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커피만큼이나 음미할 만한 강서50플러스센터의 SC(Specialty Coffee) 강좌 

 

기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떡볶이집이 있어서 식구들이 주전부리가 필요할 때 애용해왔다. 그런데 얼마 전에 보니 가게 문을 닫는다고 써 붙여 놔서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그래도 찻길가에 코너 자리라 목이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어떤 가게가 대신 들어오나?’ 했더니 역시나 커피숍이 들어섰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웬만한 건물이라면 1층에 커피숍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기야 60대 중반의 나이인 기자도 저녁 모임에서 1차가 끝난 후 2차로 술자리를 간 경우가 몇 년 전이었는지 거의 기억에 없고, 대개 자연스럽게 커피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처음에는 한 잔에 4~5,000원 하는 커피값이 아까워 보였으나, 쾌적한 장소에서 1시간여 동안 시간을 보내도 뭐라 않을 뿐 아니라 주위에 아예 노트북을 켜놓고 공부하는 학생들도 보이니 마음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이래저래 스타벅스를 필두로 투썸플레이스, 이디야, 커피빈, 파스쿠찌 등등 여러 국적의 브랜드 커피 프랜차이즈가 서울 웬만한 대로변에는 눈만 돌리면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KOSIS(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커피 소비량은 2020년 기준 약 17만 6,000톤이라고 한다. 국내 생산이 거의 없으니(기후상 어려운 가운데서도 국내 재배에 힘쓰는 분들이 분명 존재하기는 한다.) 대부분 수입이라고 봐야 한다. 세계 전체 생산량이 매년 1,000만 톤 내외에 이르니까 약 1.8%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비하는 셈이다. 1인당 연간 소비량은 아직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랜드, 네덜란드 같은 북유럽국가를 포함하여 커피가 완전히 일상화되어 있는 서구국가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소비량 증가 속도는 세계 평균의 2배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전국에 있는 약 7만여 개 커피 전문점(이 중 약 4분의 1이 브랜드 프랜차이즈이다.)의 매출액 합계가 미국, 중국에 이어서 세계에서 3번째의 규모를 가진다고 한다. 그만큼 집 밖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다른 나라보다 흔하다는 얘기다.

 

50플러스 세대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처럼 해방 후 미군의 인스턴트커피에 의해 대중화가 시작된 커피는 1970년대 중반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믹스커피가 개발되면서 커피 마시는 것이 거의 일상화되었다. 1999년 스타벅스가 원두커피 전문점 시대를 열면서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프랜차이즈가 아닌 커피 전문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부터는 커피시장의 성장과 함께 다양한 커피 향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원두 등급이 높은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를 찾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덩달아 과거부터 커피 추출 전문가인 바리스타(Barista) 자격증을 따보려는 사람뿐 아니라, 좀 더 남다르게 커피를 즐겨보려는 사람까지 겨냥한 커피 전문 강좌들이 다양하게 생겨났다. 강서50플러스센터도 커피 관련 강좌를 꾸준히 열어오고 있는데, 8월부터는 새로이 스페셜티 커피(SC)를 주제로 ‘맛있는 커피! 야! 나두 내릴 수 있어!’라는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 자격증반을 개설하였다. 마침 8월 24일에 이루어진 세 번째 시간에 기자가 참관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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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강서50플러스센터 ‘속닥속닥50+살롱’ 강의실과 수강생 / 강의실 한켠에 마련돼 있는 커피머신과 그라인더, 커피잔 등 집기들 / 수업에 사용될 블라인드 처리된 커피와 원두 샘플

ⓒ 50+시민기자단 박동원 기자

 

강좌 시작 전에 여유 있게 도착한 덕분에 이 과정을 담당하는 노영태 강사에게서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스페셜티 커피란 지정된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평가된 커피를 일컫는데, 그런 기준과 평가 룰을 관장하는 국제적 단체가 SCA라고 한다. 노 강사는 단순히 SCA 자격증을 소지한 것뿐 아니라, 그러한 자격증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실제 필기·실기 시험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공인자격증인 AST(Authorised SCA Trainer)까지 보유하고 있는 실력파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커피는 원가 문제와 대중적인 향미를 위하여 생두(Green bean)를 대개 강하게 로스팅(Roasting)하는 데 비해서 스페셜티 커피는 양질의 생두 품종을 다양하게 로스팅하여 개성 있게 음미하려는 목적의 커피라고, 일단 기자의 상식 수준에서 이해하였다.

 

이 클래스는 정원이 10명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여성 7명과 남성 3명으로 이루어진 수강생이 하나둘 출석하여 자리를 잡았다. 사실 강서50플러스센터 1층의 ‘속닥속닥50+살롱’ 강의실은 꽤 널찍하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여유가 있는데 왜 10명만 받지?’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러나 수업을 시작하면서 이내 기자가 가졌던 의문이 풀렸다. 노영태 강사가 수업 첫 부분에 지난 시간 수업내용을 간단히 복습한 뒤 수강생들에게 직접 커피를 정성스레 끓여서 일일이 대접(?)하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덕분에 기자도 색다른 스페셜티 커피의 향미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노영태 강사가 수강생들에게 커피를 제공한 것은 단순히 인사치레 때문이 아니었다. 각자 커피의 향미(향기와 맛)를 음미해보고 그것을 서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려는 것이었다. 며칠 전 노 강사가 어떤 업자에게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의뢰받은 원두 시제품 세 가지를 차례로 직접 내려 나눠 마시면서 스페셜티 커피에 관한 지식과 정보와 경험을 자연스레 가르쳐 주는 방식의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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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수강생 도착 전 커피를 내려보고 있는 노영태 강사 / 수업 진행 계획에 대해 설명 중인 강사와 경청 중인 수강생들 / 내추럴 원두와 워시드 원두 샘플을 보여주며 강의 중인 광경

 / 커피를 내린 후 생기는 silverskin을 직접 보여주는 노영태 강사 ⓒ 50+시민기자단 박동원 기자

 

물론 인간의 미각은 각자 주관적일 수 있으니, 수강생마다 커피를 조금씩 음미하고 나서 강사나 다른 수강생과 대화로 표현하는 것이 색다를 수 있다. 그러나 노영태 강사는 다시 강조한다. “지금 맞고 틀리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스페셜티 커피가 어떤 것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을지 오감으로 느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옆에서 지켜보니 사실 수업이라기보다는 마치 50플러스 세대 남녀들이 막냇동생이나 후배를 중심으로 카페에 둘러앉아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가 뭐냐 하면 말이야…”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두 시간의 강의 중 절반 이상이 지나자 비로소 노영태 강사가 사전에 준비한 슬라이드로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하였다. 사실 강의 내용의 상당 부분이 전반부의 시음과 대화를 통해서 이미 나왔던 내용이지만 좀 더 체계적이고 풍부한 내용들을 차례대로 설명해주니 자연적으로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슬라이드 강의의 주요 내용을 간단히 보면 다음과 같다.

 

-커피 원두는 수확 > 가공 > 건조 과정을 거쳐서 생산된다.

-수확 방법은 Hand Picking(손으로 알알이 따내기), Stripping(훑기), Machine(기계 사용)으로 나뉘며, 사향고양이, 다람쥐, 코끼리 등의 동물을 통한 방법이 있다.

-가공 방법은 Natural(자연상태), Washed(세척), Pulped Natural(중간) 방법이 사용된다.

-생두(green coffee/bean)는 알 크기, 생산고도, 결점두(defects) 숫자 등의 기준에 따라 구분된다.

-생두 등급은 생산국별로 크기를 기준으로 하기도 하고 결점두를 기준으로 하기도 한다.

-스페셜티 커피는 결점두 점수, 그린커피 크기, 수분 함유율, 그린커피 향(odor), 퀘이커(Quaker; 미성숙 생두), 독특한 커핑(coffeeing) 보유 등 5가지 항목에서 80점 이상의 평점을 받아야 인정된다.

노영태 강사와 수강생들은 오늘 가지고 온 스페셜티 커피의 시음과 토론을 통해서 짐작한 정보를 바탕으로 블라인드 테스트했던 커피의 종류를 추정해 보았다. 노 강사의 슬라이드 설명으로 정리된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기자의 어설픈 생각에도 그 결론이 정확하지 않을까 판단되었다. 하루만 강좌를 들어도 나름 커피에 대한 상식이 확 늘어난 것 같은데(물론 기자가 커피를 마시기만 했지 깊이 있는 스토리에는 거의 무관심했던 점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강좌 수강생들이 앞으로 일곱 번을 더 공부한다면 정말 SCA 멤버 자격이 충분한 커피 전문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강의였다. 묵직한 바디감을 지닌 커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충실한 강의를 펼쳐 주는 노영태 강사와 같은 안내자와 함께라면 말이다! 

 

 

50+시민기자단 박동원 기자 (parkdongwon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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