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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생명다양성재단에서 동물의 날달력을 만들어 판매했다. 달력 칸마다 각종 동물이 귀여운 그림과 함께 들어있다. 지구라는 한 집을 나눠서 쓰고 있는 동물 이웃을 그날만은 기억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국제 펭귄의 날’ ‘세계 반딧불의 날같이 동물이 주인공이거나 곰 안아주는 날’‘물고기 사면의 날처럼 재미있는 행사가 적혀있는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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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다양성재단에서 동물의 날’ 달력

 

 

내 생일인 417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기대하며 찾아보았다. ‘국제 박쥐 존중의 날’. 흡혈귀 혹은 기회주의자 이미지가 강한 박쥐라니. 게다가 지금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19의 근원(숙주)이 중국 우한의 박쥐라고 알려지지 않았는가. 뿐만 아니라 21세기의 주요 감염병이었던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도 관박쥐와 이집트 무덤박쥐가 1차 숙주로 지목됐다.

 

얼마 전, 우연히 박쥐를 다시 만났다. 출간한 책 홍보를 위해 유튜브 영상인터뷰를 찍는데(https://youtu.be/pfZf2_cC0so), 진행자가 즉흥적으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속 한 문장을 인용했다.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었다면 타조가 되려고 애쓰지 말란 말이네.” 나는 살짝 당황했지만, 운명론이 아닌 각자 타고난 장점을 잘 살리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며 박쥐도 장점이 있지 않나요?”하면서 마무리했다.

 

문득 박쥐에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일과 기념일이 같은 최소한 예의로 박쥐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반대로, 박쥐는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겠지만, 뭐 괜찮다. 이번 기회로 가까워지면 되니까.

 

박쥐는 날개가 있지만, 조류가 아니고 이름에 가 들어가지만, 설치류가 아닌 박쥐목이다. 사실 동물을 이름만으로 판단하는 건 위험하긴 하다. 하마는 말이 아닌 소목이고 코뿔소도 소가 아닌 말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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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는 포유류 중에 유일하게 날 수 있다. 박쥐는 캄캄한 동굴이나 좁은 나뭇가지 사이를 잘 날아다니지만, 눈은 퇴화해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코나 입으로 초음파를 발사한 후, 음파가 물체에 부딪쳐 다시 들리는 반향(反響)으로 자신의 위치나 방향, 사냥감의 크기나 행동을 파악한다. 눈이 아닌 로 보는 셈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야행성인 박쥐를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믿었다. 우리나라 박쥐의 어원도 ‘(눈이) 밝은 쥐에서 유래됐다고 보는데, 한약재로 쓰였다는 문헌이 남아있다. 중국에서는 박쥐를 뜻하는 ()’가 복()의 발음과 성조가 같아, 박쥐를 먹으면 복을 먹는 것이라며 야생 박쥐를 잡아먹었다. 이렇게 약재나 음식 재료로 사용하는 중에 덜 익힌 박쥐를 먹거나 도축 과정에서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들어오기도 한다.

 

사실 박쥐는 대부분 곤충 특히 모기 같은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동물이다. 하지만 서식지가 파괴되고 먹이가 없어지면서 박쥐는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사람이 먼저 박쥐에게 다가가 접촉했기 때문에 감염병 등의 문제가 생겼으니 오히려 박쥐에게 미안해야 하지 않을까?

 

박쥐에게 사과해야겠다. 영역을 침범하고 평화롭게 사는 곳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염 때문에, 호주에서 매년 수 천마리가 죽어가는 것도 결국 인간의 무절제한 욕심에서 시작됐다. 기분 나쁘게 생겼다며 외모로 판단해 미안한 마음인데, 초음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코와 귀가 기형적으로 변했다는 걸 몰랐었다. 흡혈귀를 연상시키는 흡혈박쥐는 박쥐 900여 종 중 3종에 불과하다니 성급한 일반화에 멋쩍어진다. 새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라며 여기저기 붙는 기회주의자라는 고정관념도 용서해주길.

 

자기가 낸 소리의 반향을 이용하는 박쥐의 영리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글을 쓸 때 내 생각과 주장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 닿아서 내게 다시 돌아오는 것에 더 민감하기를. 그 반향을 통해 내 글의 위치와 방향을 잘 잡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쥐야, 내 생일의 주인공이라서 고마워! 앞으로 내 생일날엔 온종일 너를 꼭 생각할게

 

50+에세이작가단 전윤정(2un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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