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식을 묻는다. 주연이냐, 조연이냐?

우리는 자신에게 주인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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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나에게 물었다. “! 난 늘 자신이 없어. 왜 그런지 몰라. 형은 당당해 보이던데, 난 늘 위축되어 있는 것 같아. 나름대로 전문 영역의 길을 걷고 공부도 했는데

 

후배에게 난 그렇게 말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라. 그냥 갖고 있는 걸 그대로 표현해. 주위를 너무 의식하지 말고. 그러면 좀 나아질 거야. 나아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생길 거고. 자신감은 연습의 결과야

 

한참 후에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 내가 주재하는 발표가 있어. 형이 좀 와줬으면 해서난 그날 연차를 내고 후배가 좌장을 맡은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늘 긴장하여 제 실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웠던 후배는 그날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고 있었다. 놀랍게 변해 있었고 자신감은 물론이고 여유도 있었다. 가끔은 청중석에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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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무대를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그날 후배와 나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한잔 술을 나누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물었다. “짜식! 많이 달라졌는데, 진행도 매끄러웠고 전체 흐름도 참 좋았어. 언어도 자신감이 넘치고, 그 사이에 뭔 변화가 있었던 거냐?”

 

후배가 말했다. “형과 만난 이후 나 자신을 한번 돌아봤지.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하고 말이야! 생각해보니 답은 간단했어. 내가 상황을 늘 피했기 때문이란 걸. 그게 길게 쌓인 거지. 내가 해야 할 것을 남에게 맡겼던 거야. 형이 말한 연습의 결과라는 말이 마음에 훅 들어왔어. 한동안 의도적으로 피했던 나의 역할을 내가 한다고 자원했지. 그랬더니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어. 자신감도 생기고이후 후배의 행보는 말하지 않아도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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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무대는 크고 또 넓다.

 

 

한 끗 차이라는 말이 있다. 된 것과 안 된 것, 이룬 것과 못 이룬 것, 자신감과 패배감. 이 간극의 다리를 건너는 것은 자신의 발걸음에 달려 있다. 앞으로 향하느냐! 뒤로 물러서느냐! 이다. 이 한 끗의 차이가 세상을 바꾸게 한다. 아니! 자신을 바꾸게 한다.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무대의 중앙에 서야 하는 거다. 무대를 피하는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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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살기

 

 

학창 시절 읽었던 책 중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있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만 한다.” 인구에 회자 되는 이 글귀를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할까 말까, 그러면 해라. 후회하지 말고. “그때 할걸하지 말고.

 

! 다 아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내가 그렇게 걸어왔으니까! 지금도 계속 그러하니까! 내 삶의 궤적이 그러했으니까!”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안다. 삶을 나의 것으로 가져가느냐, 아니면 묻혀 가느냐? 내 일처럼 하느냐, 남의 일처럼 하느냐? 답은 자신이 찾을 일이다. 주연으로 사는 삶과 조연으로 사는 삶은 다르다. 그렇다고 조연이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주연이어야 할 때 주연으로 나서야 한다는 거다. 무대를 피하지 말고. 그래야 웰-비잉이 되고 웰-다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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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길은 늘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

 

 

오늘 아침에 받은 글이다. (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이하 생략)

 

그러니 자신에게 때때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물어보라. 살아 있는 동안 지금 넌 주연이냐? 조연이냐? 50플러스 세대의 삶에도 이 물음은 끊임없이 유효하다.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try3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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