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그렇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고민하고 적당한 해법을 찾을 수 없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아이들이 아닐까 싶어요. 꼬물꼬물한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은 난생 처음 일이라 당황스럽고 힘도 부쳤지만 사실 그 정도는 시작에 불과했어요. 무엇보다 한 사람을 온전히 떠맡고 있다는 생각, 엄청난 영향력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중압감이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모자란 어른으로서 길 없는 길, 답 없는 길을 마냥 아이 손을 잡고 헤맸던 것 같아요.

내 아이 가르치다보니 남의 아이도 가르쳤고, 혼자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으니 함께 사는 세상으로도 확장되었지요.

제가 하는 사회공헌의 몸짓이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깨달을 때면 당연한 것 같다가도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절 동안 가장 고생스러웠던 일은 바로 교육현장의 부조리함을 인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로는 물론 알고 있지요. 번듯하게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남의 일이면요.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어 그 모든 결과의 최종 책임을 장래에 떠안을 수밖에 없는 아이로 빙의되는 순간에는 정말 뾰족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제법 잘 하는 놈들은 실수 한 번을 막기 위해 날마다 비인간적으로 볶여야 했고, 못 하는 놈들은 또 그들에게 알맞은 교육 과정이 없어 고문당하는 것처럼 시간을 버텨야 했으니까요.

 

저는 선생 기질이 농후한 열혈 엄마였기에 가르칠 만한 것은 직접 가르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별로 권할 만한 방법은 아닙니다.) 그러려고 제가 가르칠 수 있는 국어 관련 강좌를 들으러 다니기도 했고, 원래 취약했던 영어는 따로 배워가며 아이들 학원 숙제를 혼자 풀어보기도 했습니다. 부모도 모르는 상황에 아이만 내던져놓고 이래라저래라 감시해야 하는 게 어쩐지 내키지 않아서 수준을 따라갈 수 있을 때까지는 아이가 공부하는 내용을 그런 식으로 많이 넘봤습니다.

 

 

 

그런 와중에 답을 베끼지 않고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정도의 양을 천연덕스럽게 매일 내주는 유명 학원이 있었어요. 왜 아이들에게 잠재적 범죄를 유도하느냐며 항의를 했더니, 그래야만 그 중 몇이라도 해가지고 온다고 천연덕스럽게 답변을 하더군요. 숙제를 원칙대로 하려면 다섯 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그걸 알고나 있냐고 물어도 막무가내에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저에게 다른 엄마들은 조언했지요. 엄마 마인드부터 그렇게 약해지면 아이가 하던 공부도 안하고 도망갈 구석만 찾는다, 그러니 마음아파도 꾹 참고 대학 입시까지 버텨라. 우리도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고요. 그런 갈등의 세월을 버텨내는 일이 제겐 너무나도 힘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고3 된 딸아이가 저에게 가만히 물었습니다.

 

“엄마, 다른 어른들은 다 날보고 지금이 제일 좋을 때라고 하더라. 그런데 난 정말 지금이 너무 힘들어.

잠이라도 한 번 실컷 자봤으면 좋겠어. 공부도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런데도 친구들에게 뒤처지는 건 또 두렵고. 그래서 고3까지만 버텨보자,

그러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리겠지 하면서 겨우겨우 참고 있는데...... 만약, 만약에 말이야.

지금이 어른들 말처럼 인생에서 제일 좋을 때라면 난 정말 더 살아서 뭐하나 싶어.

엄마도 그래? 인생 살아보니 지금 내 나이가 정말 제일 좋을 때였어?”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강남 상위권 아이들의 자살 소식이 나날이 이어지던 즈음이었습니다.

 

“아니아니, 무슨 소리야! 엄마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 내 인생이 온전히 나에게 달렸잖아.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도 없고.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학창시절이 엄마는 훨씬 답답하고 지루했었어. 걱정 마. 살면 살수록 행복해진다. 오래오래 살아 봐. 네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 힘들면서도 재미있으니까. ”

 

걱정 때문에 약간 오버하긴 했지만 진실이었습니다. 젊은 게 좋다는 항간의 말과는 달리 제 또래 친구들도 오십이 넘은 지금이 훨씬 좋다는 소리들을 많이 합니다. 여자로서의 경쟁, 사회적인 압박, 모성 본능의 굴레에서 버둥거려야 했던 지난날보다 그런 현실의 고비를 한 바탕 넘기고 난 지금 상태가 너무 편안하다고요.

 

아이들, 그래서 어쩌면 그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아이들과 마주하는 게 두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 여섯 개의 학원을 전전하는 열 살 아이가 계속 눈을 깜빡이는 틱 현상으로 불안 장애를 일으키는데도 기어이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으로 키우겠다며 독서교육을 강행하던 불안한 엄마들을 다시 볼까봐 두려웠고, ‘학생이라는 죄목으로 선생이라는 간수에게 잡혀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생활한다.’는 어떤 사춘기 남자애의 음울한 읊조림을 다시 들을까봐 무서웠습니다. 그런 이유로 몇 번이나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왔을 때에도 고개를 젓곤 했어요. 어른들 공부가 필요하지 아이들 공부는 차고 넘친다는 게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올해 다시 고등학교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을 아주 단단히 먹고 갔어요. 경험상 과잉 교육에 노출된 아이들이 얼마나 지친 마음으로 몸만 겨우 올까 싶었으니까요. 다양한 직업세계의 현장 경험을 미리 맛보는 미래 탐구 과정이었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선택을 강요당했을 수도 있잖아요. 아직도 이렇게 교육현장에 의심을 잔뜩 품고 있긴 합니다. 저는 꽤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도록 ‘기자와 작가 사이, 여행 작가로 사는 법’이라는 과정을 개설했어요. 공부가 힘들어서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 친구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었습니다. 그런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조금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아이들이 요즘 제 고정관념을 다시 바꿔주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지역 단위로 신청해서 듣는 수업이기에 강의 장소까지 오는 데 한 시간 이상이나 버스를 타고 오는 친구도 있어요. 무조건 쉽고 재밌고 편한 것만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에요. 생각보다 훨씬 진지해요. 틈틈이 써놓은 글을 따로 봐줄 수 있냐고 묻기도 하고 글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눠서 신문으로 좀 더 만들자는 제안도 하고요. 그들은 이미 자기 꿈을 좇아 한 발짝씩 전진하고 있었어요.

 

 

요즘 아이들을 제대로 본 적도 없으면서 제가 겪은 옛 기억에 의지해 마음대로 추측하고 있었나 봐요. 우리가 신문이나 TV를 통해 바라보는 ‘요즘 아이들’이란 얼마나 획일적이고 피상적일까요. 정말 일부분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에게 보내오는 아이들의 원고를 읽다보면 더욱 확실하게 느끼곤 합니다. 그 아이들은 중2병 환자거나 신세대 외계인들이 아니에요. 우리가 그 시절 그랬던 것처럼 자기 장래를 걱정하고 삶의 철학 사이에서 번민하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지요. 그런 게 새삼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세월이 영영 바뀌어버린 줄 알았거든요.

 

하긴 죽음을 생각할 만큼 힘든 경쟁의 회오리를 겪어낸 딸도 모든 과정 후에는 결국 자기 꿈을 좇아 그림을 다시 그리고 있어요. 부모들이 아무리 몰아쳐도 아이들은 결국 언젠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아가는 것 같아요. 취직에 성공했던 젊은이들도 다시 자기 꿈을 좇아 새로운 길을 가는 경우를 요즘 들어 자주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고등학교 때부터 자기 꿈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준비하는 아이들이 너무 예뻐요.

아직도 입시전쟁에 붙들려 많은 아이들이 불행한 시간을 견디고 있을 테지만 이젠 그런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되어도 예전처럼 도망가지만은 않을래요. 이렇게 자기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알려고 애쓰는 아이들이 꿈틀대고 있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