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져가는 커피시장, 시니어 위한 ‘틈새’ 있을까

 

한국인의 커피사랑은 어느 정도일까?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발간한 시장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은 1년 동안 413잔의 커피를 마셨다. 매일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 셈이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014년에 비해 30% 이상 성장한 6조441억원 규모다. 이렇게 시장이 매년 성장을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니어들도 커피를 기호식품이 아닌 사업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교육 과정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심 걱정도 된다. 주변을 살펴보면 카페가 즐비한데 인생 후반전의 또 다른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이 커피는 신맛이 나면서 약간 과일 향도 느껴지네요. 먼저 마신 것과 완전히 달라요.”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 내일행복학교의 바리스타교육 현장. 한 참가자가 사뭇 진지한 표정 으로 커피를 평가한다. 같은 원두로 내린 커피인데 로스팅(수확한 커피콩의 맛을 내기 위해 열을 가하는 과정)과 분쇄에 따라 달라진 맛을 보고 감탄한다.

이들은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막 첫발을 내딛은 사람들이다. 내일행복학교의 바리스타교육은 최초의 시니어 대상 커피교육 과정으로 꼽힌다.

2010년 6월에 문을 열었고, 지금은 이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된 시니어 바리스타들이 활동하는 카페가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운영되고 있다.

 

 

시니어 일자리의 첨병 역할

이 교육을 시작으로 현재는 다양한 기관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시니어 커피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시니어 교육 기관인 50플러스센터는 물론이고 사회복지관이나 지자체 차원에서의 교육도 진행 중이다. 우리가 잘 아는 스타벅스도 시니어 대상의 커피교실을 개최한 적이 있다.

시니어들의 이 뜨거운 커피 열기를 어떻게 봐라봐야 할까? 관계자들은 청년들의 관심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바리스타 단기 교육과정을 운영 중인 서울남부기술교육원 관계자는 이 현상을 이렇게설명한다.

 

“시니어 입장에서 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여러모로 유용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워낙 카페들이 많이 생기니까 자리가 나면 취업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직접 카페를 창업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또 반드시 직업이 아니더라도 모임이 많은 노후에 유용하게 활용할수도 있죠.”

 

시니어 대상 커피 교육이 활성화된 데에는 지자체나 정부기관이 커피를 유용한 노인일자리  대책의 한 분야로 판단한 것도 영향을 줬다. 커피를 내리는 일이 육체적으로 강한 근력을 요구 하지도 않고, 비교적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시니어에게 적합하다는 인식이 많다. 실제로 부산시나 인천시 등 일부 지자체 공공기관에는 시니어 바리스타를 고용한 ‘실버 카페’의 설립이 붐을 이루고 있다. 공공기관에도 커피를 마시려는 수요가 존재하고 카페는 큰 예산 마련 없이도 어렵지 않게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 지역 내 사회복지관등 교육기관과 연계해 시니 어 바리스타를 수급하는 모델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건물뿐만 아니라 활용 가능한 문화재 시설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카페 창업 전망은 어떨까

시니어에게 카페 창업은 취미와 직업이 결합된 로망 중 하나로 꼽힌다. 매장이 클 필요도 없다. 가져가는 손님만 상대로 하면그만이다. 꼭 대로변 임대료가 비싼 곳일 필요도 없다. 동네 단골이 생기면 그럭저럭 운영이 가능해보인다. 최근엔 장비 값도 내려가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고, 식당이나 술집에 비해 노동 강도도 낮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경쟁력 있는 카페를 유지해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고 설명한다. 미국과 유럽의 바리스타 교육관이자 시험 감독관 인 신림 마티스커피 심병준 대표는 두 번 세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충고한다.

 

“많은 시니어에게 카페 컨설팅 의뢰를 받는데 대부분 쉽게 생각하고 찾아와요. 커피는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시장입니다.

기계를 다루는 데도 노하우가 필요하지 않죠. 처음에 익히는 것이 힘들지, 알고 나면 커피를 내리 는 과정은 매우 쉬워요.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고, 이미 시장에서 커피 가격이 내려간 상태이기 때문에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게 되었어요. 함부로 뛰어들었다가는 창업 자본을 까먹기에 딱 좋죠.”

 

커피가 시니어들에게 어려운 부분 중 하나는 고객층에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카페는 요즘 유행 하는 인형뽑기방이나 빨래방처럼 장비만 놓으면 그만인 분야와는 다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시니어들도 커피를 많이 즐기지만, 카페의 실질적인 고객층은 20~30대예요. 그런데 이들 입장에서 접객인이 나이가 많으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실제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바리스타를 고용할 때 청년들을 선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고, 시니어가 운영하는 카페가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에요. 따라서 ‘내가 어른인데’ 하는 권위의식을 버리고 시니어가 가진 강점을 개발해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특히 커피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카페만의 특화된 경쟁력을 가지려면 철저한 사전준비와 공부가 필요해요.”

 

그렇다고 커피시장이 시니어에게 틈새 없는 레드오션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커피시장이 만들어낸 일자리가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퇴직 전 근무하던 분야가 무역과 관계 되는 일이었다면 커피를 거래하는 일에 뛰어들어도 된다. 커피는 원유와 함께 선물 시장에서 취급되는 주요 상품 중 하나다.

또 해외에서는 커피머신을 전문적으로 세척, 수리, 세팅하는 엔지니어가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 받는 추세다. 커피머신의 조정값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예 커피콩을 직접 키워볼 수도 있다. 온난화하는 기후 탓에 국내에서도 커피콩 생육을 시도해 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커피, 어떻게 배워야 할까

커피를 배우는 과정은 워낙 다양해 꼭 집어 무엇이 옳다 말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커피시장을 이끌었던 유명 바리스타들의 학원식 교육과정도 있고, 대학 교육과정도 있다. 가톨릭관동대학교, 나사렛대학교, 충북대학교 등의 평생교육원을 통해 커피를 배울 수도 있다. 단국대학교에는 문화예술대학원 커피학과가 운영 중이다. 학교가 부담스럽다면 앞서 설명한 각 지역 50플러스센터나 기술교육원, 사회복지관에서 하는 강의를 찾아 들어도 된다. 일부 문화센터도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있다.

커피 관련 자격증 중 국내 자격증은 모두 민간 자격증이기 때문에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취업을 하거나 카페를 창업하는 데 필수도 아닌 데다, 업계에서도 자격증 에 따라 크게 대우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젊은 바리스타를 중심으로 바리스타 대회가 인기를 끌고 있다. 커피 추출 실력이나 자신만의 원두를 혼합한 블랜딩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 이를 계기로 업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도 있고, 인맥을 쌓을 수도 있다. 이런 대회는 시니어 바리스타 상대로도 열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한국노인인력 개발원에서 노인고용 주간을 맞아 ‘시니어 바리스 타 경연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커피를 어디서 배우느냐보다는 커피를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순히 기계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쉽고, 커피에 대한 공부뿐만 아니라 커피와 함께 고객을 유인할 상품이나 공간에 대한 고민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치열한 대한민국의 커피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MINI INTERVIEW]

꿈나눔까페에서 바리스타 꿈 키워가는 하용자씨

“커피 한 잔에 행복과 자부심을 담아요”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노인복지센터에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사회적 기업 은빛행복가게의 꿈나눔까페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보통의 카페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커피를 내리고 있는 바리스타들의 연령이다. 모두 유니폼을 입고 있어 평범한 카페인 줄 알았는데, 모자 사이로 나온 흰머리를 보고서야 이들이 시니어임을 알아챘다.

 

하용자(河龍子·64)씨는 이곳에서 일한지 3년 차 되는 베테랑이다.

“은퇴 후에 아이들 다 키워놓고 돌아보니 나이 먹고 할 수 있는 직업이 있어야겠더라고요. 할 만한 것이 뭐가 있나 고민을 했죠. 그러다 우연히 어르신취업훈련학교에서 진행하는 내일행복 학교의 커피학교 과정을 알게 됐어요.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죠. 워낙에 커피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데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강한 근력이 있어야 하는 일은 아니니까 지금 나이에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배우는 과정이 모두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고압의 증기를 뿜어내는 기계를 만져야  하는 일이다 보니 막연히 겁이 난 적도 있다고 했다. 또 초보 바리스타시절에는 손님이 커피를 받기 위해 줄 서있으면 마음이 조급해져 하지 않아도 되는실수를 반복하기도 했다고.

바리스타는 단순히 커피를 추출하는 직업이 아니다. 고객을 상대해야 하므로 늘 손님을 맞이할 준비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일들이 쉽게 익숙해졌을까?

 

“제가 이래 봬도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매니저를 10년이나 했던 사람이에요. 사람을 대하는 일은 능숙해요. 백화점이 까다로운 손님이 많은 곳인 만큼 제대로 단련이 된 셈이죠. 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도 생겼죠. 물론 이곳 손님들이 나이가 많은 편이라 반말하시는 분도 많고 불친절한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유연하게 잘 대처하고 있어요.”

 

단순 응대뿐만 아니라 이제는 단골 성향까지 꿰고 있을 정도가 됐다. 자주 오는 고객의 커피 성향을 파악해놨다가 기호에 맞게 농도를 조절해 내놓는다. 얼굴을 잊지 않는 매니저 출신만이 가능한 무기다.

엄마와 아내의 갑작스런 변신을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경제적으로 힘든 것도 아닌데 손님을 대하는 일에 대해 부정적이진 않았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남편이 적극적으로 밀어줬고, 아이들은 카페로 와서 제가 내린 커피를 마시고 간 적도 있어요. 이제 아이들도 커피에 관심이 생겨 드리퍼까지 사서 내려 마실 정도가 됐죠.”

하씨가 가장 자신 있는 커피는 기본 아메리카노다. 졸업시험 때 반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고, 본인도 가장 즐기는 커피라고. 가장 저렴한 메뉴이지만 한 잔 내릴 때마다 찌꺼기를 깨끗하게 닦아내는 등 허투루 내놓는 법이 없다. 맛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씨에게 ‘바리스타 하용자’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했다. 지금의 일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100% 만족한다고 답한다.

 

 

“다른 카페에 비해 이곳은 특별해요. 시니어들에게 취업 기회를 주기 위해, 한 달에 40시간만 일하며 여러 명이 일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어요. 하지만 시니어 바리스타에게는 이런 자리도 무척 귀해요. 짧은 시간이지만 시니어 바리스타를 뽑아서 다행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해요. 그래야 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에게 모범이 될 테니까요. 이 나이에도 일을 가질수 있다 는 것은 제 삶에 활력을 주고 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돼요. 다른 분들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인생을 즐기며 사셨으면 합니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