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캠퍼스 ‘핸드메이드공예클럽’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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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메이드공예클럽’ 회원들이 ‘옷캔’에 기부할 영유아 물품을 포장하고 나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옷캔’은 의류 재활용을 통해 국내외 소외계층을 돕고, 의류 재순환을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NGO 단체입니다. © 50+시민기자단 이경걸 기자

 

약간은 흥분한 듯, 조금은 들떠 있는 듯 

정확히 기억합니다. 6월 16일입니다. 예정하지 않은 인연(因緣)과 엮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서울시50플러스 북부캠퍼스 지하 1층 지원실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지원할 학습이 없는 날이어서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학습지원단 목걸이를 하고 있더라도 눈치껏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는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랬는데…, 그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사진을 좀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네? 제가요?”

“네~. 50+시민기자니까 잘 찍을 거 같아서 부탁드려요.”

 

피할 수 없는 운명(運命)이었습니다. 이런 걸 일컬어 숙명(宿命)이라 한다지요. 50+시민기자니까 사진을 잘 찍을 거라 믿고 부탁한다는데 도무지 거절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혹시 모르겠습니다. 50+시민기자니까 그 정도 서비스(?)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는지…. 아무튼 50+시민기자의 ‘쓸모’ 내지는 50+시민기자에게 거는 ‘기대’가 이 정도인지 미처 몰랐는데, 속으로 쪼끔 ‘우쭈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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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잉디자이너봉사클럽’ 수강생들과 ‘핸드메이드공예클럽’ 회원들이 정성으로 만들어 ‘옷캔’에 기부한 영유아 물품입니다. © 50+시민기자단 이경걸 기자 

 

사진은 지하 1층에 있는 공방에서 찍었습니다. 뭔가가 잔뜩 올려져 있는 크고 넓은 테이블을 앞에 두고 몇몇 선생님들이 ‘김치~’나 ‘치~즈’ 하는 표정으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여러 장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그분들에게 이래라저래라한 것은 순전히 ‘똥폼’을 잡느라고 그런 건데, 아마도 눈치채지 못했을 겁니다.

 

그분들은 매우 즐거워 보였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억양과 목소리가 포근포근했습니다. 그리고 왠지 약간은 흥분한 듯, 조금은 들떠 있는 듯싶었습니다.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뭔가는 나중에 설명을 듣고 알았습니다. 양말을 소재로 만든 귀엽고 개성 있는 애착 인형, 동물 모양의 턱받이, 멋쟁이 스카프 빕과 아기 보닛 모자, 기저귀 위에 입히는 호박 바지, 생애 최초의 아기 옷인 배냇저고리와 손싸개, 발싸개였습니다.

 

“뭔가 흥미진진한 사연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진을 찍어주었으므로 나는, 50+시민기자로서 할 일을 다 했노라 생각했습니다. 그랬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것저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분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저 많은 아기 옷과 인형들은 누가 만들었고, 어디에 쓰려는 걸까? 인형이 제법 귀엽고 예쁘던데 한 개쯤 공짜로 얻거나, 그게 어렵다면 살 수는 없을까?

 

그렇게 궁금증이 커지는 가운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몇 가지 정보를 얻었습니다. 믿을만한 제보자에 따르면, 그분들은 ‘소잉디자이너봉사클럽’이라는 강좌를 계기로 북부캠퍼스에서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강좌가 끝난 후 뜻을 모아 조직(커뮤니티)을 만들었고, 이름을 ‘핸드메이드공예클럽’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러니까 ‘소잉디자이너봉사클럽’의 수강생에서 ‘핸드’로 ‘메이드’한 여러 가지 ‘공예(품)’로 봉사하는 ‘클럽’으로 신분을 세탁(?)한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50+시민기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호기심’이라 여겼고,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활활 타올랐습니다. 게다가 사진을 찍고 찍히느라 ‘김치~’니 ‘치~즈’니 설레발을 치면서 맺은 인연까지 보태졌으니 그에 합당한 ‘액션’이 따라야 했습니다. 그래서 ‘핸드메이드공예클럽’ 홍현숙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6월 29일, 수요일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50+시민기자단 북부캠퍼스 담당 이경걸입니다. 귀 핸드메이드공예클럽의 활동을 취재하여 서울시50플러스 포털 및 북부캠퍼스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싶어 연락드립니다. 틈나실 때 연락해주시면 의논드리겠습니다. 지난번, 공방에서 사진을 촬영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그 후로 홍 대표와 몇 차례 더 문자를 주고받았고, 드디어 7월 14일에 만나서 ‘흥미진진한 사연’을 듣기로 했습니다. 그날이 마침 공방에서 정기모임을 갖는 날이라 잘 되었다 싶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쳐들어가라는 말도 있듯이, ‘핸드메이드공예클럽’의 실체를 낱낱이 살피려 할 때 작업과 교육 현장을 직접 확인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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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메이드공예클럽’ 회원들이 공방에서 강화 소창으로 행주와 손수건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커뮤니티는 매월 2회 정기적으로 모여 교육과 물품 제작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 50+시민기자단 이경걸 기자

 

재봉틀이 또르륵~ 또르륵~ 돌아가는 공방 풍경은 고즈넉했습니다. 재봉틀로 박음질하면서 한 땀 한 땀 집중하는 모습이 매우 진지해서 누구에게도 섣불리 말을 걸 수 없었습니다. 홍 대표는 수시로 자리를 옮겨가며 재봉질하는 사람들과 소곤거렸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짐작하기를 ‘이렇게 하면 더 예쁘지 않을까?’, ‘저렇게 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하고 의논하는 것 같았습니다.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며 재봉틀을 돌리는 모습이 심히 오순도순하였으므로 한참 동안 기분 좋게 바라보다가 공방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홍 대표와 마주 앉았습니다. 

 

지난번에 사진을 찍어드릴 때 처음 뵙고 오늘이 두 번째네요. 

맞아요. ‘옷캔’에 기부할 영유아 물품을 포장하고 나서 기념 촬영할 때 도와주셨지요. 감사합니다. 그날 참 좋았어요. 그동안 열심히 만든 영유아 물품을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하려니까 살짝 마음이 벅차기도 했고요. ‘소잉디자이너봉사클럽’ 수강생분들과 ‘핸드메이드공예클럽’ 회원분 모두가 지극정성으로 애써주신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어떻게 커뮤니티를 만들게 되었나요?

‘소잉디자이너봉사클럽’ 강좌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수강생들 사이에 이런 의논이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미싱을 다룰 줄 알고, 핸드메이드를 좋아하고, 공예에 취미가 있고, 공예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수강생들이 서로서로 재능을 나누고 배우면서 봉사하는 일을 지속해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그런 의논을 하는 가운데 수강생들과 소통하며 ‘소잉 봉사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커뮤니티지원단 선생님이 조언해주셨어요. 강좌가 끝나면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게 어떻겠냐고요. 그래서 수강생들에게 커뮤니티 참여 의견을 구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호응해주셨어요. 저를 대표로 뽑아주셨고요. 그렇게 해서 ‘핸드메이드공예클럽’이 만들어졌답니다. 

 

*소잉 봉사 작업: ‘소잉디자이너봉사클럽’은 영유아 물품을 만들고 포장하여 ‘옷캔’에 기부하는 것을 전제로 기획된 강좌였다. 그래서 수강생 선발 조건이 바느질과 재봉틀 사용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 소잉디자이너로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 재봉틀과 디자인 실력을 향상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 가운데 홍 대표는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에 방점을 찍었다. 홍 대표는 패브릭(Fabric)과 실(Yarn)을 재료로 사용하는 공예 분야에서 이미 여러 차례 강좌를 열고(노원·성북·강동50플러스센터 등), 공방을 운영할 정도로 ‘전문가’이지만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이 강좌를 수강했다고 한다. 

 

어떤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하시나요?

내가 가진 재능으로 내가 만든 물품들이 꼭 필요한 곳에 좋은 의미로 전달되려면 좀 더 예쁘게 완성도를 높여서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자주 하지요. 그리고 봉사활동은 가치 있는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은 봉사활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삶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요.

 

커뮤니티 활동에서 가장 좋을 때와 힘들 때를 소개한다면?

가장 기쁠 때는 회원들의 실력이 갈수록 향상되어 자신이 만든 것을 보고 스스로 감탄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힘들 때는 회원들의 여건에 따라 모임이나 교육 일정을 조율할 때.

 

앞으로 커뮤니티를 어떻게 꾸려나갈 건지요?

지난 5월에 커뮤니티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았어요. 그 지원금을 활용해 친환경과 업사이클링 관련 물품을 만들어서 필요한 곳에 기부하거나, 아니면 그 물품을 판매해서 얻은 수익금을 기부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어요. 

또한, 월 2회 정기 모임(교육 & 물품 제작)을 알차게 운영하여 10월까지 에코 스트링 파우치, 소창 행주, 소창 수건, 에코백, 모자, 플랜트 행잉, 텀블러 가방, 업사이클링 공예품 등을 만들어 좋은 곳에 사용할 계획입니다.

아~, 또 있어요. 우리 커뮤니티가 서울시 50+자원봉사단 ‘행복한 학교 밖 선생님(정서지원)’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아동돌봄센터 3곳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공예수업을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 준비를 하느라 바빴어요. 하지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니까 너어~무 행복해요.

 

에필로그

위대한 엄마들은 뭔가를 했습니다. 

 

기원전 372년에서 기원전 289년 사이. 어떤 엄마는 세 번 이사했습니다. 묘지에서 저잣거리로 다시 서당 근처로. 집의 평수를 늘리려고 그런 게 아닙니다.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번거로운 이사를 마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아이는 훗날 공자에 버금가는 위대한 학자가 됩니다. 맹자입니다. 

 

기원후 1543년에서 기원후 1605년 사이. 어떤 엄마는 깜깜한 한밤중인데 호롱불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옆에 앉은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썰 테니 떡을, 너는 쓰거라 글을!” 떡국을 끓이려고 그런 게 아닙니다. 아이에게 고수(高手)의 솜씨를 보여주기 위해 손이 베일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 것입니다. 이 아이는 훗날 왕희지에 못지않은 명필이 됩니다. 한석봉입니다. 

 

그 후로 세월이 많이 흘러 2022년이 되었습니다.

핸드메이드공예클럽 엄마들은 서울시50플러스 북부캠퍼스 지하 1층 공방에서 재봉틀을 돌렸습니다. 열심히 애착 인형, 배냇저고리, 손수건 등등을 만들었습니다. 이 물건들은 국내외 여러 아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훗날 어디서, 무엇이 되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할까요?

 

 

50+시민기자단 이경걸 기자 (khwappl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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