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2020년 신년기획 여론조사’에서 한국 사회에 필요한 핵심 가치를 묻는 질문에 ‘공정’이 1위로 꼽혔다. 과연 고위 공직자 자녀의 부당한 특혜와 인사청탁, 공기업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 ‘공정’은 우리 사회에 가장 뜨거운 논란과 이슈를 낳았다.

 

 

사안의 심각성, 법적 처벌 가능 여부 등과 별개로 불공정과 이중잣대를 경험하거나 목격할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분노한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만, 사실 불공정에 대한 분노는 대단히 원초적인 감정이다. 세 살 아이조차 또래나 형제자매에게 더 맛있는 음식을 줄 경우 분노한다. 뇌과학자 데이나 스미스는 이러한 분노가 우리 두뇌의 진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협력을 방해하는 불공정

불공정에 대한 분노는 인간에게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내 안의 유인원>으로 잘 알려진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발 박사는 원숭이 두 마리를 대상으로 유명한 실험을 실시했다. 어떤 일을 하도록 시킨 후 처음엔 두 마리에게 똑같은 오이를 주었다가 두 번째엔 그중 한 마리에게 상으로 포도를 지급했다. 훨씬 더 달콤한 포도를 받지 못한 원숭이는 그 즉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소리를 지르며 오이를 실험자에게 집어 던졌다. 처음과 똑같은 보상이 주어졌지만, 상대방과 다른 보상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저항한 것.

 

드발 박사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무리지어 생활하며 협력하는 진화적 단계에서과 불공정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같은 일을 했지만 다른 이와 동일한 보상을 받지 못했을 때, 그런 불공정을 감지하면 우리 두뇌에서 공감과 혐오 등의 감정을 관할하는 뇌섬엽이 활성화되고 감정을 처리하는 영역인 편도체가 분노를 일으킨다. 

 

 

찬물 세수가 약?

인간은 자신이 직접적 불공정의 피해자가 아닐 때도 분노하고 저항한다. 어찌보면 공정함에 지나치게 집착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이러한 불공정과 불평등이 실험실의 원숭이처럼 오이를 집어 던지는 정도로 해결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오히려 즉각적 분노로 인한 실수와 오해가 긴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원초적인 분노엔 원초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스미스 박사는 찬물 세수를 권한다. 달아오른 열을 식히면 분노도 차츰 누그러진다. 뇌과학적으로도 차가운 물이나 얼음 주머니로 열을 식히는 것은 포유류의 회피 본능을 깨워 분노로 인해 마비된 이성을 찾도록 돕는다. 찬 물에 들어갔을 때, 인체의 에너지를 절약해 호흡에 집중하도록 인류가 진화했기 때문이다. 찬물 세수나 목욕이라는 원초적 처방은 육체는 물론 감정을 다스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신한 미래설계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