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혼자 제주에 3박4일 동안 다녀왔다. 1박2일 회의를 핑계 삼아 억지로 앞뒤로 이틀을 붙여 만든 휴가였는데, 친구들은 거의 예외 없이 회의 일정이 아무리 빡빡하다 해도 50대 아줌마가 식구들 밥걱정에서 벗어나 혼자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완전 부럽다고 난리였다.

 

비단 여자인 내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어서 몇 년 전 회사에서 4주간의 근속 포상휴가를 받은 남편은 평소에 가고 싶어 했던 남쪽 몇몇 도시를 여행했는데, 단 한 번도 내게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남편 역시 30년 가까운 결혼생활에서 오롯이 혼자였던 시간은 거의 없었기에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렇게 너나없이 혼자를 꿈꾸며 자유를 그리워하면서도 그 누구도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관계를 맺고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관계의 폭이 줄어들면서 관계의 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좁아지면서 깊어지는 관계 속에서 ‘친구’가 다시 보인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독립을 시작하면서 가족 안에서의 역할도 변하게 되고, 그러면서 부부관계도 재조정 되면서 바야흐로 친구가 새롭게 다가온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의 소중함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데,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하게 친구와 남은 인생길을 동행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하나, 친구라는 이름만으로?

나이 들어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과 위로, 격려를 받으면서 정서적으로 편안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 가는데, 솔직히 가족 안에서 이런 부분이 채워지기가 쉽지 않다.

바로 친구가 중요해지는 지점이다.

가족의 정서적인 기능을 친구가 담당하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이 공부며 취미활동을 하고, 무언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시도해볼 수 있는 친구의 존재가 50+의 삶의 만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토록 소중한 친구가 곁에 있음을 너무도 당연히 여긴 나머지 소홀하게 대하는 것은 아닌지...

오랜 친구라고 해서, 또 편안하고 막역한 사이라 해서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친구라고 해서 모든 것이 용서되고 아름답게 포장될 수는 없다.

 

둘, 관계의 옥석을 가려내는 지혜

겸손한 태도로 상대를 배려해 주는 것은 기본이지만 아무리 친구 사이라 해도 싫은 것도 좋은 척, 불쾌할 때도 아닌 척하는 태도는 오래 가지 못한다.

좋은 사람 만나 좋은 시간 보내기도 부족한데, 마음을 숨겨가면서까지 친구관계를 이어갈 필요는 없다.

솔직한 편이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그동안 벌여 놓은 일들을 단출하게 줄여 나가듯이 친구관계에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이제는 교제의 범위나 모임의 개수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간직하되 일방적이거나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 허울만 남아있는 관계는 정리해야 한다.

 

셋, 우정을 키워나가는 ‘과정’의 소중함

50+들을 위한 공간과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사귈 기회가 생겨서 좋다고들 한다.

오랜 친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편안함이 좋지만 새로운 자극이 없어 조금은 답답하고 심심한데, 새 친구와는 서로 새롭게 알아가는 즐거움과 신선함이 있어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하다는 고백을 심심찮게 듣는다.

나이 먹어도 얼마든지 좋은 친구를 새로 사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며 기쁨이다.

 

그런데 주의 할 것은 만남에도 역사가 축적되고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쉬 더운 방이 쉬 식는다고 성급한 판단은 관계를 급속히 끝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새로운 만남에 감사하며 새싹을 돌보듯이 보살피고 물을 주며 잘 길러야 한다.

 

친구라는 존재 자체도 귀하지만 우정을 키워나가는 과정 또한 우리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니까.

 

넷, 관계 재정립의 타이밍, 내일이면 늦으리!

친구와 마음 상할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화가 나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하고 헤어졌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후회도 되고 관계를 되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친구도 관계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지 알 수 없어 망설여진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게 된다.

답은 하나.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할 거라면 해보는 쪽을 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친구의 마음을 지레 추측하며 망설이기보다는 일단 내 마음부터 전하는 게 먼저다.

물론 있을 때 잘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50+가 좋은 이유는 모든 관계를 되돌리거나 재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이다. 내일 늦지 않으려면 오늘 해야 한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은 우정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 유 경(사회복지사, 『마흔에서 아흔까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