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활사 박물관에서 나의 과거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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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생활사 박물관에서의 추억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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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서울살이도 어느덧 올해로 53년째.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은 강원도 화천초등학교에서 하였고 그 후 1학기가 끝나기 전에 서울로 이사로 왔습니다. 그런 본인에게 서울의 역사를 만나는 이곳 서울생활사 박물관의 방문은 마치 추억여행을 찾아가는 것 같이 마음을 들뜨게 하였습니다.

 

 


박물관 입구, 서울의 시작은 6.25 전쟁 후 우리나라의 가장 어려운 시절의 서울로, 그 당시 서울 시내의 대부분 운반수단이 소가 끄는 마차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산꼭대기에는 우물이 없어 물을 길어 나르는 모습은 그 당시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오늘날의 성장이 꿈만 같은 성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조물품을 기다리는 아이들 모습에서 본인의 어린 시절, 이웃에 미군에서 일하시는 분이 있는 덕택에 맛있는 초콜릿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쟁으로 경쟁상황이 어려웠던 우리나라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도시개발을 하면서 주거공간에 아파트란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리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부가 부러웠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집에 없던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이웃집에 가서 보던 기억도 나면서 오늘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불과 몇십 년 만에 변화한 우리나라의 힘에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텔레비전은 정말 신비할 정도로 재미있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금화 아파트를 보고 정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시절.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영천에서 전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리면서 너무나 아쉬워 하루 종일 전차를 타고 다니고 싶었던 기억도 되살아나면서 그 당시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택시를 불러 타거나 아니면 걸어 다니다가 처음 타본 서울 전차는 매우 신기하고도 즐거운 기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럽여행에서 도심 속에 전기전차와 비슷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가장 반갑고 좋았던 전시는 바로 그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포니’였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차 포니는 학창시절 친한 친구가 학교에서 자신의 집까지 가면서 태워 주었던 유일한 자가용이었습니다. 자가용은 물론 자동차가 흔하지 않은 시절에 정말 부러웠던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서울 남대문의 도로가 정비되고 반포 주공 아파트가 준공되면서 우리나라는 발전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빈부의 차는 더욱더 크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 대표 식품회사였던 샘표식품의 광고 노래는 지금의 50대 이후의 사람들은 거의 기억하고 따라 부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학창시절 이런 보온병을 가지고 다니면 부의 상징이었던 시절도 기억이 나면서 지금 집에 이런 보온병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이니 그 생활사의 변화는 정말 엄청난 차이일 것입니다.

 

 

학창시절 최고의 간식거리는 바로 라면. 초등학교 시절 학교 근처 가게에서 라면을 4등분 하여 수프를 뿌려 판매하던 기억과 중학교 시절 친구 어머니가 끓여주던 라면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량 소비시대가 시작되면서 알뜰한 주부가 선택한 가계부를 보니 36년간 써온 나의 가계부 생각이 났습니다.

본인 역시 36년째 가계부를 쓰고 있는데 신혼 초에 가계부를 쓸 때는 10원 단위까지 맞추어 썼던 기억이 나면서 지금은 1,000원 단위만 챙길 만큼 우리 소비가 더욱 커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 시절 아버지가 중고로 사다 주신 트랜지스터라디오는 그 당시로는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나오는 음악프로는 소녀의 감성을 채워지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자가용도 귀한 시절에 자동차에 전화기까지 있다면 그 당시 상위 1%에 들지 않았을까! 하는 휴대폰의 등장은 참으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코오롱 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회사에서 지급해 주었다고 박물관에 전시된 핸드폰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가정주부였던 본인이나 회사에 다니던 남편에게는 그 당시로는 크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 핸드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과는 격세지감인 상황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생활사는 결혼문화의 변화입니다. 얼굴도 모르고 결혼하던 결혼이 자유연애와 신식 결혼으로 결혼식이 마당에서 올리던 구식과 예식장에서 올리는 신식으로 구분된 것입니다.

 

 
요즈음은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는 시대에 인사 문구까지 그리고 지인의 직접 주소를 적어 보내던 청첩장 시대였던 기억 또한
참으로 변한 세월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단칸방에서 숟가락으로 시작한 신혼의 시작은 얼마 전까지는 초호화 결혼이 성행하더니
요즈음 들어서는 작은 결혼이 다시 시작되는 것을 보면 세월의 흐름은 지속적으로 반복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도 유행을 거의 반복하면서 변화하는 것 같이 우리의 생활도 변화와 변화를 거듭하고 그러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그 당시의 사회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50+세대의 삶도 얼마 후면 보통의 삶이 되고 다시 또 다른 삶의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되는

매우 유익한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50+세대가 추억 여행하기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