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50플러스재단 단체성장지원사업

같이일자리사업 ‘50플러스여행공감’ 참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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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마종기의 ‘착한 당신’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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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에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50+단체성장지원사업으로 50플러스여행공감이 진행하는 ‘기억에 미래를 더하다-서울미래유산 이야기꾼’ 모집에 신청을 했습니다. 서울미래유산을 조금 알아가는 시간이겠거니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생각보다 밀도 높은 과정이었어요. 그만큼 알차고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죠. 그저 공부를 한 것만이 아니라 각각 자신만의 여행도 계획하도록 했어요. 예상하지 못한 과제여서 당황했지만 혜화동과 명륜동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작성했습니다. “시인 마종기의 ‘착한 당신’ 찾아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짜본 시나리오의 얼개는 세 개의 기억이었습니다. 백동의 기억, 반촌의 기억, 그리고 마종기 시인의 옛집.

 

종로구에는 거의 백 곳의 서울미래유산이 있는데 혜화동과 명륜동만 해도

마로니에 공원부터 아르코극장과 미술관, 샘터 사옥을 비롯해 얼추 열 곳의 미래유산이 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시작된 여정은 혜화동을 거쳐 명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백동은 혜화동의 옛 이름이에요. 옛 도성도에서는 ‘백자동’이라고 불렸더군요. 1909년 베네딕토회 상트오틸리엔 수도원에서 파견된 수도자들이 입국해 백동수도원을 세웁니다. 그리고는 성 베네딕토의 “기도하고 읽고 일하라(Ora, Lege et Labora)”는 가르침대로 포도농사를 짓고, 조선 청년들에게 목공 등을 가르치고(숭공학교) 신학교(숭신학교)도 세웠죠. 1927년 수도회가 함경도 덕원으로 옮겨가자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이 땅을 매입해 수도원 본관은 가톨릭대학이 되고, 철공소는 혜화유치원이, 그리고 목공소가 있던 곳은 혜화동성당이 되었답니다. 명동과 약현(중림동) 성당에 이어 서울에서 세 번째 세워진 본당이죠.

 

서울에서 세 번째로 지어진 천주교 혜화동 성당. 혜화동의 옛 이름이 백동이었다.

 

반촌은 성균관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중국 주나라 때 천자국의 국학기관은 벽옹이라고 부르고 제후국의 경우는 반궁이라고 했답니다. 이로 인해 조선의 성균관도 반궁으로 불렸고 그 주변 마을은 반촌이 되었죠. 반촌에 사는 이들은 반인이라고 부르고 북악산에서 흘러내려와 지금의 대학로를 따라 청계천으로 흐르던 물길은 반수라고 불렸습니다.

 

2009년 ‘대학로 실개천 조성사업’으로 옛 흥덕동천의 물길을 아스라이 상상해볼 수 있다.

 

제가 준비한 투어는 성균관을 거쳐 마종기 시인의 옛집으로 이어졌습니다.

“내 영혼이 떠나간 뒤에 행복한 너는 나를 잊어도 / 어느 순간 홀로인 듯한 쓸쓸함이 찾아올 거야…” 김희갑 작곡, 양인자 작사로 알려진 조용필의 ‘바람이 전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노랫말의 뿌리는 마종기 시인의 ‘바람의 말’이더군요. 명륜 3가 143-3번지 13평짜리 한옥집이 시인이 ‘착한 당신’이라고 불렀던 대상이랍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의사시인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마종기 시인은 한일회담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고초를 겪다가 ‘다시는 고국 땅을 밟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제대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났더군요.

 

성균관 유생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마종기 시인이 어린 시절 뛰어놀았을 명륜당은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한참 세월이 지난 뒤에 모교 교수 제안을 받고 귀국 준비를 하기도 했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겹쳐 결국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죠. 그때 누구한테도 말 못 하고 혼자서 절망하며 그리움을 토로한 것이 ‘바람의 말’이었다고 해요. 마종기 시인의 말에 의하면 이 집은 1920년이나 30년대에 지어졌을 거라고 합니다. 이 집에서 소년 시절을 거쳐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아동문학가 마해송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서양무용을 들여온 어머니 박외선과 두 동생이 함께 살았으니 그가 그리워하는 고국은 그저 이 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이 집은 빌라들이 들어선 마을 가운데 딱 한 채 남은 한옥이에요.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아무도 손보지 않은 채 폭삭 늙어 가뜩이나 작은 집이 보기 민망할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죠.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인은 그 집에게 다시 이야기합니다.

 

아동문학가 마해송과 무용가 박외선, 세 자녀가 살았던 이 오래된 집에서 시인의 ‘바람의 말’을 듣는다.

 

“그러나 내 ‘착한 당신’이여, ……그 옛날 눈비를 가려주고 단란한 우리 가정을 따뜻이 감싸주었던 당신의 사랑도 큰 고마움이지만 50년이 넘은 내 신산한 떠돌이 신세 중 언제 어디서나 내 버팀목이 되어준 당신. 오랜 세월 시종 내 희망이었고 믿음이었던 당신. 당신에게 고마웠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마종기 시인만이 아니라 그 부모님의 이력만 해도 이 집은 기념비적인 공간이 될 법한데 그게 여의치가 않은 모양입니다. 아동문학 쪽이나 무용계에서도 정부나 공공기관에 기념관 설립을 청원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소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집은 어떻게 될까요? 바람처럼 왔던 곳으로 그저 떠나게 될까요, 아니면 또 다른 현실을 만나게 될까요?

 

명륜당 앞마당의 오백 년 은행나무는 이렇게도 찬란하게 물든다.

 

50+세대인 우리에게도 ‘신산한 떠돌이 신세 중 언제 어디서나 내 버팀목이 되어준 당신. 오랜 세월 시종 내 희망이었고 믿음이었던 당신’이 있을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여정이었어요. 우리를 지켜봐 준 달빛과도 같은 ‘착한 당신’, 덕분에 어제도 오늘도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는 착한 당신이 모두의 삶에 늘 든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억에 미래를 더하다’ 서울미래유산 이야기꾼이 백사마을을 찾았다.

 

50+여행공감과 몇 달을 함께했습니다. 서울미래유산을 공부하고 찾아보면서 덕분에 서울이라는 도시를 조금은 낯선 시선으로 만났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과 도시에 마음을 열고 다가간 시간이었습니다. 서울50플러스재단에는 참여할 수 있는 여러 일들이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면서 여태 몰랐던 세계와도 만나며 내일을 위한 또 하나의 준비를 하면 좋겠습니다.

 

 

 

 

 

 

[글/사진:50+시민기자단 이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