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집’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시행한 공익활동 지원사업에 참여한 더함플러스협동조합의 결과물입니다.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더함플러스협동조합과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건설회사 출신이 보는 집이야기

 

김형정

 

집하면 어릴 때 추억이 떠오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들과 같이 살았던 용두동 집. 할아버지가 제 손을 잡고 마당을 산책 시켜주시면서, 마당에서 야채 이름은 잘 생각 안 나지만, 꺾어서 먹여 주셨던 야채의 향기가 아직도 코끝을 스칩니다. 대가족 틈 사이에서 놀기도 하고, 사고도 치는 저에게는 대가족이 함께 사는 집은 놀이 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집 살이를 하는 어머니에게는 2남 4녀의 시집살이를 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그 후 부모님은 분가해서 셋방살이를 하셨지만 시집살이에서 해방되어서 어머님은 행복해 하셨습니다. 우리 집을 아버님이 혜화동에 마련하셨을 때, 집을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우리 삼남매는 부모님이 기뻐하시니 덩달아 기뻐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저에게 집은 대가족의 화목함과 가족끼리의 오순도순함이 배어있는 있는 공간으로 추억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건설회사에 취직하고 결혼한 후, 처음에는 부모님과 같이 살다가 분가해서 살았기 때문에 집을 생각할 때 아직도 아늑함과 오순도순함으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저를 포함한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집이 경제적 가치로 인식되기 시작한 거죠. 1980년대는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고, 국민 모두가 부동산 폭등을 새로운 부의 증식을 갖게 되는 기회로 여 겼습니다. 당연히 제가 다니는 건설회사의 수익 대부분은 대규모의 주택공급을 통한 이익이었습니다.

아파트라는 미명하에 집은 대량화되고, 가족들은 단지속의 핵가족으로만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노태우정권의 200만호 공급은 양적공급의 정점이었습니다. 집은 아파트로 표준화 되었고, 가족들은 경제적 가치가 상승하는 가족의 삶에 만족하고, 내가 가진 것이 얼마인지 계산해 보면서 현재의 상황에 적응하며 살았습니다. 현재도 강남의 집값이 얼마인지는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본인이 소유한 집과 강남의 집값을 비교해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비교우위로 편안해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와중에 세 번의 이사를 거쳐 집을 마련했습니다. 예전에 건설회사 출신들이 집을 마련하는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건설 회사 직원은 의무적으로 리비아,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말레이시아 등 주로 더운 열사의 나라 현장에 근무해야 했기에 그 때가 집을 마련하는 시기였습니다. 해외현장 수당이라는 것이 있어 국내 월급보다 상당히 많은 액수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돈을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관리만 잘하면 해외현장 3년 정도 갔다 오면 집을 한 채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장 발령이 날 것 같으면 원하는 집을 은행대출을 끼고 산후에 그 집은 전세를 주고 당사자는 해외현장에서 근무합니다. 귀국할 때까지 아내와 자식들은 처가에 머물며 집을 마련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요즘 용어로 하면 몸으로 때우는(?) 갭투자를 해서 집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국내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서 집값이 오를 거라고 예측해서 과감히 은행대출을 받는 사람도 있었지만, 1980년대만 해도 은행이자 무서운 것을 알기에 아무리 좋은 정보가 있어도 과감히 요새 말하는 레버리지를 사용한 투자는 하지 못했습니다.

잠실2단지 아파트건설 사업 담당자에게 레버리지 투자를 하면 어떻겠냐 했더니, 자기가 담당자지만 이런 고가격 아파트에 은행돈을 빌려 아파트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컨설팅 해줘서 나중에 동료들에게 원성(?)을 많이 받았습니다. 결론은 건설회사에 다녀서 아무리 정보도 많이 알고, 미분양을 접할 기회가 있어 집을 저가에 구매할 기회가 있어도 다른 사람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각 건설회사에는 주택연구팀이 있 습니다. 그 곳에서 주택소비자들을 연구하고 소비자의 수요 와 취향을 조사 합니다.
 

특히 주부 체험단을 통해 집을 선택하는 오피니언 리더인 주부들의 의견을 평면에 반영하여 새로운 아파트 평면을 만들어 시장에 공급합니다. 애석하게도 가족과의 단란함을 강조하는 공간의 수요는 많지 않습니다. 건강, 육아, 문화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의 수요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응답하지만, 3세대가 어울리는 공간의 수요는 많지 않습니다. 주택공사에서 공모를 통해 표준형 3세대 거주형 평면을 내놓았지만, 임대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뿐 실제 3세대가 거주해서 화목함을 구현하는 기능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다시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여 다시 봄이 오듯 65세 이상이 전체인구의 14%를 넘은 고령시대를 맞이하여 사람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습 니다. 인구구성에서 고령자들이 많아짐에 따라 가족의 추억이 있는 대가족을 이상적으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그렇게 핵가족을 원했으면서도 말이죠. 우리 어머님도 예전의 대가족처럼 부대끼며 살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가족구성원이 그립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다시 그 시대의 분위기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제2의 가족인 사회적 공동체가 우리의 대안으 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를 반영한 주택의 수요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형건설회사에서는 아직 이런 분야를 연구만 할뿐, 소비자의 수요가 적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공급에는 소극적입니다.

 

사회적 공동체는 우리에게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비전을 불어 넣음으로서 우리의 미래를 일깨워 줍니다. 그 미래는 음표들이 함께 어울려 조화로운 소리를 내듯, 더 사랑스러운 사회와 가족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회적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떠나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변화된 개인은 사회변화를 위한 촉매가 됩니다. 사회적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가 내가 속한 곳이다. 이들은 내 사람들이다. 나는 이 사람들을 좋아하고 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한다. 나는 그들에게 속해있다. 나는 그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들은 나의 관심사를 공유한다. 나는 이 곳을 안다. 나는 이 곳에 친숙하다. 이 곳은 나의 집이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버리는 인생에서 좀 더 알차고 생기있게, 즐겁고 행복하게 더불어 살아가면 좋겠다는 염원을 합니다. 새로운 사회적 공동체는 지금 미래를 살고 있습니다. 사회적 공동체는 새로운 사회형태를 개척하고 실험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선도합니다. 언제나 자기만의 시간을 쫓는 개인들이더라도 사회적 공동체는 새로운 영역을 혁신하고 탐험하는 집단 중의 하나입니다. 이처럼 미래의 사회적 공동체는 사회진화의 다음 단계를 개척할 것입니다. 향후 도봉산 자락에 위치한 코하우징인 은혜공동체 같은 사회적 공동체와 그 삶을 반영하는 주거형태가 많이 생기고, 또한 사회적 공동체가 공간적으로 많이 진화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건축가 Kevin Roche의 말로 마무리합니다,
“건축은 첫째로 누군가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며, 그 요구가 무엇인가를 완전히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김형정

시니어 케어에 관한 일을 합니다.

대기업 건설사에서 28년간 일을 했고, 공동체 주택 조합원으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주거형태를 만들어 보는 일을 인생후반기의 업으로 삼고자 합니다.

협동조합, 마케팅, 사회복지업무, 컨설팅 등의 일을 연구하고 있고 주변의 전문가들과 같이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