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여성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는 온갖 이슈들이 화제가 되는데 그중 ‘일’에 관한 글은 단연 관심이 높은 주제에 속한다.

“50대 이상 돈 버시는 주부님들,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날까지 돈 벌 수 있는 능력이 너무 부럽네요.”

이 글에도 63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조회수는 1만 8900회를 넘었다. 중장년 여성 취업에 관한 포럼이나 어떤 전문가들의 조언보다 익명의 공간에서 허세 없이 구어체로 오고가는 당사자끼리의 이야기가 훨씬 피부에 와닿을 수 있다.

검색 알고리즘에 의한 주부취업 연관 광고가 그 글 바로 밑에 약삭빠르게 떠 있는 건 디지털 세상에서 새삼 놀랄 것도 없다. ‘주부드림 큐, 클릭만 해도 돈 벌기, 시간 자유, 장소 자유, 집에서 돈 버는 여자...’ 일을 찾는 여성들을 현혹하는 걸로 악명 높은 다단계, 000드림이다. 일이 절실한 누군가가 광고 내용만 믿고 연락해봤다가는 실망감에 울적해지기 십상이다.

 

일에 대한 정말로 현실적인 고민들

다시 일에 대한 화제의 글로 돌아와보자. 40대~60대 여성들의 일에 대한 현실적인 토로가 오간다. 저마다 처지는 다르지만 질시보다는 서로 독려도 하고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50 초반인데 정말 마음이 답답하네요. 일은 해야겠는데 만만한 게 없어요. 웬만한 건 나이에서 다 짤리고 너무 잉여 같아서 한 번씩 맘이 가라앉아요.”

“특별한 돈이나 능력이 있지 않는 이상 50대 넘어서 할 수 있는 일은 뭐, 캐셔, 판매직, 식당, 청소 그런 일이겠죠.”

“돈이 적든 어쨌든 무슨 일이든 하는 분들, 저 같은 집순이는 부럽습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너무 두렵습니다.”

“25년 일한 남편이 명퇴하고 시골 가서 그냥 쉬고 싶다고 합니다. 저도 몇 년 전에 명퇴한 터라 남편 이해 못하는 건 아닌데, 이력서 10군데 내도 연락도 없고 자영업이든, 뭘 해야 할지 막막해요. 아직 아이들이 학생이라서...”

“남편이 그렇게 얘기했을 땐 견디기 힘들다는 호소겠죠. 다시 기운 차릴 때까지 아내가 바톤터치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사실 남자는 나이 들면 더 오라는 데도 없고 남자들도 가엾어요.”

“50대 중반인데 경단이었다가 운 좋게 병원으로 다시 취업했지만 앞으로 2,3년 정도 더 할 수 있을까, 점점 눈도 피곤하고 몸이 아파서 걱정입니다.”

“도배사입니다. 전업주부 하다가 남편 사업실패로 도배학원 다녀서 40대 중반에 시작했는데 아들 둘 대학 보내고 이제 학비며 용돈 벌고 군대 가니까 다시 집도 마련하게 됐네요.”

“51세 자영업으로 소규모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네요. 너무 오래 치열하게 살아서 내가 뭘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나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작은 자영업 하고 있는 50대인데 눈물바람한 적도 많았고 잘 벌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이대로 10년만 더 하고 싶습니다.”

“의류잡화점 하는 50대 중반인데 홀시어머니 모시다 90세에 돌아가시고 지금 친정어머니 모시면서 열심히 살아요. 경력단절여성들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내서 인생 이모작 준비해 보세요.”

“58세인데 서울시보육정보센터에서 어린이집 대체교사로 나가고 있어요. 60세까지는 하려구요 유치원 원장 자격 따놓은 게 늙어서 쓰이네요.”

“50대 중후반인데 평생 전업으로 살다가 별다른 경력도 없어서 지방에 작은 아파트 사서 월세 받고 있습니다. 세가 밀리기도 하고 보일러, 도배장판 등 목돈도 들고 큰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게 어디냐 하면서 감사하게 하고 있답니다.”

“유치원 방과후 교사입니다 전업하다 유아교육 전공 살려 다시 시작했는데 아이들과 교감하는 일이 너무 재밌고 보수는 적지만 행복합니다.”

“40대인데 여러 글들을 보고 엄청 자극이 됩니다. 늦었다고 생각 말고 저도 뭔가 시작해야겠어요.”

“이 글들을 읽고 그래 한번 해보자라는 용기도 생기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네요 하는 일은 다르지만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 다 공통적이네요. 모두 존경스럽습니다 ”

“이 글을 읽다 보니 50대에도 뭔가를 시작해도 되는 나이 같아요. 아자!!”

“늘 우울증에 사는 낙이 없다, 여기저기 아프다 하는 글 보다 여기 글들 읽어보니 역시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조용히 제 할 일 하고 사는구나 싶네요.”

 

경력단절 여성 아닌 경력보유 여성으로

얼마 전 LG CNS는 자사에서 근무했다가 출산 육아로 인해 일을 쉬고 있는 여성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올 수 있도록 IT강사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재도약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경력단절여성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아니라 훨씬 희망적인 경력보유여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런 고무적인 프로젝트가 하나의 기업 차원이 아니라 더 넓은 범위로 확산돼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사회의 지속을 위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인 출산, 육아를 치르고 돌아온 여성들이 낙담하지 않고 각자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일을 찾아 자아실현하는 기회의 문이 더 활짝 열려지기를 바란다. 30~40대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개발된다면 당연히 더 행복한 50+경력 보유여성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35-44세 여성 고용지표는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로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한국 등 7개국) 7개국 중 여전히 최하위라고 한다. 우리나라 여성 고용형태는 소위 뚜렷한 M자형을 띠고 있다. 여성의 취업률이 정점에 이르다 출산육아기로 대표되는 시기에 갑자기 뚝 골짜기로 떨어지는 형국이다. 이후에 다시 수치가 오르지만 문제는 중장년여성의 재취업이 커리어 실현이라는 면모보다는 경제적으로 녹록치 않은 현실로 인해 이전 직업에 비해 저임금 단순직으로 몰리는 안타까운 상황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커리어(Career)와 잡(Job)

커리어(Career)라는 단어의 뿌리를 살펴보면 마차의 바퀴가 지나가는 길에 흔적이 남듯이 하나의 일에 종사하며 전문화되고 부가가치도 높아지는 등 장기적으로 경력을 쌓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M자형 커브 위에서 재취업의 고개로 몰려지는 우리나라 중장년 여성들에게는 그러니까 커리어란 말은 사치다, 물론 요즘과 같이 고용이 불안정한 현실에서는 단지 여자라서가 아니라 남녀 모두 커리어보다는 작은 덩어리 단위의 이동을 의미하는 잡(Job)을 지속적으로 가지기에도 급급한 현실이긴 하다.

한국고용정보원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도전할 만한 직업, 직종으로 틈새 도전형, 사회공헌 및 취미형, 미래 준비형,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를 해놓았다. 경험, 성격, 흥미, 가치, 적성에 맞추어 도전할 만한 직종을 선택하는 게 이상적인데 문제는 오랜 경력단절을 겪은 중장년 여성의 경우 경험이나 네트워크가 부재한 상태인 데다 당장 생계를 위한 일이 필요한 경우에는 적더라도 안정적인 수익을 고려해야 하므로 사회공헌형이나 취미형, 미래준비형 모두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다.

 

5만 가지 상념을 버리고 단순하게 접근하자

“남편과 이혼에 동의했어요. 방 한칸이라도 기거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신세네요. 좋은 아파트보다 거기가 더 마음 편할 듯요. 오랜 경력단절인데, 고용센터를 가는 게 좋을까요? 여성인력센터가 나을까요? 지방에 일자리가 있을까요? 서울 외곽에라도 있어야 할까요?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 조언 좀 주세요”

“남편 사업 어려워지신 분들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일 놓은 지 오래인데 제가 뭘 어째야 할까요?

운이 좋지 않게도 중장년 시기에 맞닥뜨릴 수 있는 치명적인 리스크(사업 실패, 가족해체 등)에 직면한 경우라면 일을 대할 때 특히 지나치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가 필요하다.

때로 엄두가 나지 않은 높은 산에 올라야만 한다면 제일 높은 봉우리가 아니라 바로 내 발 앞만을 보라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정작 일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하면서도 겹겹이 가로막는 감정들 때문에 더 힘들어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등등.

우리나라 사람이 특히 살기가 힘든 건 무려 5만 가지의 상념에 시달리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타인이 규정한 생각들로 나 스스로를 옭매지 말자. 밥벌이가 돼주는 모든 일은 신성하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의 가치는 남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때로 단순한 데 답이 있다.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공대식 개그를 되새겨보자.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도 1. 냉장고 문을 연다. 2.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3. 냉장고 문을 닫는다. 단 3단계로 요약할 수 있듯이 일에 접근할 때도 그렇게 단순화해보라. 1. 나와 내 가족에게는 지금 일이 필요하다. 2.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3. 일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곳과 지속적으로 상담한다.

“할 수 있는 일 하며 일단 돈을 버시고 천천히 좀더 오래 할 수 있는 일 찾아보셔야죠. 평소에 밝은 마음으로 인사도 잘하시고 잘 웃으시고 하면서 여러 사람들 만나시면 좋은 기운에 좋은 기회들이 따라옵니다.”

“남의 말만 듣고 취업할 곳 없다고 낙심 말고 국가에서 주는 혜택도 받으면서 자격증 하나 따보세요. 100세 시대에 오십이면 아직 50년이나 더 살 날 있어요. 희망을 가지세요. 앞으로 찬란한 50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다 보면 더 좋은 길이 보인다고 어려움을 먼저 경험하고 극복한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다. 십여 년의 공백을 딛고 복귀해 데뷔 50주년을 남긴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난 생계형 배우였다. 배우가 가장 연기를 잘할 때는 돈이 필요할 때이다.” 절실함은 때로 아주 큰 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