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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롬쇠(Tromsø)머나먼 곳, 신비한 곳, 태고의 순수함을 생생히 간직한 곳, 정도의 느낌을 갖고 있던 도시였다. 노르웨이 최북단 북극 탐험의 관문이라는 타이틀에 호기심이 발동했을까. 그곳에는 무언가 이전의 어떤 것과는 다른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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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발 비행기는 트롬쇠(Tromsø)까지 두 시간을 날았다. 제트엔진이 아닌 프로펠러 비행기 탑승은 처음이었기에 뱅글뱅글 돌아가는 날개조차 무척 신기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본 트롬쇠는 피오르드 안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자체가 하나의 섬이었다. 나는 비행기의 창에 뺨을 붙인 채 한동안 푸르스름한 북극해의 풍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노르웨이에서 일곱 번째 큰 도시라고하기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리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다. 낮이 길게 이어지는 여름이라 흐르는 시간조차도 느릿느릿 지나는 것만 같았다. 체크인을 해놓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도보로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트롬쇠(Tromsø)에서는 대학도, 맥주집도, 햄버거 가게도, 이름 앞에 최북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북극의 빙하 모양을 하고 있는 북극 대성당도 마찬가지다.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도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다는 기록을 갖는 도시다. 내가 서있는 이곳이, 지구의 정수리 부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트롬쇠는 고요히 몰두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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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케이블카를 타고 스토르스테이넨 산(Mt. Strosteinen) 전망대로 날아올랐다. 절벽 아래에는 걸어서 건너온 트롬쇠 다리가 섬과 본토를 잇고 있고, 멀리 눈 덮인 산들이 한여름이라는 계절을 잊게 했다. 난간 철조망에는 알록달록한 털실로 ‘Tromsø’라는 글씨를 뜨개질해서 붙여 놓았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줄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도 여행자의 마음이 훈훈해졌다. 간간이 비가 섞인 바람이 불었다.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북극이라?’

 

북위 69도에 위치한 트롬쇠(Tromsø)가 눈앞에 펼쳐진다. 빙하의 침식과 이동으로 협성된 협곡들과 각양각색 집들이 오밀조밀 내려다보인다. 이상하다.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트롬쇠에서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본다든가, 새벽 거리를 쓸고 가는 청소차를 구경하거나, 부두에 나가 몸이 휘도록 바람을 느껴보는 일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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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갖다 놓았을까. 안개 자욱한 산 위에 나무로 된 벤치 하나가 놓여있다. 빛바랜 긴 의자는 내게 잠깐 앉아 쉬었다 가라며 옷자락을 잡는다. 나는 못 이긴 척 앉아보기로 한다. 투박한 나무 상판에 네 개의 다리를 끼워 맞춘 의자는 단순해서 미덥다. 북극해와 마주 앉으니 내 마음 안쪽에도 수평선이 그어진다. 고요함이 느껴진다. 흐린 하늘에 떠다니던 갖가지 상념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바다 빛깔이 시시로 달라지며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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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르스테이넨 산 전망대의 꽃들은 나지막이 포복을 한다. 노란 꽃, 푸른 꽃, 붉은 꽃, 하늘거리는 풀꽃들은 바람에 맞서지 않고 엎디는 법을 진즉부터 알고 있다. 초록빛 파도가 누웠다가 일어난다. 마음이 절로 환해진다. 작은 꽃들 사이로 돌탑 행렬이 이어진다. 모난 돌, 둥근 돌들이 서로 등을 맞대고 먼 바다 쪽으로 향해 있다. 나도 덩달아 돌멩이 하나를 탑 위에 올린다. 바람을 타고 오는 파도소리가 돌탑마다 칭칭 감긴다.

 

항구에 있는 창고 지붕이 온통 잿빛이다. 갈매기들이 모여 바다 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어인일인지 울부짖지도, 보채지도 않고 일제히 물러나있다. 출렁이는 바다도 이 순간만큼은 잔잔하다. 미래를 위한 비행을 준비하는 걸까. 노련한 그들의 숨바꼭질이 우주의 리듬을 만들고 있는듯하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뭔가에 고요히 몰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트롬쇠는 나에게 그런 힘을 건네주었던 도시다.

 

50+에세이작가단 김혜주(dadada-b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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