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병은 내가 안다?

 

 

 

문둥병으로 불리는 한센병과 결핵 중 어느쪽이 더 무서울까?

겉보기엔 한센병이 훨씬 끔찍하다. 피부괴사가 일어나 얼굴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흉측하게 변한다. 오죽하면 천형(天刑)이라고까지 불렸을까. 그러나 한센병으로 죽는 일은 없다. 전염력도 약하다. 결핵은 중세 여성들이 일부러 결핵 감염을 자청했을 정도로 우윳빛 뽀얀 피부를 만들어낸다. 나도 결핵 병동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침대에서 화사한 얼굴로 숨을 쌕쌕이며 앉아 있던 여성 환자가 불과 며칠 만에 숨지는 경우도 목격했다. 겉보기와 달리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병이다.

 

아토피로 빨갛게 성이 잔뜩 나 부어오른 피부와 발바닥에 갑자기 생긴 1㎝짜리 점, 어느 쪽이 더 무서울까?

당장 괴롭고 끔찍하기로는 아토피가 한 수 위일 것이다. 그러나 아토피는 기본적으로 양성(良性) 질환이다. 아무리 심해도 절대 숨지거나 후유증을 남기지 않으며 다른사람에게 전염도 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느리지만 조금씩 좋아진다. 하지만 발바닥에 갑자기 생긴 점은 피부암일 가능성이 높다. 점이 수 밀리미터만 피부 아래로 파고들면 다른 장기로 전이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공황장애와 조울병도 마찬가지다. 공황장애는 다른 사람이 볼 때 훨씬 증상이 심각하다.

발작이 오면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불안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한다. 그러나 공황장애 때문에 실제로 죽는 일은 없다. 환자 스스로 그렇게 느낄 뿐이다. 치료도 약물로 잘되는 편이다. 조울병은 갑자기 황제라도 된 듯 천하가 자기 것인 양 기분이 좋아진다. 무드가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무드가 떨어지면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자살로 연결되기도 한다. 보기보다 무서운 병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질병도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이다. 모든 질병 가운데서 가장 극렬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 요로결석이다. 비록 간헐적으로 나타나지만 마치불에 달군 칼끝으로 옆구리와 아랫배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호소한다. 그러나 요로결석은 대부분 치료가 잘되며 후유증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통증 없이 소변에 살짝 섞여 나온 피 몇 방울은 치명적인 방광암일 수 있다.

 

질병이 아닌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은 ‘땅에 떨어진 비스킷 주워 먹기’와 ‘버스 정류장에서 10분 서 있기’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대부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전자가 낫다. 땅에 떨어진 비스킷을 먹어 탈이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설령 세균이 묻었다 해도 위장속 위산에 의해 모조리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볼 때 숨 쉴 때 들이마시는 공기보다 입으로 먹은 음식이 우리 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음식은 입에서 항문으로 연결된 기다란 튜브 모양의 꾸불꾸불한 소화기관을 지나가면서 일부 영양소만 흡수되고 대부분 빠져나간다. 하지만 호흡으로 들이마신 매연은 폐 속에서 혈액과 섞여 바로 우리 몸의 일부가 된다. 숨 쉴 때 들이마시는 공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더 여쭙겠다.

 

‘누군가 한입 베어 먹은 떡’과 ‘소변이 묻은 빵’ 그리고 ‘피가 묻은 주사기’ 중 어떤 것이 가장 위험할까?

대부분 소변이 가장 더럽고, 그 다음이 침이며 혈액은 가장 깨끗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의학적 사실은 사뭇 다르다. 피묻은 주사기가 가장 위험하다. 에이즈나 간염 환자의 피가 묻은 경우라면 자칫 찔릴 경우 백발백중 감염되기 때문이다.

에이즈나 간염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며 피를 통해 전염된다. 어떤 경우이든 다른 사람의 혈액이 내 혈액과 섞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피에 비하면 침은 훨씬 덜 위협적이다. 침으론 간염이나 에이즈가 전염되지 않는다. 잇몸 질환으로 구강 출혈이 있지 않는 한 감염자와 키스를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침은 헬리코박터 세균이나 충치 유발 세균 등을 옮길 수 있다. 음식물을 같이 떠먹는 습관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가장 안전한 것은 소변이다. 방광에서 요도를 통해 나오는 소변은 대부분 무균 상태다. 기분은 나쁘지만 침이나 혈액보다 소변이 훨씬 안전하다.

 

이처럼 의학에서는 주관적 느낌과 객관적 사실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질병만 보더라도 주관적 고통과 객관적 위중도는 대개 일치하지 않는다. 교훈은 간단하다. ‘내 몸은 내가 안다’는 태도는 자칫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에 없던 증세가 갑자기 나타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의사를 꼭 만나보기 바란다.

 

 

홍혜걸(洪慧杰의학전문기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박사,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비온뒤 칼럼은, 홍혜걸 의학전문기자가 설립한 의학전문매체이자 미디어 의학채널 비온뒤(aftertherain.kr)와 협약 하에 다양한 분야의 엄선된 의료인들의 건강 칼럼을 게재한다.  bravo_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