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옵니다. 톡, 톡 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은 가기 전에 한 번 더 봐달라는 가을 소리입니다. 기다리다 지친 겨울이 오는 소리입니다. 비는 자연의 성장통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꺽꺽 성장통을 앓듯이 계절이 바뀌느라 자연이 겪는 성장통.

 

지난달, ‘루덴스키친’의 영업종료모임이 있었습니다. ‘루덴스키친’은 2 년 전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를 드나들다 사람들이 좋고 취지가 좋아 조합원이 된<루덴스협동조합>의 수익모델입니다. 경험부족으로 고전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선지 십여 명이 모인 조촐한 시간이었습니다.

 

<루덴스협동조합>으로 출발하여 ‘루덴스키친’이라는 상호를 걸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덤덤하게 풀어놓는 이사장의 다소 야윈 얼굴에서 그간의 맘고생이 느껴집니다. 조합원들의 표정도 착잡합니다.

 

조합원으로서 마음을 졸인 첫 경험.<루덴스협동조합>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알고 캠퍼스를 드나들며 처음 가입한 협동조합이었습니다. ‘루덴스키친’은 인생학교 문화기획단이 되어 “우리들의 시간‘이라는 주제로 축제를 펼치기도 했던 한때는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조합원들이 다양한 꿈을 펼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공간이었지요. 그 공간이 영업적자로 문을 닫았습니다.

 

조합원 모두 돌아가며 짧은 소회를 마치고 “식당 영업이 끝난 것이지. 루덴스협동조합이 끝난 것이 아니다. 돈은 잃었지만 우리 곁에는 사람이 남았다. 재도약의 기회로 삼자”는 말과 함께 모임을 마쳤습니다. ‘사람이 남았다.’는 말에 마음이 찡 했습니다.

 

그래요! 둘러보니 사람들, 그것도 마음 통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조합원이 되어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사람들입니다. 갑자기 든든합니다. 인생 중반에 함께 시도하고 함께 내리막을 경험했으니 특별한 인연입니다. 이 기세로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루덴스키친에서 행사 중이었던 모습

 

루덴스키친에서 행사 중이었던 모습

 

문화기획단별별창고의 여성 멤버들과

 

보통 50+세대가 되면 도전을 망설인다는데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아니 예전 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너무 넘쳐서 우선순위를 정해 한 가지씩 이루어나가는 중입니다. 화살처럼 빠른 시간이 안타까워서 잠 못 드는 밤이 반갑기만 합니다. 홀로 깨어 책을 읽고 홀로 깨어 글을 씁니다. 선물 같은 시간이 고맙습니다. 고요한 시간을 조금씩 아껴 씁니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때때로 의심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시도해 봐!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지’

 

누군가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여전히 늦지 않았다는 마음의 소리입니다. 허겁지겁 일어납니다. 하긴, 지금까지 잘 해왔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은 손이 있어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끈 것처럼 말입니다. 여전히 무엇 하나 허투루 버릴 수 없는 값진 경험들을 하면서 분주한 50+를 보내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3년 전 후배의 SNS를 보고 갸웃거리며 서부캠퍼스에 올 때만 해도 앞으로 내 삶이 이렇게 펼쳐지리라는 것은 짐작도 못했습니다. ‘50+인생학교’를 시작으로 탐험하듯 누렸던 캠퍼스의 많은 강좌들. ‘전문강사양성과정’ ‘배낭속인문학’ ‘전자출판’ ‘1인크리에이터’ ‘도시해설’은 물론 갖가지 프로젝트와 기획자 과정까지. 거기에 속한 커뮤니티 활동은 또 얼마나 많이 했는지요. 멋모르고 가입한 루덴스협동조합의 홍보위원장으로 보낸 시간들 역시 많은 추억과 사람을 남겨주었습니다.

 

확실히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년의 기댈 언덕입니다. 50+세대가 함께 오를 수 있도록 널따란 디딤돌을 여기저기 놓아둔 곳입니다. 씩씩한 누군가는 홀로 오르기도 하고 힘에 겨운 누군가는 손잡고 함께 오르기도 합니다. 사정은 달라도 바라보는 방향은 같습니다. 뚜벅뚜벅. 인생학교를 수료한 선배시민의 선한 발걸음이 모여 앞으로 나아갑니다.

 

시간이 더딘가 하면 한순간 훅 지나버립니다. 루덴스키친의 영업종료모임 이후 첫 모임이 있었습니다. 바로 어제입니다. 모인 사람은 여덟 명. 지난 모임 보다 인원은 줄었지만 <루덴스협동조합>의 첫 수익모델이었던 ‘루키’ 영업실패의 경험을 재도약의 기회로 삼자는 뜻 있는 사람들의 의미 있는 모임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부캠퍼스 3층에 모여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배가 출출한 저녁 6시. 따뜻한 밥 한 끼가 마음을 채웠는지 소풍 나온 것처럼 즐거웠습니다. 누구는 돈가스를 먹고 누구는 생선을 먹고 또 다른 누구는 불고기를 먹었습니다. 선택한 메뉴처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그 생각들이 모여 다시 굴러갈 톱니바퀴를 만들려고 합니다. 바퀴가 달린 마차 안에는 잠시 잊고 지낸 꿈이 실리겠지요.

 

살면서 때때로 실패 좀 한들 어떻습니까. 중요한 건 여전히 사람은 남아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남아있다는 겁니다. 눈앞의 시간은 화살 같아도 인생은 생각보다 아주 길다고 하더군요. 지금 시도하지 못하면 십 년쯤 지나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다시 해 볼 것을’ 하면서 말입니다.

 

사진으로 남은 루덴스키친

 

비가 그쳤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함께한 경험이 자산으로 남았으니 새삼 서두를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 힘겨워 잠시 쉼표를 찍고 숨을 고르는 중입니다. 바닥을 쳤으니 꿈을 향해 다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궁시렁 대면서 치맥도 했습니다. 맞아요. 우리는 다시 꿈꾸기로, 이번엔 혼자가 아닌 함께 꿈꾸기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신은 어때요? 이 글을 함께 따라온 그대는요. 그대도 여전히 꿈꾸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