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이 될 것인가, 리어왕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라이프점프와 상상우리, 임팩트피플스가 공동기획한 8차례의 설문조사 중 <은퇴 후 주거형태 편>은 몹시 흥미롭다.

 

응답자 중 절반 가량은 ‘은퇴 후 주거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 목적이다. ‘자신만의 은퇴 후 주거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이들의 절반 가량(48.2%)은 ‘자녀를 위한 유산’을 이유로 꼽았다.

 

이 땅의 대다수 시니어라면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래야 하는 거지’, 라고 평가할 수 있는 이 조사결과를 <은퇴 후 재무계획 편>의 결과와 포개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해당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장년들은 은퇴 후 삶을 매우 불안해했다. ‘은퇴 후 삶이 기대된다’는 답(23%)도 물론 있었지만 불안하다는 응답은 49%로 두 배 이상 높았다. 이들은 은퇴 후 노후 필요자금으로 11억5,000만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자금확보 여부’에 대해선 5점 만점에 평균 2.64점을 기록해 실제 주머니 사정은 곤궁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설문조사 결과를 포갠 값은 이렇다.

 

 

 

⑴ 은퇴 후 안락한 삶을 위해선 11억원이 넘는 돈이 있어야 한다.

 

⑵ 자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에 잠겨 있다.

 

⑶ 이 부동산은 죽기 전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줘야 한다.

 

⑷ 고로, ‘은퇴 이후 삶을 위한 자산은 갖고 있지만 자식들을 생각해 쓸 수는 없어서 삶이 너무 불안하다’쯤 되시겠다.

 

태종이 될 것인가, 리어왕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김경록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대표사진=우지희 라이프점프 매니저  

 

앞뒤가 따로 노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국내 은퇴연구 권위자 중 한 명인 김경록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대표는 무엇보다 자녀로부터 집을 사수할 것을 강조한다. 30년 이상 금융시장 전반을 거쳐온 그의 말을 좀 더 따라가 보자.

 

태종이 될 것인가, 리어왕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나라 5060 세대들은 은퇴 이후 삶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는 경향이 짙은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후 소득원 부재, 허약한 공적연금 시스템, 일자리 공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라이프점프 창간1주년 특집호의 1호 인터뷰이로 선정되셨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아! 그런가? 영광이다. 먼저 창간 1주년 축하드린다.

 

중장년들의 안정적 노후를 위해 투자와 연금전략 등을 연구하는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대표 김경록이다. 장기신용은행에서 첫 금융맨으로서 경력을 시작한 이후 경제연구소, 자산운용사, 캐피탈사 등을 거쳤고 이때 경험들을 종합해 고객들(잠재적 고객 포함)께 안락한 은퇴 이후 삶을 위한 전략과 노하우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경력이 화려하다. 무엇보다 이 질문을 먼저 드리고 싶다. 지금 주식시장이 활황이다. 이 시대 5060 세대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팬데믹을 모두 겪은 세대들인데, 이들에게 현재 황소장세는 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5060 중장년들은 투자세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유일한 세대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롯해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까지. 그런 점에서 지금은 그들에게 기회다. 더욱이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노후 생존기간이 연장됐다. 장기투자 환경이 무르익은 것이다. 투자시장에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금융투자상품이 출시돼 있다. 이를 충분히 활용하면 세 차례의 위기 트라우마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5060의 주식시장 참여가 실제로 활발한가? 이들의 자산투자는 어떤 패턴을 보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시대 중장년들은 투자와 관련해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부동산이다. 투자강의를 진행하면서 중장년들에게 질문을 하면 대다수가 상가, 아파트, 꼬마빌딩 등 부동산을 이야기하신다. 그들이 부동산 투자에 집중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그들은 살면서 우상향 하는 부동산 시장만 줄곧 지켜봤다. 이 기억의 관성이 부동산 시장을 긍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쏠림은 포트폴리오 분산 측면에서 볼 때 올바른 방향은 아닌데.

 

“그렇다. 그들의 투자전략은 좀 더 다양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이 투자대상으로서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은 투자할 수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금융투자상품이 많아졌다. 선택지를 넓힐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인간의 기대수명이 길어졌다. 수명이 길어지면 장기투자를 할 수 있다.

 

투자기간이 달라졌다면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50대 시니어들을 만날 때면 여유자금 2,000~3,000만원 가량은 꼭 주식시장에 참여해볼 것을 조언한다. 20년 간 장기투자자로 지켜보라고. 80세가 되면 그 돈으로 안락한 삶이 가능해진다고 말이다.“

 

 

 

-결국 100세 시대에 다양한 투자는 필수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실제 투자에 나설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장년들의 금융지식이다.

 

“좋은 지적이다. 학습은 무조건 필요하다. 소액이라도 실제 투자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유튜브만 해도 온갖 투자교육이 넘쳐난다. 다행스러운 점은 중장년들도 유튜브를 낯설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깐 홍보해도 되나? (하하)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운영하는 유튜브만 해도 모든 금융교육 콘텐츠가 담겨 있다. 비용도 안 받는다. (하하) 다시 말씀 드리지만 투자교육 수단은 넘쳐난다. 환경은 무르익었고 실천만 하면 된다. 중장년분들도 스스로 금융교육을 학습하시길 바란다.

 

단, 한 가지 당부 말씀을 드리면 새롭게 투자를 시작한다면 절대 서두르지 마시라는 것이다. 투자시장은 언제든 오를 수도, 반대로 고꾸라질 수도 있다. 그 사이클 과정에서 기회는 반드시 온다.“

 

 

태종이 될 것인가, 리어왕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5060 세대가 생각하는 은퇴 후 필요자금 수준은 11원이 넘는다. 

절반이 넘는 중장년들은 목표자금이 확보되지 않았을 뿐더러 자금준비 계획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논의를 좀 바꿔보자. 우리나라 중장년들의 은퇴대비 정도는 어떠한가.

 

“측정기관이나 기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낮은 수준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섹터마다 조금 다르다. 우리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건강대비 정도는 높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학습능력이 워낙 뛰어나서 건강 관련 기사나 콘텐츠를 보면서 준비를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공헌 부문은 선진국 대비 뚝 떨어진다. 은퇴 후 늘어난 자유시간을 어떻게 다룰지 잘 모르는 것이다. 다만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이 부문에서도 좀 더 낫다. 아무래도 고속성장기에서 자산보유 수준이 높아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재무부문은 여러 기준 중에서도 가장 뒤처진다. 기대수명이 부쩍 늘어난 현실을 감안할 때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미흡한 은퇴준비,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의 높은 쏠림현상, 이런 특성을 감안해서 주택연금 활용을 강조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해 없기를 바라는데 부동산으로 자산이 편중된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부동산은 유동화가 가능한 자산이니까.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빨리 일터를 떠난다. 주된 직장에서 나오면, 그때부터 임금수준이 급격히 떨어진다. 회사 다닐 때 받던 연봉에서 절반으로 줄었다가, 몇 년 지나면 또 다시 그 절반으로 떨어진다. 멀쩡하게 직장 다니다가 퇴장하는 시점이 50대 중반인데 은퇴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바로 은퇴 빈곤층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연금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주택연금을 통한 소득원 확보인데, 주택연금은 어떤 점이 장점이길래.

 

“일터를 떠난 우리나라 중장년들에게 남은 것은 집 한 채 뿐이다. 다행히 주택연금 제도가 해마다 개선되면서 은퇴자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바뀌는 흐름이다. 예를 들어보자.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국민연금을 받는다. 국민연금은 절대금액이 낮기 때문에 이것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그래서 퇴직연금 같은 사적연금이 보완역할을 해줘야 한다. 국민연금이 확보된 상황에서 주택연금이 더해진다고 상상해보라. 주택가격이 3억원 정도면 연금으로 90만원 정도를 수령하는데 이 돈은 죽기 전까지 나온다."

 


태종이 될 것인가, 리어왕이 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5060 세대의 총자산은 부동산에 주로 쏠려 있지만 이를 은퇴 후 삶에 활용하기보다는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증여하고 싶은 경향이 짙었다. 

 

-많은 중장년들이 자세히까지는 아니더라도 주택연금의 장점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주택연금을 외면하는 까닭은 주택이 지닌 상징성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주택=유산’이란 인식이 사실로 확인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중장년들의 마인드셋이 필요할 것 같다.

 

“(하하) 그런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주택금융공사가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자식들에게 주택을 물려주겠다’는 기존의 인식이 많이 희석됐다. 우리나라 중장년들의 적응력이 그만큼 빠르다. 노후생활에서 자식들은 코스트(비용)라는 인식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지인은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 “유산은 죽기 직전에 주겠다. 그래야 자식한테 대접 받는다”고.

 

“자녀 리스크와 관련해 자주 인용하는 사례가 있다. 태종과 리어왕이다.

 

리어왕은 자신의 세 딸 중 두 딸에게 미리 왕국을 반반씩 물려줬다. 미리 유산(?)을 상속한 셈인데 말년에 비참한 노후를 맞는다. 반면 조선의 태종은 세종에게 일찍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지만 군사권과 인사권만큼은 꼭 쥐고 있었다. 국정운영의 핵심인 두 권한을 상왕이 쥐고 있으면서 세종은 말년까지 아버지 태종을 극진히 모셔야 했다. 광야에서 울부짓는 리어왕이 될 것인가, 죽을 때까지 ‘골프’ 치러 다닌 태종이 될 것인가, 중장년들은 이 갈림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자기의 권한을 주체성 있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듣다 보니깐 은퇴 이후 삶에서 자식 리스크만큼 위험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라. 이 말은 ‘자녀를 (자산으로써) 콘트롤 해야 한다’, 혹은 ‘자녀와 전략적 게임을 해야 한다’, 이런 메시지가 아니다. 주신의 주체성을 꼭 지키라는 당부다. 노후의 가치는 자기가 가진 물건으로 결정된다. 부동산일 수도, 현금이나 유가증권일 수도 있다. 반대로 젊은 사람은 향후 잠재성으로 자기가치가 정해진다.

 

여든이 넘은 사람이 죽기 전에 재벌회장이 되거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 사람에게 재산이 없다면 누구도 그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자산의 가치로 평가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유산을 근거로 자녀와 줄다리기 같은 것을 하지 말고 서로가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인생 후반의 최대 적은 자식 리스크’라는 김 대표의 송곳 같은 지적은 이 땅의 많은 중장년들에게 야멸차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더욱 혹독한 사실은 자신이 쌓아올린 자산을 오로지 지키겠다고만 결심하는 한 인생후반은 불안한 삶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모진 풍파를 거쳐온 그들은 안락한 인생후반을 즐길 자격이 있다. 김 대표는 부모세대가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있다고 말했다.

 

 

[상기 이미지 및 원고 출처 : 라이프점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