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논어의 한 구절이다. 배움의 기쁨을 이보다 더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는 이런 패러디 문구가 떠돌기도 한다. '배우고 또한 익혀야 한다고 하니 어찌 열받지 아니하리오'라는 비아냥이 있는가 하면, ‘학이 습지를 보면 어찌 열받지 아니하겠는가’와같이 엉뚱한 해석을 하기도 한다. 시험과 경쟁에 찌든 젊은 세대의 하소연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50+세대라면 사정이 다르다. 배움의 기쁨은, 벗이 멀리에서 나를 찾아오는 즐거움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즐거움과 더불어 3대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군자가 누릴 세 가지 즐거움이라고 하여 군자삼락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즐거움은 오늘날 50+세대가 누릴 즐거움이기도 하다. 50+세대가 되어서야 이 즐거움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배워서 남주냐’는 말이 있다. 배워두면 다 자신에게 유익하고 쓸모가 있다는 말인데, 요즘은 잘만 배우면 남에게도 유익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에서 동료들을 만나 배우고 익히며 그 배운 것을 사회생활에 유용하게 적용한다면 그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배움은 책과 강의를 통해서만 배우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삶과 경험을 통해 배울 게 있고, 자신의 삶과 가족을 되돌아보면서 배울 게 있다.

 

배움을 통해 얻는 즐거움

 

50+세대가 걷는 배움의 길은 젊은 시절의 것과는 다르다. 단지 가족 부양에 대한 부담과 생존을 위한 의무감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삶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며 배우는 것이다. 배움의 즐거움을 터득하면 행복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배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세 가지 또는 세 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자신에게 적합하면서 사회에 응용 가능한 실용적 지식과 기술 습득을 통해 소득이 창출될 때의 즐거움이다.

두 번째로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여가를 즐기면서 자신의 달란트를 찾게 될 때의 즐거움이다. 달란트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세 번째는, 직장 다닐 때는 미처 몰랐던 사회 현상이나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우면서 인간과 사회, 자연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삶의 여유를 되찾는 즐거움이다.

 

 

배움을 통해 소득이 창출되는 즐거움

 

무언가를 새로 배우려고 할 때 배움의 과정은 고달프지만 그 결실은 남부럽지 않다. 여건이 만만치는 않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 배우고 노력하는 것, 그 작은 시간들이 우리 각자의 삶 속에 웅크리고 있는 희망을 끄집어 낼 수 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아주 작은 촛불 하나로도 길을 찾기에 족한 법이다.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고 역량을 갖추기 위한 작은 시간들과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막막한 앞날을 비춰줄 날이 올 것이다. 행복은 행복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을 찾아간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역할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좋다. 이를 통해 배움의 즐거움 외에 소득으로 연결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은퇴 후에 소득을 얻는 것은 그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소중하다. 적은 금액일지언정 그 소득은 억대 연봉 못지 않게 귀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자긍심을 심어주고 자신감을 회복시켜준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여 행복감을 증폭시켜 준다.

 

자신의 달란트로 남을 행복하게 하기

 

스페인 밀라가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호세 L. 자카니니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행복의 비결은 자신이 잘하는 일로 다른 사람까지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호기심이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다가 혹은 자신만의 여가를 즐기다가 의외로 자신의 숨겨진 재능이나 잠재적인 소질을 발견할 수 있다. 취미나 여가활동을 하다가 자신만의 달란트를 개발하여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

달란트라고 하여 반드시 손재주나 기술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유머를 구사한다든가 넉넉한 마음씀씀이도 일종의 달란트에 해당된다. 배우고 익히다 보면 유머와 여유도 늘게 되어있다. 생활 속에서 해학적인 말이나 유머감각은 남을 즐겁게 하고, 관용과 포용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제공해준다.

 

 

인간과 사회, 자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삶의 여유를 찾는 즐거움

 

50+세대에게 배움의 목적은 더 이상 학점을 받거나 졸업장을 타는 것, 그리고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 그리고 자기 경험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 목적이 된다.

이 단계에서의 배움은 새로운 지식 습득이나 달란트의 개발에 그치지 않고 성찰과 성숙으로 이어지게 된다. 삶이 곧 배움의 터전이고 자연이 바로 배움의 교실이다. 배움 그 자체로 삶의 기쁨이 샘솟는 즐거운 여정이 되는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많다보니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들을 좀 더 깊이 있고 폭넓게 들여다볼 수 있다. 정신적으로도 좀 더 여유가 생겨 우리 사회가 좀 더 조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 활동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가정적으로도 자녀양육의 부담에서 자유로워지고 세상적인 욕망도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삶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지고 자기중심적인 경향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자아 성찰과 정서적 성숙을 위한 배움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자기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도 그런 배움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연에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배우며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다. ‘자연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자연은 인간의 멘토이자 행복의 안내자이다. 대지를 둘러싼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세상사에 신경쓰고 일상에 잠겨있어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는 순간 자연으로부터의 배움이 시작된다. 자연 속에서, 숲 속에서 거닐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즐거운 운동이 될 뿐만 아니라 복잡한 세상에서 분별력을 잃지 않고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자연을 통해 생명체에 대한 애정을 넓혀가고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