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린다. 하나레이 베이

-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영화 하나레이 베이,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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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나레이 베이포스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바로 이어서 읽을 또 다른 책을 미리 사두곤 했었다. 그렇게 그의 책이 쌓였다. 아름답지만 아련했고, 때로 허무하고 절망스럽다는 글 속의 이야기들에 동감하며 한때 그의 소설을 읽었다.

 

음식 이야기가 많은 그의 글을 읽고 나면 급기야는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꺼냈고 소시지를 구워 먹으며 소설 속의 손녀딸과 같이 먹는 기분을 느껴보는 짓도 했다. 그렇게 하루키와 식탁에 마주 앉아보는 모양새가 즐거웠다. 지금도 하루키의 오이 샌드위치는 간단해서 가끔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뿐인가.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요리책 하루키가 내 부엌으로 걸어 들어왔다라는 책을 상하로 두 권을 사들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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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나레이 베이장면

 

영화 [하나레이 베이(ハナレイ・ベイ, Hanalei Bay, 2018)]. 이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40페이지 단편소설이다영화를 보기 전부터 아는 사람의 집에 가는 것처럼 지금 거긴 담장 아래 노란 꽃이 피어있을까?, 슬리퍼를 신고 웃으며 나를 맞이하려나? 그렇게 쓸데없는 친숙한 상상력이 발동된다.

 

하와이가 배경인 것도 괜히 자연스럽다이 작품의 주인공 사치(요시다 요)에게 하와이 주재 영사관의 전화벨이 울린다. 그리고 슬픔의 찬 그녀의 모습이 영화의 끝까지 이어진다. 아들 다카시(사노 레오)가 하나레이 베이의 먼바다에서 서핑을 하다 상어의 습격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사망했다는 비보로 영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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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나레이 베이포스터2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아들의 부재에 엄마의 애도는 십 년 넘게 이어진다.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이 바로 엄마의 십 년이 넘는 상실의 세월이다. 아들의 기일이면 찾아온 하나레이 베이,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하나레이 베이를 받아들이려는 모습인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 사치가 행복한 인생을 살아오지 못했듯이 아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로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 그 세월을 좁히기 어려웠을까.

 

해변의 오래된 거목을 밀어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사치의 모습은 무엇일까. 꿈쩍하지도 않는 그 큰 나무를 온 힘을 다해 밀어내지만 어림도 없다. 이곳의 어느 것도 나를 위해 움직여 주는 것이 없으니 상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암시가 아닐지.

 

그리고 그녀는 피아노를 연주한다. 피아노 바를 운영했던 사치의 피아노 연주 사랑의 기쁨이 두 모자간(母子間)에 누리지 못한 사랑의 기쁨을 대신하려는 것인가 싶다가끔씩 그녀가 해변에 앉아 허밍으로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다. 슬프게 들리지 않고 엄마와 아들의 사랑과 그리움이 테마가 되어 둘을 하나 되게 감싸 안는 느낌을 받는다.

 

카우아이섬의 오래된 숲에 앉아 아들이 숨진 상실의 바다를 끝없이 바라보며 부르는 사랑의 기쁨, 내면 치유의 시간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쨌든 이럴 때 귀에 익은 음악이 흐르는 것도 영화를 더 친숙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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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나레이 베이포스터3

 

또 하나, 어느 날 바닷가에서 아들 또래의 일본 젊은이들을 만난 것이다서핑을 하는 그 아이들과 친해졌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젊은이들이 그녀에게 외다리 일본인 서퍼를 보았느냐는 말을 묻는다사치의 충격적인 흔들림과 휘몰아치는 격정의 심리를 보여주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날부터 미친 듯이 섬을 헤맨다정신없이 뜨거운 태양 속을 헤맨다. 쓰러질 듯 모래바람을 맞고, 절망감에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나는 이해한다. 어미가 아들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아 나서는데, 땡볕이든 그 어떤 장애물이든 문제가 될 리 없다. 작품의 감정이 최고조로 올라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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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나레이 베이포스터4

 

결국 사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다그 진실한 감정으로 그리운 아들을 받아들이는 걸까. 먼바다를 향해 서 있던 사치가 뒤돌아본다. 그리고 무언가와 눈을 맞추고 웃는 엔딩 장면이 안도감을 준다.

 

상실과 치유의 슬프고 아름다운 판타지다조용히 앉아서 영상미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 하와이의 작은 섬과 그림 같은 바다, 그 높은 파도 위에서 즐기는 서핑. 보는 것만으로도 얻어지는 평화로움...

 

50+시민기자단 이현숙 기자 (newtree1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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