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몸에 좋은 것만 먹겠다고 다짐했지만, 애초에 제외인 것도 있다. 바로 라면. 라면을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골수팬일 만큼 사랑받는 라면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글. 김준영
한국인은 라면을 사랑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라면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라면은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스며들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라면 사랑은 어느 정도 일까?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연간 인스턴트 라면의 국가별 소비량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것은 중국이다. 다음으로 인도네시아, 인도, 일본, 베트남 순. 한국은 연간 38억 개의 라면이 소비되어 세계 8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국민 1인당 라면 소비량을 봤을 때, 한국은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연간 74.6개(2위-베트남 53.9개, 3위-네팔 53개)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의 유별난 면 사랑을 알 수 있는 조사다.
라면, 한국 땅에 정착하다
라면을 가장 먼저 인스턴트로 만들어 판매 한 나라는 일본이다. 닛신식품의 창업자인 안자이 모모호쿠로는 1958년 치킨 라멘을 상품화했다. 초창기의 라면은 별첨된 스프가 없이 면 자체에 맛이 배어 있었다. 물론 오랜 기간 보존하지 못하고 상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면과 스프의 분리다. 스프를 별도의 봉지에 넣는 개발이 이뤄지면서 라면의 보관기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의 식량수급문제가 심각하게 떠올랐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국민들이 굶주린 일상을 보내야 했고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죽을 사먹기 위해 줄을 섰다. 꿀꿀이죽의 위생상태도 좋지 않았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찌꺼기를 모아서 끓인 죽이었기 때문.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것조차 귀할 정도로 식량난은 심각한 문제였다.
그 시절 삼양식품공업주식회사(현 삼양식품) 창업주인 전중윤 명예회장이 식량난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의 라멘을 수입해 판매했는데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국산 라면을 만들고 싶었던 전 회장은 닛신식품에서 기술을 전수받으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다행이 닛신식품의 라이벌 기업이었던 묘조식품이 기술을 전수해주면서 1963년 한국 최초로 치킨라면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정부의 혼분식(混粉食) 장려 정책(전쟁 이후 늘어난 인구로 인해 쌀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잡곡과 밀가루 섭취를 장려했다)으로 라면 개발이 활발해졌다.
얼큰함으로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다
이후 삼양이 출시한 라면은 3년 만에 240만 봉지, 월평균 1천 500만 봉지를 팔만큼 인기였다. 삼양이 성공하자 후발주자인 롯데공업(현 농심)이 롯데라면을 출시하고, 동방유량 해표라면, 신한제분 대표라면, 풍국제분 해랑라면 등이 잇달아 신제품을 내놓았다.
라면의 황금기라 불리는1980년대에는 사발면과 너구리, 짜파게티, 팔도비빔면, 안성탕면, 신라면 등의 등장으로 한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라면의 춘추전국시대를 이뤘다.
2011년에는 빨간 국물이 가고 하얀 국물이 새롭게 등장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꼬꼬면과 나가사키 짬뽕은 라면 시장을 2조원대로 끌어올렸고 다양한 제품 출시도 모자라, 소비자가 직접 라면으로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가며 시장 규모를 키웠다.
라면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음식이다. K팝, K뷰티, K콘텐츠에 이어 K푸드까지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글로벌 여행 전문 사이트 ‘더 트래블’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농심이 신라면 블랙을 꼽았다.
SNS에서도 우리의 라면은 핫하다. 글로벌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매운맛 체험(Fire food challenge)’을 즐긴다. 이때 사용되는 라면은 삼양 불닭볶음면이다. 이런 추세라면 라면의 진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어떤 라면이 시중에 나와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을지 기대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