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지으면 십년 늙는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집을 짓는 것은 그만큼 신경 쓰이는 일이 많다. 설계는 대충하고 집 지을 때 변경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더 늙는다. 설계 단계에서 아주 꼼꼼하게 따지고 이해될 때까지 설명을 요구하는 건축주 중에는 의외로 공사를 맞기고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설계를 진행 할 때는 대부분의 건축주들이 공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공간의 크기와 동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듯 자세히 듣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공사 중에 현장에서 조금씩 바꾸면 될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설계 도면으로 정확하게 감을 잡지 못한 공간의 크기나 동선은 공사를 진행하면서 명확히 보이게 된다. 공간이 건축적으로 잘 해결이 되어 있다고 해도 사람마다 공간 선호도가 다르므로 정답이 없다. 그러나 공사 중에 공간을 변경하는 것은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마감재를 변경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지만 문의 위치나 벽체를 이동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요즘은 방음이나 공사기간, 구조적 장점 등의 이유로 벽체를 콘크리트로 설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공사 후 벽체 변경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우려 때문에 자기가 마음대로 지을 수도 있고 공사비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건축주가 직접 공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직영공사를 하는 경우 전문시공자에게 의뢰한 경우보다 공사비를 절약하기는 힘들다. 직영공사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공정마다 소속이 다르므로 하자가 생겼을 때 서로 미루게 된다. 이런 경우 건축주는 양쪽에 다 아쉬운 소리를 해야한다. 또한 공사 진행이 매끄럽지 못해서 공사기간이 늘어 나는 것도 공사비가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공사에는 ‘크리티컬 패스’라는 것이 있다. 어떤 공정이 완성되지 않으면 다음 공정으로 절대 넘어갈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철근 배근이 다 완료되지 않으면 콘크리트를 타설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콘크리트를 타설해 놓고 그 속에다 철근을 집어넣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벽체를 완성해야 창틀을 설치할 수 있는 것도 그렇다. 이러한 크리티컬 패스는 공사 중에 여러 공정에서 발생한다. 이렇듯 공사는 순서에 따라 적절한 공사가 진행되어야 원활하게 다음 공사로 넘어갈 수 있다. 직영공사인 경우는 건축주가 여러 공정 공사의 지휘자 역할을 한다. 건축주가 공정을 잘 알고 있다고 해도 공정마다 제 시간 안에 해당 공사를 진행해 주어야 다른 공사 일정에 지장이 없다. 결론적으로 직영공사는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그에따라 공사비도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건축주가 직영으로 지은 집을 건축사의 입장에서 보면 공사비의 문제보다 다른 면에서 안타까운 점이 많다. 먼저 공간 활용도 문제다. 주택은 여러 개의 작은 공간과 동선이 유기적으로 잘 짜여 져야 한다. 각 공간의 크기와 적절한 동선계획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가구의 배치나 문 하나의 위치가 공간 활용도를 좌우하기도 한다. 주택 공간의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것은 상당한 디자인 경험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또 하나는 형태의 문제다.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는 보는 눈과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공통의 원칙이 그 안에 녹아있다. 주택 형태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직영공사는 공사비 상승도 문제지만 공간이나 형태에서 더 아쉬운 경우가 많다.

 

직영 공사를 마친 후에 뒤늦게 이런 문제를 깨달은 건축주들은 시공회사에 일괄 공사를 맞기지 않은 것과 직영하면서 구조를 마음대로 변경한 것을 후회한다. 그러나 설명을 해도 수긍하기를 거부하는 건축주도 있다. 그런 수준이기에 무모하게 공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공사를 마치면 설계변경과 사용검사를 받기위해 현장에 맞게 도면을 수정하는 것은 건축사의 몫이다. 공간이나 형태를 다 망가뜨려 놓은 현장을 실측하고 도면화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집을 지으면 십년 늙는다는 말이 있다. 직영 공사하면서 마음 고생한 건축주에게도 해당 되고 악덕 시공자 잘못 만난 건축주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건 현장 뒤처리를 해야 하는 건축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니 건축사는 그야말로 억울하게 늙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