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있을 거야, 하쿠나 마타타의 세상

막연히 그곳,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 ‘만’ 했었다. 겅중겅중 기린이 걸어가다 나뭇잎을 뜯어먹고 뚜뚜 코끼리 소리가 울리고 수천 마리의 스트라이프 무늬 얼룩말이 뛰어다니는 옆으로 수만 마리의 누 떼가 물속으로 뛰어들고 깜짝 놀란 듯 미어캣이 얼굴을 내미는 세렝게티 초원, 킬리만자로 숲 속, 케냐 잠비아 모잠비크 콩고 마다카스카르 탄자니아 같은 이름의 나라들, 그저 우리가 아프리카라고 통칭해 부르는 멀고 낯선 나라들로의 여행.

너무 높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이 사는 땅이 가없이 펼쳐지다가 사람 따위, 집 따위 보이지 않고 거친 산맥과 굽이치는 바다가 모형처럼 작아지다가 이내 구름과 별빛 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비행기를 타고 종아리 저릴 만큼 오래오래 가야 하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만! 꾸었다. 동물의 왕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라이언 킹 같은 다큐나 사진, 영화를 보면서 아주 막연히.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계획 같은 것은 세우지도 못한 채로. 더 나이 들기 전에 힘 빠지기 전에 갈 수 있다면, 어린 아이가 꿈의 빈 칸에 세계일주란 단어를 써넣듯이 언젠가는 아프리카로 가고 싶다고 듣는 이 없을 때도 중얼거렸었다. 다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노 프라블럼’의 긍정의 땅으로 잠시라도 공간이동 하고 싶었다.

 

<하쿠나마타타를 부르는 심바 티몬 품바>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현재 나이 오십을 넘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조용필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숱하게 불러댔다. 회식 2차로 간 노래방에서 누군가는 취해 졸고 누군가는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가 아니라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다’고 읊조리고 누군가는 목이 터져라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소리 질렀다. 마지막 구절은 한꺼번에 와와 같이 불렀다.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그런 수많은 밤을 함께 한 사람들 누구도 킬리만자로를 가본 적이 없었고 그 누구도 굶어서 얼어 죽는 표범을 진정으로 꿈꾸진 못하면서.

스와힐리어 ‘하쿠나 마타타’는 양 손에 아이를 하나씩 잡고 들어간 극장에서 배웠다. <라이온 킹>에서 심바와 티몬과 품바가 탄자니아 세렝게티 초원을 춤추듯 걸어가며 부르는 그 하쿠나 마타타를 아이들보다 내가 더 좋아했다. 가사도 훌륭하지 않은가.

Hakuna Matata! What a wonderful phrase. Hakuna Matata! Ain't no passing craze.

It means no worries. For the rest of your days. It's our problem-free philosophy.

‘다 잘될 것이다, 노 프라블럼’ 라이온 킹에선 ‘근심 걱정 모두 떨쳐버려’로 나왔는데 요즘 핫한 걸로 최고봉인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노래 ‘상남자 Boy In Luv’에도 하쿠나마타타가 나온다. 왜 내 맘을 흔드는 건데, 라고 따지면서 어떻게 고백할까 고민하면서, 가나다라마바사아 하쿠나마타타 라고.

 

자연이 압도적으로 크고 장엄해서 인간이란 존재가 하염없이 사라지는 화엄의 환경 속에 넣어두고 싶다는 꿈만 꾸고 있었는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한 일인지, 어느 날, 홀연히, 탄자니아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 티켓이 아프리카 하늘에서 그냥 턱 떨어졌다.

(이 여행엔 가늘게 이어지던 스리랑카에서의 코이카 인연이 기적처럼 결합했다. “아이들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최선을 다하는 NGO” <국제아동돕기연합UHIC-United Help for International Children-www.uhic.org>의 탄자니아 지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귀운은 탄자니아 아동의 건강과 안전을 도모하는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중에 탄자니아 아동의 독서와 교육까지 아우르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탄자니아 아이들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떤 책이 필요한지, 자신의 나라 말인 스와힐리어로 된 책이 충분한지 영어로 된 책들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도서제작과 출판, 유통을 조사하는 활동에 전문가가 필요하던 차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일했던 데다 코이카 봉사활동경험이 있고 외국에서 잡지를 만들어봤던 나를 그 역할로 초빙하게 되었다.)

 

다레살람, 키고마, 탕가, 이링가, 도도마, 아루샤, 그리고 잔지바르... 낯선 이름을 외우며

“아프리카에 간다.”고 쉽게 퉁 쳐서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델, 방송인인 ‘아프리카 사람’ 덕분에 알았다. 아프리카는 지구에서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이고 50개가 넘는 나라가 있다고. 아시아 대륙에 수십 개의 나라가 있는 것처럼 자신들은 그냥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고 나라가 따로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아주 어릴 적에 ‘아프리카 토인’이라고 쓰인 인종차별적 책을 읽었던 기억도 났다.

탄자니아 케냐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콩고민주공화국 앙골라 나이지리아 수단 보츠와나 라이베리아 세네갈 니제르 알제리 모로코 마다가스카르... 아프리카의 나라들 이름을 불러보았다. 지구 6%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대륙 아프리카, 육지면적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아프리카, 아시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대륙. 공부를 시작했다. 왜 나라들이 금을 그은 듯 명확하게 나뉘어 있는지, 같은 종족인 마사이가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에 흩어져 살고 있는지, 여성할례는 어떻게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지, 왜 공용어로 영어와 프랑스어가 쓰이고 있는지, 자기 나라 말들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잔지바르가 어떻게 탄자니아가 되었는지 책을 읽고 전래동화를 찾아보고 다큐를 보고 인터넷을 뒤졌다. 스와힐리어를 아프리카 모든 나라는 쓰는 언어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유일하게 알고 있던 스와힐리어 하쿠나 마타타도 케냐에서 쓰이는 말이고 탄자니아에선 ‘함나 시다!’라고 하는 것을 알았다.

 

카리부 사나, 은주리 사나, 탄자니아 내 이름은 은주리

사막의 공항 아부다비Abu Dabi를 경유하여 다레살람Dar es Salaam으로 가는 티켓을 받고 서빙고동에 있는 탄자니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고 국제진료센터에서 황열병, 장티푸스 주사까지 맞고 나니 먼 탄자니아 지부에서 이제 “카리부 사나 할 수 있겠네요” 했다. 카리부karibu는 welcome, 사나sana는 very much의 뜻이고 은주리 사나Nzuri sana!는 정말 좋다는, 만사 오케이라는 뜻이다. 모든 것이 ‘생전 처음으로’ 만 이루어진 여행이 시작되었다.

타고 갈 비행기는 에티 하드Etihard Air항공, 인천에서부터 동행할 사람은 ‘90년 생 김모모씨.’ 내 딸과 나이가 같은 청년, 영 프로페셔널이란 이름의 직책이었다. 그의 엄마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 말이 많지 않고 피부가 희고 예의가 엄청 바르고 국문학을 전공한 이 시대의 드문 청년 김모모씨와 열 시간을, 아부다비까지 날아갔다. 새벽 1시 출발이어서 창밖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바이 공항만큼 크고 넓은 아부다비 공항에서 10시간 동안 구겨진 다리를 잠깐 펴고 다레살람 공항으로 가기까지 다시 여섯 시간을 공중에 떠 있었다. 다레살람 공항이름은 2005년 10월 탄자니아 초대(初代) 대통령을 지낸 정치가 줄리어스 니에레레(Julius Nyerere, 1922–1999)의 이름에서 따왔다. 공항 코드는 다르 DAR. 다르 에스 살람이니 다레살람이니 하는 긴 단어도 그냥 다르라고 불렀다. 다레살람은 1862년 잔지바르 제국의 술탄이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붙인 이름인데 ‘평화의 항구’라는 뜻이다.

거의 하루 만에 중력이 작용하는 땅을 밟고 아프리카, 아니 탄자니아의 햇볕을 받으며 탄자니아 경제수도라 할 다르 시내를 지나 바닷가 근처 마사키Masaki로 향했다. 택시잡기는 여행 내내 완전히 ‘우버’ 앱을 이용해서 이뤄졌는데 낡았어도 택시인지라 에어컨 덕분에 아프리카 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누가 아프리카가 항상 덥다고 하던가요? 아프리카도 추울 때는 아주 춥답니다.” 아무튼 다레살람은 치안이 좋지 않다고 했다. 바깥공기를 맡아 보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고 싶어 창을 열려는 손짓은 제지되었다. 택시 창문을 여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시내 거리를 여자! 혼자! 외국인!이 걷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 했다. 소매치기, 뒤통수 치고 물건 뺏어가기, 일종의 성추행은 다반사라 했다. 일전에도 혼자 걸어가던 일본 여성이 뒤통수를 맞고 가방을 뺏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다가 다시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주며 다레 살람의 어떤 거리도 혼자서는 걷지 말라고 했다. 거리에 물병 몇 개와 주스 몇 병을 진열해놓은 매대가, 바나나를 그림처럼 진열해 놓은 과일 가게가, 붉은 천의 롱스커트 같은 전통 복을 입은 마사이 사람이 지나갔다. 온통 노랗고 빨갛고 파란 원색의 옷들을 떨쳐입은 여자들도. 얼굴도 몸도 말 그대로 진정 검은 사람들이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2년간 살았던 스리랑카 사람들과 비슷해보였고 풍경도 물건도 거의 같아서 저 순해 보이는 이들이 여행자를 해할 리는 없다고 혼자 생각했다.

첫 숙소는 마사키 해변, 인도양 바다와 면해 있는, 조그맣게 튀어나온 관광지였다. 한 눈에 바다와 그 바다 입구 항구에 떠 있는 배들이 환상처럼 보이는 한인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입구에는 입주민들이 들고날 때마다 문을 열고 차 안을 들여다보는 수위가 서너 명 상주하고 있었다. 바다를 향한 창은 크고 베란다가 넓은 숙소에서 첫 숨을 들이쉬고 슬립웨이 쇼핑센터Slipway로 나갔다. 슬립웨이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 했다. 서양인들이 유럽 여느 노천카페에서처럼 바다를 앞에 두고 앉아 맥주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쇼핑센터 뒤편으로 조그만 아케이드가 있어 팅가팅가(탄자니아 전통그림)와 목각인형, 탄자니아 돌로 만든 액세서리를 팔고 있었다. 슬립웨이에서만 치안이 좋다고 했다.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부드럽고 평화로워서 여기가, 아프리카인가, 탄자니아가 맞나 싶었다. 예쁘게 꾸며놓은 서점은 오로지 서양 관광객만을 위한 곳인지 온통 영어로 된 책들만 가득했다. 스와힐리어 책은 외국 봉사단체 로고를 붙인 얇고 작은 몇 권이 전부였다.

배를 타면 ‘내 심장을 여기 두고 간다’라는 뜻의 바가모요Bagamoyo에 가서 옛 흑인노예시장과 아랍 상인들의 주택이 남아 있는 스톤타운 거리를 볼 수 있다고 들었다. 바가모요에서 1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휴양지 레이지 라군Lazy Lagoon에 가면 스노클링, 세일링, 카약킹 등 해양 스포츠를 할 수 있다는데, 그곳에 갈 시간은 계획에 들어있지 않았다. 다레살람에서는 오직 슬립웨이만이 안전한 장소였다.

 

<다레살람 흔한 바닷가>

 

침팬지의 어머니 제인 구달이 살던 곳, 키고마. 그리고 바다만큼 넓디넓은 탕가니카 호수

작년 이맘때쯤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으로 제인 구달(Dr. Jane Goodal을 만나러 달려갔었다. 나이 들었으니 제인 구달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그녀나 나나 마지막일 것 같아 날짜를 여러 번 확인하고 새로 생긴 지하철 노선을 찾아 헤매면서 만나러 갔으나,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제 시간에 맞춰 헐레벌떡 도착해 입구에서 물으니 제인 구달 강연은 전날 이미 끝났다고 했다. 날짜의 완벽한 착각이었다. 어떤 기회는 이렇게 다시 오기도 한다. 제인 구달이 처음 탄자니아에서 침팬지 행동 연구를 시작한 키고마가 운 좋게도 내가 조사활동 할 장소로 정해져 있었으니까. 제인 구달은 거기 키고마에 없다 해도 인연은, 이렇게도 이어지는 기적을 낳는다.

탄자니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UN의 영국 신탁통치령이던 탕가니카Tanganyika와 1890년 이후 영국의 보호령이었던 잔지바르Zanzibar가 1960년대 초에 각각 독립한 후, 1964년 합병한 나라다. 그 탕카니카 대륙의 가장 긴 탕가니카 호수가 키고마에 있다. 탄자니아의 면적은 남한보다 거의 10배가 크다. 어차피 다 못 가볼 것은 명약관화한 일,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 다레살람에서 콩고 국경 근처 키고마를 가려면 비행기로도 두 시간 반 정도(타보라Tabora에서 한 번 경유한다) 걸리고 버스로는 하루 종일, 기차로도 오래오래 걸리는 먼 곳이다. 꼬리에 선명하고 아름답게 기린이 그려진 비행기 Precision Air를 탔다. 비행기 삯은 250불정도. 다레살람 국내선을 출발하자마자 비행기 창밖은 살아생전 볼 수 없을 것처럼 곱고 큰 흰 구름의 세상이었다. 그 아래 구불구불한 강의 흐름, 끝없는 땅이 흘러갔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시간, 일본으로도 갈 수 있는 비행기 시간을 하염없이 기린 비행기가 날아갔다. 타보라 공항도 물론 작은 진지처럼 소박했지만 키고마 공항도 마찬가지였다. 열대 지방에 흔한 리조트 입구로 가는 것처럼 작은 꽃들이 피어난 활주로를 지나 버스터미널보다 작은 입국장에서 수속을 마쳤다.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예쁜 구름을 원 없이 본 데다 공항마저 모형처럼 귀여워 단박에 키고마가 마음에 들었는데, 키고마에서의 기쁨은 시작일 뿐이었다.

 

<기린이 그려진 비행기>

 

호텔에 얼룩말이 걸어 다니고 호수는 바다처럼 끝이 없어

키고마 도서관을 가기 전에 택시기사가 안내해 준 로컬 식당에 갔다. 외국인에 여행자에 동양인이라고는 오로지 나와 동행자, 둘. 나름 능숙한 스와힐리어로 동행자가 음식을 주문했다. 나는 그 유명한 옥수수로 주물주물 해 만든 빵 같은 우갈리 주문. 사람들도 손으로 뜯어먹고 있기에 나도 그랬다. 싸고 크고 든든한, 맛이 없는 게 아닌 그냥 무미한 맛의 우갈리를 먹고 키고마 도서관을 갔다. 달라달라라고 불리는 소년이 모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키고마 시내를 지나 마을 뒤 공터에 숨은 듯 있는 공용도서관으로. 도서관은, 거의 참혹했다. 원장실은 창고와 다름없었고 책들이 이삿짐처럼 묶여 쌓여 있었고 벽에 걸린 대통령 사진은 삐뚤어져 간신히 벽에 걸려 있었다. 모든 자료를 수기로 하고 있었고 등은 켰어도 지하만큼 어두웠다. 정리를 할 공간도 없어보였고 손대기에 엄두도 나지 않게 생겼다. 내가 어릴 때 다닌 초등학교 도서관보다도 몇 십 년 낙후된 모양이었는데, 책꽂이가 있는 공간으로 가보니 한 방에 여자아이가, 다른 방에 남자아이가 그야말로 몰두해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을 때 원장님과 스태프 청년 하나, 그리고 도서관 관리자가 나와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웃음 짓는 얼굴이 하도 밝아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숙소는 키고마 시내에서도 한참을 올라간 언덕 위 캉가니카 호수 끝에 있는, 키고마 힐탑 호텔이었다. 방들은 모두 단층의 방갈로로 멀리 멀리 떨어져 있었다. 프론트에서 버기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은 잔디가 넓게 깔려 있는데 길 사이를 원숭이와 얼룩말이 풀을 뜯어먹으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야생의 얼룩말을 호텔 마당에서 만나다니,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인가. 조그만 동물원에는 닭과 앵무새가 들어있었고 언덕 끝 식당에는, 탄성밖에 내뱉을 수 없는 풍경을 품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호수, 탄자니아에서 두 번째로 넓다는 탕가니카 호수가 바다만큼 넓고 크게 이어져 수평선 멀리 시선을 늘려주었다. 저 수평선 끝까지 시선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간간히 조그만 고깃배가 떠가는데, 그 위에 지는 일몰, 그라데이션을 이루며 부드럽게 놓인 구름의 물결과 마침내 떠오른 별과 달. 심지어 라마단 기간이어선지, 이슬람계 호텔이어선지 맥주 한 방울도 팔지 않는 청정지역이었다. 평온과 고요만이 가만히 있는 호텔, 키고마 힐탑 호텔 방에서는 침대에 누워서도 호수의 바람과 얼룩말이랑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탕가니카 호수는 그저 경관만 훌륭한 게 아니라 키고마 모든 사람들이 마실 물과 농사지을 물, 그리고 물속의 수많은 물고기까지 다 주고 있는, 말 그대로 아낌없이 주는 호수였다.

 

<힐탑 호텔에서 보는 탕가니타 호수>

 

인간과 거의 같은 유인원 침팬지의 서식처, 곰비 국립 공원Gombe National Park

탄자니아에는 여러 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아루샤 국립공원, 곰비, 카타비, 킬리만자로, 카투로, 마할레이, 만야라, 미쿠미, 엠코마지, 루아하, 루본도, 사다니, 싸나네, 세렝게티, 타랑기레, 우드중와... 워낙 넓고 커서 하나의 국립공원을 가려면 며칠을 잡아야 한다. 킬리만자로 트레킹은 정상까지 가려면 일주일 정도 일정을 잡아야 한다. 짧은 일정 중에 그 많은 곳을 가는 것은 언감생심, 그나마 키고마에 왔으니 곰비 국립공원은 꼭 가보고 싶었다. 곰비는 탄자니아의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작은 곳이지만 하루 만에 갔다가 와야 했다. 아는 것이라곤 배를 타고 탕가니카 호수를 건너가서 곰비에 가면 제인 구달이 연구하던 곳과 운이 좋으면 공원 숲 속에서 침팬지를 만날 수 있다는 것밖에 없었다. 아무리 빡빡해도 침팬지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내는 그 소리 ‘팬트 후트’를 듣고 싶었다. 인간과 유전자가 95%나 일치한다는 그 침팬지, 눈이 마주치면 나를, 이해한다는 느낌이 든다는데 그 눈빛도 보고 싶었다. 오래 숙고하다가 단호히 곰비 국립공원으로 출발했다. 곰비로 가는 배를 타는 곳은 키고마의 작은 항구. 아침 일찍 탕가니카 호수를 삥 돌아 도착한 항구에는 고기 잡고 돌아오는 배들과 고기 잡으러 떠나려는 배와 물을 길러 물동이를 이고 온 여자들과 심지어 세수하고 몸을 씻는 남자들로 붐볐다. 담수니까 먹어도 될 것이고 맑으니까 생활용수로 쓸 수도 있겠지만, 조그만 통에 물을 담는 모양을 보면서 호스로 연결하거나 발전기만 하나 달면 집에서도 편하게 물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부질없이 생각했다.

풍경은 내내 영화를 보는 것처럼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입고 있는 원색의 옷들이 검은 몸 위에서 눈부시게 일렁이고 물 한 동이 긷는 몸짓이 하도 느리고 욕심 없어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네가 느끼는 어떤 불편도 우리는 모르겠다는 그 순하고 느린 움직임이 그림처럼 고요했다. 배에 탄 지 삼십 분이 지나도록 모터 엔진이 걸리지 않아, 이 배 저 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돌리고 돌리는 것도 절박하지 않아보여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동행자는 출발 못한 배 위에서 잠이 들고 고기 잡아 돌아오는 이들은 자기 배 뒤에 고기를 담았는지, 서 너 개의 작은 화물 배를 이어 달고 정박을 준비 중인데 그들도 마찬가지. 그저 그 모습이 평화로운 건지 무기력한 것인지도 가늠되지 않았다. 맑고 맑은 호수 위에 아침 해가 떠오르고 비행기 위에서 보았던 하얀 구름들이 둥둥 떠서 하염없이 천천히 흘러갔다.

배는, 세상에, 호수 물살을 가르면서 곰비 국립공원을 향해 흘러가는데... 풍경은 이게 과연 호수인가, 바다인가 알 수가 없었다. 끝이 없어도 이렇게 끝이 없을까. 한 쪽으로 긴 수평선이, 한 쪽으로 육지의 울창한 숲 가득한 산맥 하나가 이어졌다. 보다, 보다 지칠 때까지. 까묵 잠들 때까지 배는 두 시간을 넘게 호수 위에 떠서 흘러갔다.

잠깐 눈을 뜨면 멀리 가까이 작은 배 하나에 한두 명의 사람이 저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찍고 있는 건가. 어부 한 명이 오로지 물과 마주하고 있을 뿐. 작은 쪽배에 까맣게 작은 사람 하나가 노를 젓거나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어떤 장비도 음악도 친구도 없다.

물살이 잦아든 산기슭에는 한두 개의 집들이 호숫가에 면해 가만히 들어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저 산 나무 아래 작은 집에 사람은 앞에는 호숫가 뒤에는 숲만 있을 뿐. 이 배를 타기 전 탄자니아의 아이들에게 책을 만들어 읽혀서 삶의 질과 문화를 알게 하고 교육으로 삶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조사활동이 목적이 불현듯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 너무 고요하고 정말 소박한 이 숲속과 강가의 삶에서, 고기 몇 마리 잡고 물을 길어먹으며 그냥! 사는 삶에서 동화책이, 교육이, 문화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까, 양질의 삶이란 게 무엇일지, 고품격의 문화가 어떤 것인지, 도시에서 교육을 받고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것이 지금 저들의 삶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는 심정이 들었던 것이다. 평화와, 고요와, 단순하게 먹고 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환이 그저 인간의 자연적인 길이라면 어디의 무엇을 바꿔 삶을 나아지게 만들 수 있을까. 나라면 그냥 이 삶을 택할 것 같아, 생각하다가 잠들었다 깨어보니.... 꿈처럼 두 시간 반 만에 곰비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사파리’라는 말은 원래 동물 구경 여행이 아니라 여행하다, 라는 동사

그 깊은 숲 속 입장료는 놀랍게도 신용카드로만 받았다. 모든 국립공원이 입장객 현황을 투명하게 운영하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한다는데, 접수를 마치고 방명록을 살펴보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이름을 써놓았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네덜란드, 저머니, 잉글런드. 거기에 사우스코리아 내 이름을 적어넣었다. 가이드를 앞장세우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맑은 계곡이 흐르는 빈 터 하나를 가리키며 제인 구달 박사가 살던 집터라고 했다. 제인이 1960년대에 이 숲속에 들어와 침팬지에게 이름을 붙이고 행태 연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 것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먼 숲 속이다. 나무들이 높이 솟아 햇볕은 들어오지 않아 덥지는 않았지만 비가 내린 후라 길은 습하고 계곡 물이 풍성하게 흘러내렸다. 꼭, 반드시, 침팬지를 만나고야 말겠다는 생각은 사실 하지 않았다. 그저, 말할 수 없는 어떤 마음으로 찾아와 걸어오고 싶었을 뿐. 그러나 가이드는 한 마리의 침팬지라도 보여주려고 제주도 정방폭포 같은 폭포 앞에 우리를 쉬게 하고는 침팬지를 찾으러 떠났다. 폭포 끝 물보라가 옷을 적셨다. 곰비 숲은 우리나라 한라산 정글 숲 곶자왈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계곡, 숲, 하늘까지. 오래 기다리면서 만약 우리 가이드가 침팬지를 숲에서 찾는다면 어쩐다는 것일까, 생각했다. 자, 멀리 숲 속으로 들어가 침팬지를 발견했다면? 부지런히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우리 손을 잡고 침팬지 쪽으로 데려갈 것인가. 아니면 자기 집에서 쉬고 있던 침팬지의 손을 잡고 우리 쪽으로 데려올 것인가. 이것저것을 상상해도 왠지 즐겁고 귀여운 정경이라 폭포 아래서 슬쩍 웃음이 났다. 더 위로, 더 깊이,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지만 침팬지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원래 우기나 비가 온 후에는 침팬지를 만나기가 어렵다고 했다. 가물어서 물이 귀해서 목이 말라야 계곡 쪽, 그러니까 길 쪽으로 내려온다는 거였는데 지금은 침팬지가 있을 숲에도 물이 많고 날도 흐려서 목이 마르지 않으니 내려오지 않는 거라고 했다. 숲의 꼭대기까지 올라가 탕가니카 호수를 내려다보고 싶었지만 너무 덥고 모기가 달려들어 하산을 했지만 가만히 앉아 가이드가 침팬지를 찾았다는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던 곰비 숲 속의 시간은, 드라마틱하거나 감동스럽진 않았지만 탄자니아의 어떤 것을 표상하는 순간으로 오래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땀에 젖어 내려와 제인 구달 연구소 옆 조그만 식당에서 미리 주문해놓은 간소한 식사를 했다. 기다란 목을 가진 콜라 한 병으로 목을 축이며. 침팬지를 못 보고 돌아온 다른 여행자들도 조용히 밥을 먹었다. 돌아가기 위해 다시 두 시간 동안 배를 탔다. 다시 만나는 풍경, 강기슭의 집도 호수 위의 ‘라이프 오브 파이’의 파이 같은 사람들, 물과 배와 독대한 사람들도 그대로였다. 어쩌면 백년을 더 계속될 풍경, 어쩌면 천년 동안 변함없었을 풍경을 지나왔다. 또 한 번 조그맣고 조그만 키고마 공항에서 기린이 그려진 그 비행기를 타고 다레살람으로 돌아왔다. 탄자니아의 가장 서쪽, 키고마에서 본 캉가니카 호수는, 호텔에서 걸어 다니는 얼룩말은, 생애 처음 간 거고 처음 본 거였지만, 아마도 생애 마지막이기도 하리라.

다레살람 마사키 해변 슬립웨이는 여전히 고요하게 은성했다. 이틀 밖에 안 지났으니 변할 것도 없겠지만. 촛불 밝힌 조도 낮은 바닷가 테이블에서 늦은 밤 커피를 마셨다.

내일이나 모레 아름다운 바다색으로 손꼽히는 예쁜 바다 잔지바르로 가기로 했다. 한국의 신혼부부들이 꿈꾸는 허니문 장소로 급속하게 인기를 얻고 있다는 그 곳, 잔지바르. 그곳에도 탄자니아 아이들은 살 것이고, 도서관은 있고, 책이 있을 테니... 여행은 이어질 것이다. 인생 계획 어디에도 들어있지 않았던 곳으로의 여행이 코앞에 다가 온 밤이었다. 사파리도 하고 싶었나요? 물론 세렝게티 초원 사파리도 하고 싶긴 했어요. 언젠가 툭 하고 떨어질 수도 있겠지요, 대답했다. 그런데요. 원래 사파리는 ‘여행하다’라는 동사예요. 알고 계셨나요?

탄자니아에서 2년째 살고 있는 지부장이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