 직업인 (나는 이걸 자신의 선택이 아닌 옵션에 의해 걸을 수밖에 없었던 길이라고 늘 말한다. 물론 다 그렇단 건 아니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왔다는 거다)에서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진정한 자유인의 선택을 하기 위한 여유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예전 직장인으로 어쩔 수 없이 촘촘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시간에서 이제 설렁함의 시간을 갖고 다시 충전의 시간을 가져 보는 거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자신이 잘하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의 시간, 그것을 거친 후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길의 답을 찾는 가장 빠른 길이다하여 이제 누구에겐가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 이런 일을 하게 됐어에 대한 조급증의 답이 아니라 나 이제 내가 잘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의 답을 말해야 한다위 두 가지 답의 시차는 돌아보면 그리 크지 않다. 이제 너무 급하지 않게, 시간에 쫓겨 선택하지 말고 조금은 여유롭게 자신을 찾아볼 일이다.

 

퇴직한 지 얼마 안 된 친구에게 절대 이런 말 하지 않기를 권한다.

퇴직했다며? 뭐라도 해야지, 자리 빨리 잡아야지

 

최근 한 투자회사에서 경영대표로 승진한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남들 다 퇴직하고 무얼 할까 고민 하는 시기인데 그 늦은 나이에 어떻게 CEO의 자리까지 올랐냐?”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느리게 걸었어, 천천히 한 발짝씩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try3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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