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반드시 행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본능처럼 습관처럼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도, 삶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평생 매순간 돈을 써야 한다. 안타깝게도 평생 벌기란 불가능하므로 소득 창출이 객관적으로 어려워지는 서드 에이지 (Third Age 제 3의 인생 시기. 사회적 은퇴 이후 간병기 이전까지의 약 15~20여 년 간의 늘어난 수명 기간을 지칭한다)에 이르면 부득불 돈 부족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모아놓은 돈이라도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난감한 상황이다. 이변이 없는 한 나이 들수록 쓰는 돈이 버는 돈을 능가할텐데 그렇다면 우리는 예정된 돈 부족으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단 말인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도 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세상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만큼 쉬운 일은 없으니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도, 오해로 깨어진 우정도, 아파하는 우리 강아지의 고통도, 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자식도, 가을에 져버리고 마는 낙엽도 모두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 중 하나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6가지 요소를 살펴보자. 그것은 정신건강, 만족과 안정감을 주는 일, 안정적이고 애정이 넘치는 사생활, 안전한 공동체, 자유 그리고 도덕적 가치다. 여기에 분명 돈은 없다.

 

이 모든 사실을 진부하리만치 잘 알면서도 다들 왜 그렇게 노후를 걱정하며 돈에 집착하는 것일까. 오히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돈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들에 점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느라, 우정을 키우고 타인을 도우며 정신적인 면을 성숙시키는 활동이나 인생의 진정한 목표를 도외시하고 있다. 코넬대학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부자면서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 가난하면서 항상 행복한 사람이 있다. 만약 당신이 지금 불행한 부자라면 가난한 것보다는 행복할 것이다."

 

그리하여 행복은 어렵다. 한 실험에서 당신이 400만원을 받는 대신 동료가 500만원 받는 경우와, 당신이 200만원을 받는 대신 동료가 100만원을 받는 경우를 선택하라고 했다. 절대적 액수로 보자면 전자가 훨씬 유리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후자를 택했다고 한다. 내가 받는 실질적인 액수의 많고 적음보다는, 동료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과였다. 이것은 단순히 '조삼모사'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사회를 이루고 살도록 진화된 사람들은 타인을 견주어 내 처지를 가늠하게 마련이고, 남들보다 낫다고 느낄 때 비로소 안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잦은 비교는 우리를 불행에 성큼 다가서게 한다.

 

 

너무 돈돈하다 보면, 끝없이 비교우위를 가늠하다보면, 행복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린다. 분명 행복에는 비용이 든다. 정신 건강에도 돈이 필요하고, 만족감과 안정을 주는 일을 영위하려면 생계에 허덕이면 안 된다. 안정적이고 애정이 넘치는 사생활도, 안전한 공동체를 유지하는데도, 자유와 도덕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 다만 양보다는 질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년 소득이 20파운드, 1년 지출이 19파운드 6펜스면 행복한 사람.

1년 소득이 20파운드, 1년 지출이 20파운드 6펜스면 불행한 사람.

-찰스 디킨스, [데이비드 카퍼필드] 중

 

우선 정해진 한도를 넘어선 비용은 불행을 자초한다. 내가 가용 가능한 재화의 범위 내에서 적정하게 비용을 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면 돈으로 불행해지는 문제를 조금은 줄일 수 있다. 게다가 벌 수 없다면, 삶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것도 버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생존 전략이다. 도시농업을 시작한 한 사람은 평생 먹어야 할 식료품 비용이 제일 비싸다면서, 이 부분을 스스로 충당할 수 있다면 그만큼 버는 셈 아니겠냐고 한다.

 

또한 지금 이미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알면 돈이 굳는다.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각종 '안티에이징'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노화가 질병이 아니라 자연현상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개선'보다 '수용'과 '완화'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어 병원비나 약값도 줄어들게 된다. 특별한 이벤트보다 삶의 기본에 충실한 것이 행복의 가능성을 높인다. 어쩌다 한 번 산해진미보다 매일매일 일상의 건강 식단이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해 훨씬 중요하다. 짜릿한 인연보다 지금 곁에 있는 특별할 것도 없는 그 사람들이 나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줄 사람들이다.

 

 

돈이 없으면 나이 들어 괄시받고 불쌍해진다며 꼭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단 조언(?)들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참 애잔한 말이다. 돈이 있으면 나를 만나러 오고, 돈이 없으면 나를 만나러 오지 않는다면 대체 나를 만나러 오는 것인가, 돈을 만나러 오는 것인가. 자식들이 돈만 바라는 게 괘씸해서 손주들까지 발도 못붙이게 해버렸다는 어느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 마음 쓰이는 사람이 없다면 돈은 굳는다. 그러다 대체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노후 설계를 하다 보면 돈과 행복에 대해 생각보다 극단적인 접근이 많다. 돈이 너무 중요한 것도, 또 너무 안 중요한 것도 아니다. 많든 적든 현재 수중에 가진 돈과 재화를 잘 쓸 줄 알아야 행복하다. 잘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경제교육하면서 만난 어느 중년 여성분의 시어머니 이야기가 떠오른다. 폐지를 수거하시며 어렵게 돈을 버시던 시어머니는 지독한 구두쇠셨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그렇게 귀여워하는 손주들에게 세뱃돈은 커녕 사탕 하나도 사주시는 법이 없으셨단다. 아무리 푼푼이 버신다지만 어쩜 저러실까 싶어 서운한 마음도 컸는데, 그 시어머니가 손주들 대학 입학금을 모두 선물로 대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고 한다. 어떻게 쓰고 사는 것이 과연 행복을 위해 잘 쓰는 것일까를 자신에게 자문해 보는 것, 그리고 '돈 없이는 행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을 이기고 '돈 없이도 뭔가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부단히 연구해 보는 것이 행복 근육을 키우는 데 필요하단 얘기다.

 

참고도서 : [행복] 리즈 호가드 지음, 예담출판사

추천도서 : [우리는 행복한가] 이정전,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