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수명연장에 최대로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은?

 

 

한 사람의 생명을 1년 연장하는데 여러분은 얼마나 돈을 쓰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오늘 서울대 암연구소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2010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조사를 토대로 만들어진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님의 자료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평균 최대 2천6백만 원까지 쓸 수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런데 직업별로 답변이 모두 달랐습니다. 보건의료 연구자는 가장 인색했습니다. 1천9백만 원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반면 의사는 7천4백만 원까지 쓸 수 있다고 답변했군요. 가장 후한 답변은 제약업계로 나왔습니다. 무려 1억2천만 원까지 써야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이 결과는 무엇을 시사할까요? 제약회사처럼 의료 공급자일수록 사람들이 자신의 질병 치료를 위해 좀 더 많은 돈을 쓰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세미나는 고가 항암제의 재정 독성 해결 방안이 주제입니다. 알다시피 표적항암제나 면역관문억제제 등 첨단 항암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언론마다 혁신적 항암제니 기적의 약이니 칭송 일색입니다. 그러나 매우 비싼 반면 실제 효과는 기대보다 매우 낮습니다.

 

저는 오늘 첫 강연자인 김흥태 선생님의 강연만 듣고 이 기사를 씁니다. 김선생님은 국립암센터 폐암센터 종양내과 전문의이자 현재 암정복추진기획단 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고가의 항암신약, 약가는 과연 적정한가?”입니다.

 

그는 강의 시작 전 호주로 죄수를 호송하던 18세기 영국의 일화부터 소개했습니다. 죄수 5천여명을 배로 호송했는데 40%가 배 안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식량과 약품, 환경개선 등을 서둘렀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승선료를 선불제에서 후불제로 바꾸니까 생존율이 98%로 올랐다고 하는군요. 즉 돈이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였다는 것입니다.

 

항암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선생님이 인용한 2016년 영국의학협회지 자료를 볼까요. 2002년부터 2014년까지 새로 허가된 48개 각종 첨단 항암제가 기존 항암제 치료에 비해 실제 암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킨 기간은 평균 2.1개월이라고 하는군요. 2.1개월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생각보다 매우 낮습니다. 지난 40년동안 각종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이 49%에서 68%로 늘었다고 하는데 80%는 금연 등 예방과 내시경 등 조기발견에 힘입은 것이며 항암제 등 약물치료는 20%만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47건의 미식품의약국의 승인을 거친 항암제도 19%인 9건만 생존기간 2.5개월 이상 의미 있는 효능이 입증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첨단 항암제는 죽을 사람을 살리는 기적과 같은 효과는 거의 기대할 수 없고 생존기간이나 암크기가 커지거나 증세가 악화되지 않는 기간만 수개월 늘리는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천문학적입니다. 예컨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뇌종양을 치료했다는 키트루다는 한번 주사에 5백만 원이나 합니다. 보통 6차례 이상 맞아야 하므로 체중에 따라 적게는 3천만 원에서 많게는 6천만 원의 비용이 듭니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므로 전액 자비 부담해야 합니다. 그래서 비온뒤 기사에서도 밝혔듯 체중 대비 쓰고 남은 주사액을 다른 암환자에게 기부해달라는 부탁이나 종용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김흥태 선생님은 이처럼 비싼 항암제 가격에 대해 다국적 제약회사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R&D 등 천문학적 개발비용 때문이라 항변하지만 실제 개발비용은 광고나 마케팅 비용보다 낮다는 자료도 제시했습니다. 나라마다 글로벌하게 가격이 동일하므로 한국도 비싼 약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도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항암제 10개의 1개월 치료비용을 조사한 결과 비슷한 월 소득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는 미국보다 절반가량 낮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것이 자비 부담이든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든 고가 항암제에 대해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비싼 약값을 지불하는 게 옳은지 냉정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정말 효능이 객관적으로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효능에 대해 개인과 국가가 얼마나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 사회적 합의가 시급합니다. 한 사람을 살리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은 간접적으로 다른 환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을 빼앗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고가 항암제에 대해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홍혜걸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