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하면서 한국 사회 전반에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탄소중립은 배출하는 탄소량과 흡수하는 탄소량을 같게 한다는 뜻이다. 2018년 유엔 기후변화에관한국가간협의체(IPCC)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목표로 제시한 뒤 세계적인 대세가 됐고, 미국 중국 일본 등 120여 개국이 달성하겠다고 공개 선언한 상태다. 한국의 갈 길은 멀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온실가스를 다섯 번째로 많이 배출하는 나라다. 정부는 이런 점을 감안해 탄소중립 추진 전략과 10대 과제를 확정해 발표하는 등 잰걸음을 하고 있다. 정부의 전략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 봤다.

 

글. 성수영(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탄소중립 10대 과제’, 무엇이 담겼나

정부는 탄소중립 추진 전략으로 크게 세 가지의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경제구조의 저탄소화’, ‘신유망 저탄소 산업 생태계 조성’,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이다. 10대 과제로는 ‘에너지 전환 가속화’, ‘고탄소 산업구조 혁신’, ‘미래모빌리티로 전환’, ‘도시·국토 저탄소화’, ‘신유망산업 육성’, ‘혁신 생태계 저변 구축’, ‘순환경제 활성화’, ‘취약산업·계층 보호’, ‘지역중심의 탄소중립 실현’, ‘탄소중립 사회에 대한 국민인식 제고’를 꼽았다.

 

세 가지 정책방향별로 보면, 경제 구조의 저탄소화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에 해당한다. 한국은 탄소 배출이 많은 제조업 의존도가 높다. 석탄발전소 비중도 40.4%로 높은 편이다. 예산 지원 등을 통해 태양광·풍력 비중을 높이고, 제조업·수소차·전기차 등 혁신을 통해 산업 분야 제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신유망 저탄소 산업 생태계 조성은 단순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넘어 이를 미래 먹거리로 삼자는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수소 관련 기술을 선도하고 관련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내용이다. 폐기물을 줄이고 재활용 산업을 활성화하는 등 상품을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 소비량 자체를 줄이는 기술 개발도 지원한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은 이런 급격한 변화로 생기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내용이다. 엔진 제조업체 등 탄소 중립으로 사양 산업이 될 기업의 사업 재편을 지원하고, 종사자들에게는 재교육을 지원한다. 정부는 지역 맞춤형 탄소중립 전략을 개발하고 관련 내용을 널리 알려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겠다는 계획이다.

 

 

우리 경제·사회, 어떻게 바뀌나

세계적인 추세를 고려하면 한국의 탄소중립 선언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탄소 배출이 많은 나라의 상품에 세금을 더 매기는 ‘탄소국경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EU는 또 자동차 배출규제를 상향하고 플라스틱세(plastic tax)를 신설하는 등 환경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국가의 기업들은 앞으로 수출길이 막힐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현재 배출하는 양만큼 탄소를 줄이거나 흡수해야 한다. 세계 모든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이 탄소 절감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시대가 본격화하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수소차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산업의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신산업 관련 일자리가 생겨나고,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으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급증할 전망이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다. 2014년 정부는 올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5억4300만t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지난해 배출량 잠정치는 7억t을 넘겼고, 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예상된다.

 

산업계는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다른 국가보다 탄소중립에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쏟아야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 3개 업종에서만 탄소중립 비용으로 2050년까지 최소 400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 산업계 전체적으론 800조~100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과 가정에는 어떤 영향 올까

기업의 환경 비용은 앞으로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일단 강화된 환경 규제에 맞추기 위해 설비 투자를 늘려야 한다.전기요금 인상도 악재다. 석탄 발전소는 환경오염을 유발 하지만 싼 값에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를 태양광과 풍력으로 대체하려면 비용이 들고, 이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기업 뿐 아니라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비롯한 광범위한 업종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일반 가정도 탄소중립의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먼저 기업과 마찬가지로 전보다 높은 전기요금을 부담해야 한다. 기업의 환경 비용이 상품 가격에 반영되면서 각종 상품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비용 부담이 크다고 한국이 국제사회의 환경 규제를 무시할 수는 없다. 탄소중립을 추진하지 않으면 기업의 수출길이 막혀 경제 주체들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 높다. 탄소를 줄이지 않고 현재 수준의 탄소를 계속 배출하면 2100년까지 기상이변 등으로 한국이 받는 피해액이 3,128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민들에게 탄소중립의 중요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고, 비용 부담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신한 미래설계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