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aoTalk_20250916_111923098_01.jpg 

 

가르치고, 배우고, 나누는 삶

-영어강사·멘토·자원봉사자로 살아가는 정영순씨의 이야기-

 

 

스크린샷+2025-09-22+143016.png
 
▲사진) 수업하는 현장

 

소망이라는 창문을 연 아이들과 함께 자라다

빛이 따뜻하게 스며드는 서울의 오후. 그녀는 오늘도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가방을 챙긴다

영어책 한 권, 수업 노트, 그리고 아이들에게 건넬 따뜻한 미소.

정영순씨는 관악구 지역아동센터에서 단시간제 영어강사로 일하며, 동시에 서울시 교육지원정책과 시니어 멘토단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3일은 아동복지교사로 센터 두 곳을 방문해 그룹 또는 1:1 수업을 하고요. 학기 중에는 개인 과외도 해요. 중간·기말고사 시즌엔 정말 바쁘죠.”

 

그녀는 ‘N잡러. 여러 개의 직업을 오가며 일하지만, 그 일의 중심엔 언제나 아이들과의 만남이 있다. 가끔은 관악구 소재 작은 도서관에서 사서 업무도 보고요, 관악구 장애인복지관에서는 장애인식 교육 강사로도 활동 중이에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제 역할이 있다면 좋겠어요.”

 

스크린샷+2025-09-16+174644.png 

▲사진) 장애인복지관 교육 강사 활동

 

절망 속, 만난 희망의 멘토링

지만 그녀의 오늘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10년간 전업주부로 지내던 정씨는 2015, 남편의 실직과 사업 실패로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았다.

스크린샷+2025-09-09+155629.png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였어요. 남편은 실의에 빠져 본가로 내려갔고, 저는 아이 셋을 먹여 살려야 했죠. 정말 막막했어요.” 그 시절, 정씨 가족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했다.

 

구분선2.png


러던 어느 날, 서울시 교육복지 혜택으로 수학 멘토링 프로그램을 소개받았다그땐 과외는커녕 학원도 보낼 수 없는 형편이었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첫째와 둘째가 멘토링을 순차적으로 받을 수 있었어요. 첫째는 서울대생 언니에게, 둘째는 중앙대 수학과 수석 졸업생 선생님께 수업을 받았죠.”

 

그 만남은 아이들의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사춘기로 예민했던 큰아이가 멘토 선생님과 공부하면서 다시 웃기 시작했어요. 성적도 쑥쑥 오르고요. 둘째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수학 기초를 탄탄히 다지면서, 중학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했습니다.”

 

스크린샷+2025-09-16+181151.png 

 

멘토 선생님들은 공부만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작은 학용품도 챙겨주시고, 떡볶이도 사주시고.. 아이가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되어주셨어요. 심지어 숙제 스케줄도 요일별로 짜주시며 꼼꼼하게 관리해 주셨죠. 그때 선생님이 보여주신 다정함과 진심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서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 받습니다.”

 

현재 첫째는 인서울 4년제 대학에 진학했고, 둘째는 원하던 자사고에 들어갔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힘들었던 그 시절, 좋은 멘토링 프로그램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받은 빛, 이제 나도 나눌 차례였어요

아이들이 멘토링 수업을 받으며 서서히 밝아지던 시기, 그녀 역시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되찾기 시작했다

일단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어요. 마침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던 게 생각나서, 2016년부터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하루 4시간씩 일하기 시작했죠.”

 

결혼 전에 영어강사로 일한 경험이 있었지만, 다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용기가 필요했다.

경력단절을 깨는 건 정말 어려워요. 나를 고용해 줄 곳이 있을까, 내가 다시 잘할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컸죠.”

 

런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한 영어과 선생님의 눈에 이력서가 들어갔고, 그 인연 덕분에 다시 본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강사용 마이크를 차고 수업을 시작할 때면 긴장되면서도 설렜다.

 

스크린샷+2025-09-09+161051.png 

 

학생들에게 꿈과 목표에 어떻게 도전하고 이룰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제가 10kg을 감량한 다이어트 경험이라든지, 또래인 제 아이들의 학습 성공기를 들려주면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유대감을 쌓았죠.”

 

그렇게 그녀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2017, 다시 한 번 제안을 주셔서 2년간 방과후 수업도 진행했어요. 오전에는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오후엔 방과후 강사로, 그리고 주 1회는 도서관에서 자원봉사까지 하며, 엄마로만 살아오던 제 인생에도 새로운 역할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죠.”

 

구분선2.png

 

학교 성적이 좋았던 자녀들 덕분에 그녀에게 개인 과외나 학습 상담을 부탁하는 지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개인 수업이 이어졌고, 2019년부터는 보육교사 일을 그만두고, 교육청에 정식 신고 후 개인 과외를 시작했다.

 

한때는 따로 공부방도 운영했었어요. 지금은 개인 사정으로 정리했지만, 중간·기말고사 시즌엔 여전히 단기 수업 요청이 들어와요. 그럴 때만 가끔 수업을 하고 있죠.”

 

어느덧 그녀는 다시 아이들의 곁에서, 배움을 이어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진심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우리에게 내밀어 준 손, 그 햇빛 같은 멘토링이 우리 가족을, 그리고 지금의 저를 자라게 해주었어요. 이제는 제가 그 빛을 전하고 싶습니다.”

 

 

서울런 시니어 멘토가 되기까지

렇게 교육 현장에서 자신감을 쌓아가던 어느 날, ‘서울런 시니어 멘토단 1기 모집공고를 마주했다. 시니어 멘토단 1기 모집 공고를 처음 봤을 때, 정말 이거다!’ 싶었어요. 지원서를 작성하는 내내 가슴이 뜨거웠고, 꼭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죠.”

 

 스크린샷+2025-09-19+125049.png

녀는 자신이 겪은 삶의 전환기를 진심을 담아 적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멘토링 수업으로 공부에 뜻을 두게 된 계기, 공부방을 하면서 주위 일하는 엄마들을 대신해서 이모처럼 아이들 먹이고 공부시킨 얘기, 공부할 때는 엄격하지만 칭찬할 때는 물개박수로 아이들 용기를 북돋운 이야기 그 어느 하나 거짓없이 말씀드렸고, 저와 제 아이들이 얻었던 기회를 다른 친구들에게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엇을 할지 몰라 핸드폰만 붙들고 있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지금은 꿈꿀 떄야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저의 바람을 지원서에 썼습니다.

 

1차 서류 합격에 이어 2차 면접. 다른 지원자들은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어 보였지만, 그녀는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손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긴장을 했고 떨리는 목소리지만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신껏 면접에 임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멘토링 활동

정씨는 서울살이 20여 년을 관악구에서 했다. 관악은 저소득층 가정이 많고, 단지 돈뿐 아니라 꿈을 꾸는 분위기자체가 부족한 곳이에요. 부모세대가 힘들게 살아왔기에 아이들도 비슷한 삶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죠.”

 

스크린샷+2025-09-22+143418.png 

 

그녀는 멘토링 초반, 관악구 학생들과의 매칭을 희망했고, 수요가 많았던 덕에 비교적 빠르게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동작구, 송파구, 용산구 등 다양한 지역의 아이들과도 연결되며 멘티 수가 늘어났다.

 

구분선2.png



스크린샷+2025-09-16+174446.png

▲사진) 텃밭을 가꾸고 있는 정씨

 

정씨는 자칭 텃밭 농사꾼이다. 낙성대 근처에서 옥수수, 감자, 상추를 기르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식물의 자람을 즐긴다.

 

멘토링도 농사랑 똑같아요.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기다리는 거죠. 바로 수확이 없어도 실망하지 않아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이니까요.” 

그녀의 수업은 단순히 성적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고, 격려로 자신감을 키우는 데 더 초점을 둔다.

 

영어 말하기, 에세이 쓰기, 암기법 등 제가 직접 써본 방법을 알려주면 아이들이 정말 열심히 따라와요. 성적이 오르면, 시험 끝나자마자 저한테 전화해서 자랑해요. 심지어 아이들이 엄마보다 저한테 먼저 점수를 말해주는 경우도 많아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수확의 기쁨을 그대로 느끼게 됩니다.”

 

씨가 멘토링을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저보다 더 잘 가르치는 인강 강사나 학원강사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아이만을 위한 수업을 하거든요. 일대일로, 그 아이에게 맞는 방식으로, 그리고 진심을 담아서 격려하고 마음을 읽어주기 때문에 제가 아이들에게 전하는 가치는 남다를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서울시 시니어 멘토단으로서의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녀에게 멘토링은 단순한 교육을 넘어 함께 자라는 경험이다.

 

 

서울시장 표창, 노력과 열정이 만든 나만의 이정표

 

스크린샷+2025-09-22+143533.png 

▲사진) 서울시 평생교육분야 시민유공자 표창장 수여식

 

울시장 표창장을 받던 날, 그녀는 울컥했다. 감격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벅차올랐다. 우리 집안 경사였어요. 부모님도, 식구들도 모두 함께 축하해줬죠.”

 

이 상은 단순한 상장이 아니었다. 그녀의 인생 여정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이자, ‘잘 가고 있다는 사인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다양한 교육 현장에서 영어 강사와 멘토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 길은 결코 단숨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항상 열심히하는 성격이다. 그냥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서울시장 표창이라는 값진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결혼 전에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인 퍼샤와 지방에서 난민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었어요. 그때 처음 영어 수업을 맡았는데, 그 시작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죠.”

 

영어는 학창시절부터 잘했고, 좋아하는 과목을 가르치는 재미도 쏠쏠했다. 대학생 시절에는 교회 언니가 운영하던 공부방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며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교육의 세계에 스며들었다.

 

사실 이번에 관악구 아동복지교사로 단 1명만 뽑는 단시간제 일자리에 합격한 것도, 이 표창장과 서울런 시니어 멘토단 경력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게는 또 다른 도전의 디딤돌이 되어줬죠.”

 

구분선2.png

 

토링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또 다른 전환의 순간을 맞이했다. 단지 일이나 경력을 넘어, 자녀들을 대하는 태도와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

 

사춘기 자녀들과는 늘 많이 싸웠어요. 저는 집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엄마였고, 아이들은 반항했죠.”

 

하지만 멘토링을 통해 또래 학생들을 만나면서, 요즘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감정, 그들의 고민과 일상의 리듬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수업 전 건네던 이번 주는 어땠니?”라는 질문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워밍업이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제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결과만 보고 다그쳤다면, 지금은 그 과정까지 함께 보려 하죠.

 

그녀는 이제 아이들과의 관계를 운동에 비유한다. 워밍업을 하고 운동을 시작하듯, 아이들과의 대화도 마음을 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잔소리를 줄이고, 귀를 열고, 기다려 줄 준비를 하는 거죠.”

 

 

주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라는 걸 믿어요.”

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 “주는 자가 복되다. 돈은 따라오는 거니까, 돈을 목표로 삼지 마라.” 이 말 역시 그녀가 아이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다.

 

지금 제가 뭔가 엄청난 꿈을 이룬 건 아니지만, 여전히 이루어가는 중이라고는 말할 수 있어요. 50이 넘어서도 읽고, 쓰고, 배우고, 꿈꿉니다. 가진 게 많진 않아도,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매일 노래하며 살아요.”

 

스크린샷+2025-09-16+174545.png 

그녀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인생은 선물이야. 너만의 삶을 향한 뜻이 분명히 있어

그러니 매일 보물찾기 하듯 재미있게 살아봐. 

금은 학생이니까, 책도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해보는 거야.”

 

그녀는 자신이 거창한 것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먼저 살아본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꿈꾸는 법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내 아이들에게 길을 안내해 줬던 그 대학생 멘토처럼, 저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백발이 되어도 멘토링을 하고 싶습니다

간이 흐를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낀다. 체력도 예전만큼 따라주지 않고, 아침마다 무거운 몸을 일으킬 때면 내가 참 많이도 달려왔구나싶은 생각이 든다.

스크린샷+2025-09-16+174940.png 

▲사진) 서울런 행사 참석

 

2016년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끊임없이 일하고 배웠다. 돌이켜보면 치열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조금 더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제는 체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더 소중한 일,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그래서 멘토링 수업은 백발이 되어서도 하고 싶습니다.”

 

꿈은 단지 바람이 아니라, 그녀가 이미 한 발자국씩 준비하고 있는 다음 단계이기도 하다. 2년 전, 경기도 안산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아프리카계 초등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며, “한국어를 몰라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직접 마주했다. 그 경험이 지금 그녀의 또 다른 여정을 만들었다.

 

그때 느꼈어요. 한국어 교육이 꼭 필요하구나. 그래서 지금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과정도 수강하고 있고요. 곧 실습을 마치면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에도 도전할 계획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관악구 공부방에서 만난 중국계 아이들을 위해 중국어도 다시 배우고 있다. 거창하게 중국어를 구사해서 설명하진 못하지만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요. ‘영어가 너희에게 어려운 것처럼 선생님한테도 중국어는 참 어렵다고요. 그렇게 공감해 주고 싶어요.”

 

그녀는 여전히 도전 중이다. 여전히 배우고, 느끼고,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여정을 통해 누군가의 가능성에 불을 붙이는 일, 그 자체를 자신의 삶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인생은 선물입니다, 문을 두드리세요.

50플러스 재단을 통해 시니어 멘토단이 된 것은 그녀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50이 되어 시작한 인생 2막을 저는 감사하며 늘 즐기고 있어요. 한쪽 문이 닫히면, 분명 다른 문이 열립니다. 이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이 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드려보라고 말한다.

 

꼭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라면, 봉사로도 도전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아요. 저희 어머니도 80을 바라보시지만, 경로당에선 여전히 막내세요. 회장이기도 하시고요. 90대 어르신들과 밥도 나눠 드시고, 문화활동도 함께하십니다. 그 모습을 보면, ‘사는 맛이 뭔지를 다시 느끼게 돼요. 움직이며 운동도 하고, 보람도 찾는 거죠.”

 

지막으로 그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조심스레 꺼내놓는다.

그녀의 지금을, 앞으로의 시간을, 그리고 인생 자체를 대변해 주는 듯한 시구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

 

그녀는 오늘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을, 아이들에게 조용히 전해준다.

 

얘들아, 지금은 꿈꿀 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