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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권여선을 읽다...

■ 활동명 : 『각각의 계절』, 권여선을 읽다        ■ 일시 : 2023년 8월 21일(월) 15:00~19:30
■ 장  소 : 서대문50플러스센터 톡톡 회의실
■ 참가자 : 강성자 대표 외 회원 5(빨강머리 앤, 명와, 지니, 삐삐, 엘, 목화)

■ 주요내용

   - 권여선을 읽고, 생각을 나누다
   - 차기 도서 확정(9월~12월)

      ▶ 철학자의 걷기 수업, 동행, 모비 딕,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 향후 계획 

   -  DMZ 전시 : 체크포인트 오프닝 참여 - 8월 31일(목), 아트선재센터 출발(12:50~ )

     . 장소 : 도라전망대, 캠프그리브스, 평화누리


   -  서대문50+센터 개관 5주년 특별 사이 특강- 온라인 수강 - 9월 19일(화) 14시

      * 『칠십에 걷기 시작했습니다』의  저자 윤영주(시니어 모델)

 

 권여선 작가를 사랑하는 엘리, 지니, 앤, 삐삐, 그리고 명와님....

엘리의 감상문 <권여선을 읽다>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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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을 읽다

821일 엘리

 

- 들어가는 말

 

오래전 월간 현대문학을 구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장욱 작가의 단편 <올드 맨 리버>를 거기서 만났다. 짧은 단편 <올드 맨 리버>는 야금야금 조금씩 꺼내먹는 감춰둔 과자 같은 것이어서 힘겨웠던 시기에 꽤 쏠쏠한 위안거리가 되어 주었다. 이장욱 특유의 문체와 드라이한 분위기가 좋았다. 한 줄 한 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곱씹으며 읽고 또 읽었었다.

시간을 견뎌내야 했던 시절이었기에 이 것 저 것 탈출구를 찾다가 모 아카데미에서 개설한 글쓰기 강좌에 등록하여 다녀도 보았었다. 강좌 중간쯤에서 인터뷰 글을 쓰는 과제가 주어졌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올드 맨 리버>의 작가 이장욱의 서면 인터뷰를 계획했다. 작가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어 무작정 인터뷰할 질문 몇 가지를 적어 보냈는데, 뜻밖에 친절한 답신을 받았다. 무슨 질문을 했는지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편지 말미에 작가에게 요즘 읽는 책이나 추천할 작가를 말해달라고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 답에 김금희와 권여선이 들어 있었다. 나는 바로 김금희의 <한낮의 연애>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를 읽기 시작했다. 특히 권여선이 좋았다. 이후로 그녀의 여러 작품들을 빠트리지 않고 찾아 읽었다. 최근 산문집, <오늘, 뭐 먹지?>를 읽고 나서는 마치 가까이서 그녀의 삶을, 걸어온 인생을 지켜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동안 소설 말미의 작가의 말등에서 주어 모은 작가에 대한 사적인 정보들이 <오늘, 뭐 먹지>를 통해 한 줄로 죽 엮어지면서 권여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이해가 깊어진 기분이 들었달까. 어쨌거나, 지금은 독자로서 그저 자칭 후천적 애주가인 그녀_부서질 듯 얇은 몸의_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길 기원하는 마음뿐이다.

* 신간 <각각의 계절>에서는 특이하게도 책 말미에 늘 있던 작가의 말을 생략하고 독자에게 보내는 짧은 엽서로 대신했다.

 

1. <하늘 높이 아름답게>_각각의 계절, 2023

 

1) 소설의 인물 구성도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78c3f26.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16pixel, 세로 160pixel

 

소설 속 화자, 베르타를 축으로 중심에 마리아가 있고 마리아를 중심으로 올가, 데레사, 수산나, 사비나가 연결되어 있다. (안젤모 신부는 수산나의 아들이다.)

마리아는 이름 그대로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킨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각의 에피소드 속에서 마리아를 통해 고귀하지 않음에서 짧은 순간이나마 고귀함을 되찾는데, 이 과정은 순전히 베르타의 눈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베르타는 마리아의 죽음이 이들의 기억 속에서 곧 잊힐 것임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번 자신을 포함하여 그들 모두 고귀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씁쓸하게 독백한다.

 

조금 전 성당 안뜰에서 그들은 당장 내일이라도 빅토르의 병원에 달려가 봉사할 듯이, 앞다투어 소피아의 입양을 주선할 듯이 떠들어댔지만 내일이 되면 그들 중

누구도 마리아의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조금도 믿지 않으면서 무엇을 위해 그런 허튼소리들을 내뱉는 것일까.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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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의 죽음 앞에서 데레사, 올가, 수산나, 사비나가 보여 준 각각의 태도는 베르타에게 참회의 소재가 되고 고귀하지 않은 그들을 잠시나마 용서하고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 수산나(p.96), 올가(p.98), 데레사(p.101), 사비나(p.107)

 

소설의 끝은 유일하게 고귀한 사람은 결국 형편이 그들과 너무 층하가 나고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살 수 있었던마리아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베르타는 마리아가 했던 말을 생각하며 다시 찾아온 계절, 가을을 맞이할 힘을 모아 본다.

 

2) 마리아와 베르타

- 마리아

마리아는 지주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으나 봉건적 부모 밑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교육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숨어서 공부하고 숨어서 성당에 나가야 했던 마리아는 아무도 모르게 파독 간호사를 지원해 독일로 떠난다. 거기서도 죽을힘을 다해살았으나 8년 만에 외국인 노동자 강제 송환 정책으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독일에서 마리아는 터키계 독일인 카다르의 아이를 낳지만, 출산한 아이를 데리고 나오다 병원 계단에서 카다르가 쓰러져 돌연사한다. 아이는 바로 독일인 가정에 입양된다. 한국으로 돌아온 마리아는 온갖 돈이 될만한 물건들을 가져다가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팔아서 생계를 이어 나간다. 그중에 태극기를 파는 일은 마리아에게 은밀한 기쁨거리로 태극기가 더 이상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계속된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살랑거리며 늘어져 흔들리다 바람이 불면 펄럭이고 바람이 잦아들면 가라앉고 그늘이 드리우면 은은하게 시름에 잠긴 듯한 깃발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리아는 불가해한 아름다움에 전율했고 마치 둘 사이에 어떤 필연성이라도 있는 듯 자연스레 첫아들의 청회색 눈동자를 떠올리곤 했다.’ (p.106)

 

가톨릭 신자로 성당 바자회 등 행사에서 요리 솜씨를 발휘하기도 하고, 간간이 성당 자매들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 그렇게 어렵게 번 돈은 정신병

 

원에 입원해 있는 아들 빅토르(보육원에서 입양)와 딸 소피아(장기 위탁 보호)를 돌보고 키우는 일에 쓰인다. 마리아는 신장암으로 두 달여를 홀로 투병하다 72세 나이로 죽고 고해성사에서 신부에게 부탁한 대로 신부 주도로 장례가 치러진다.

 

- 베르타

베르타는 약사로 일하다가 두 아들을 키우면서 전업주부가 된다. 남편이 갑자기 죽게 되면서 혼자 살고 있다. 남편이 남겨둔 유산과 연금으로 부족함 없이 여유 있는 삶을 유지한다. 성당 행사에 참여하고 신도들과 모임을 갖고 신도들을 대상으로 참회거리를 찾는다. 어울리는 성당 사람들이 모두 고귀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임에 속한 자신 역시 고귀하지 못한 부류임을 인정한다.

한 달 전에 성당 바자회에서 마리아를 처음 알게 되고 이후로 마리아는 주기적으로 베르타 집에 와서 집안일을 거들어 준다. 베르타가 아들과 체코 여행 중에 마리아의 장례식이 있었고, 베르타는 마리아의 죽음에 대한 자초지종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죽음 소식에 충격을 받는다.

베르타는 자신이 남편과의 사별 이후 너그러워졌던 때, 그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기쁨의 기도를 올릴 수 있을 만큼의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때를 마리아가 태극기를 팔러 나가는 일에 자원해서 동행했던 때라고 생각한다.

 

거기까지였다고 베르타는 생각했다. 그날 저녁까지만이었다고. 님편이 죽고 나서 자신이 제법 철이 들고 너그러워졌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때는, 불안과 초조와 결벽에서 벗어날 수 있고 기쁨에 젖어 기도를 올릴 수 있으리라는 섣부른 믿음을 품었던 때는 봄 바자회에서 마리아를 만나 함께 태극기를 팔러 갔던 그날 저녁까지만이었다고. 불과 한 달 정도밖에 안 되는 그 잠깐 동안뿐이었다고.’(p.113)

 

베르타가 지나가는 행인의 우산에 눈을 찔리는 사고가 일어나고, 마리아는 주저앉은 베르타 눈 주위를 살펴본다. 베르타는 가까이에서 풍기는 구취에 마리아를 매몰차게 밀쳐낸다. 마리아가 죽고 난 후에야 마리아의 구취는 신장암 치료약 투여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된다.

 

2. <역광>_안녕, 주정뱅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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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광>에 대하여

권여선은 말에 대해서 극도로 예민한 작가다. 나는 권여선의 소설 중에서 단연 <역광>_안녕, 주정뱅이을 최고로 뽑는다. 고귀함을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도 훌륭하지만, 몇몇 풍경 묘사도 뛰어나다.

권여선은 고귀함, 격조, 무구함등을 인간에게서 마지막까지 놓지 않아야 할, 잃지 않아야 할 덕목으로 소설 속에서 빈번하게 그려낸다. 역으로 고귀함, 격조, 무구함을 상실한 사람들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약하고 실패한 자들이 오히려 고귀함과 격조를, 무구함을 잃지 않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역광>에서 자연, 풍경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의 탁월함을 발견하게 된다. 작은 모티브( ; ) 하나를 겹겹이 쌓아 올려가며 이야기를 구성해 내는 면에서도 뛰어나다. ‘그녀의 꾸밈과 단장은 위현이 그걸 보지 못하기 때문에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에서 권여선의 가치는 빛을 발한다. 예술가로서 분연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격조 있게 표현하지 못하고 천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말속에서도 권여선의 말에 대한 극도의 예민함이 잘 드러난다. 격조, 고귀함, 무구...등은 권여선이 지키고 싶어 하는 가치이고 이 가치를 훼손하는 말에 격하게 반응한다.

2) 전개

소설의 배경은 예술인들의 레지던시로 주인공은 입주한 지 얼마 안되는 신인 소설가다.

 

이곳에 입주한 예술가들의 죄는 없었다. 그들은 전체적으로는 견딜 수 없이 고집 세고 지루한 인물들의 진열장이었지만 개별적으로는 각자 고귀해 보였다. 고귀함은 시간을 감내하는 고독의 능력으로 빛이 났다. 그러니 그녀도 그렇게 고독하게 견뎌야만 했다. (p.143)

주인공 나는 심한 약시로 조만간 시력을 잃게 된다는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위현에게 관심을 갖고 그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위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묘사에서도 권여선 특유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넘어지지 않으려는 조심과 불안이 그의 긴장한 발목 근처에서 은사슬처럼 찰랑거리고 있었다.(p.156)

 

경직됐던 자세가 조금씩 풀리면서 치켜들었던 턱도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는데, 그럴 리는 없지만 흡사 허공에서 거미줄을 뽑으며 내려오는 작은 거미를 바라보는 듯한 속도였다.( p.162)

 

어느 날 식당으로 날아 든 새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앞을 분간 못하는 위현은 겁에 질려 있다. 이 때 주인공 나는 그런 위현에게로 달려가 상황을 설명하고 안심시킨다. 이를 계기로 위현은 주인공에게 낮술을 하자고 권한다.

그녀는 그가 우연히 날아들어온 새 때문에 빚어진 자신과의 인연을 다시는 못 볼 찰나의 스침으로 여기고 보들레르처럼 거기에 매혹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p,163)

 

보들레르는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위현이 언급한 시인이다.

 

저는 이런 우연한 조우, 스치듯 지나가는 길 위에서의 인연을 무척 좋아합니다. 지나가는 여인에게 연정을 느낀 보들레르처럼 말이지요,”(p.159)

 

두 사람은 발코니에서 낮술을 하면서 저녁이 될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위현의 깊은 내면의 이야기로. 비빔밥을 먹다가 우연히 오이로 입가심을 했는데 버터의 맛이 나더라는 데서 유사와 인접이 협조하여 만들어낸 복합적 결과라는 것, 인간의 기억은 엄청난 융통성을 발휘하는데 정확성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기괴하게 진화해 왔다는 것,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지던 시기에 길 한복판에서 눈이 먼 개가 자신을 오래오래 응시했는데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친 존재가 바로 그 흰 개였을 것이고 그 개에게도 자신이 그런 존재였을 것이라는 위현의 이야기를 듣는다.

낮술로 시작해서 시간은 저녁을 넘어 어두워지고, 위현이 자기 자신을 에서 로 칭하면서부터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진다.

 

강도처럼 내게서 차분한 체념과 적요를 빼앗으려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 새파랗게 젊은 주정쟁이 아가씨는 대체 누구입니까? (..............)

신도 없는데 이런 나쁜 친절은 어디서 오는 겁니까?”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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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현의 이 말을 끝으로 낮술 에피소드는 갑자기 끝이 난다.

 

3) 갑작스런 에피소드의 중단, 그리고 꿈

 

한 줄의 공백다음, 소설의 끝은 소설의 처음, 외출 후 비를 맞고 레지던시로 돌아오는 장면과 다시 겹쳐진다. 사무실 직원에게 위현의 존재를 물었으나 그런 사람은 없다는 말을 듣는다. 이 모든 게 꿈이었을까.

소설 도입부에서 주인공 나는 레지던시 입주 뒤부터 끈질기게 반복되는 꿈을 이야기한다. 그 꿈은 어떤 사람의 직립한 키와 씰루엣에 그 사람의 코를 연관시키는것이다. ‘밤마다 낯선 사람들의 키와 몸체의 윤곽과 형태를 그들의 얼굴 중앙에 있는 코에 연결하거나 겹쳐놓는 식의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

주인공 나의 독특한 꿈의 구조로 보아 허기진 상태에서 뱃속에 쏟아부은 소주에 취해 잠깐 잠에 떨어진 사이 꾼 꿈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새 모티브는 흥미롭다. 식당으로 날아든 새는 주인공을 위현에게로 다가가도록 하는 매개가 되고 동시에 위현에게는 젊은 아가씨인 주인공이 자신에게로 날아든 새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결국 주인공 나와 위현의 만남에 영원한 작별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발코니 앞 단풍나무가 영원한 작별의 불가피성을 안다는 듯 젖은 손바닥 모양의 나뭇잎을 은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p.174)

 

4) 격조와 고귀함

 

<역광>에서 다뤄지는 격조는 천하게 표현되는 말속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조이스와 베게트 번역을 하다가 약시로 급격하게 시력이 악화되어 소설로 방향을 바꾼 위현을 두고 여배우 달은 그런 지경이면 소설보다 시가 더 낫지 않나?’라고 한

 

 

. 등단 1년 차인 신인 소설가인 주인공은 이 대목에서 흥분하여 스스로에게 다음처럼 다짐한다.

 

......자기는 정확히 그렇게 한 줄 알겠지만 달은 결코 자기 감정을 격조있게 표현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질투나 원한을 품을 수 있고 그에게 닥친 불행에 쾌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을 그토록 천하게 표현하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고, 예술가로서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무력하게 다짐했다.’ (p.151 )

 

주인공 나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는 악은 인정하되 그것을 입 밖으로 천박하게 내뱉는 말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이 대목에서도 권여선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에 대해서 작가로서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풍경, 자연 묘사가 뛰어난 문장들

 

.....발코니의 너른 통유리 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어두워지는 잿빛 숲을 배경으로 빗줄기가 희뿌옇게 몰리면서 사변형 무늬를 만들었다. 그녀는 땀에 젖은 두 손을 무릎 위에 펼쳐놓고 바람과 빗줄기가 허공에 희고 얇은 비단 주렴을 드리웠다 거두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 무늬는 어떤 규칙성도 없으면서 그녀를 기다리게 만들었고 어느 찰나에 오랜 기다림에 값하는 환상의 드레스 자락을 펼쳐 보였다.... (p.142)

 

날씨와 풍경, 꿈이나 사물 등에 오래 압도당하고 난 뒤면 그녀는 잠깐 동안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되돌아오는 게 두려운지 되돌아오지 못할까 두려운지 알 수 없었다. (p. 142)

 

...검은 비닐과 주황빛 흙의 이랑과 고랑이 만들어내는 땅의 교차가 땅의 파도를 보는 듯 현기증을 일으키는 밭들......호수로 통하는 희끗한 가르마 같은 오솔길, 모든 작별의 불가피성을 안다는 듯 손바닥 모양의 잎을 은밀하게 반짝거리는 발코니 앞의 단풍나무.....이 모든 것들이 그녀 속으로 차곡차곡 흘러들어와 그녀와 동일한 분량으로 희석되었다.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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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의 숲에서는 나무와 풀과 흙이 이겨진 듯한 싸하고 비린 냄새가 풍겼다.

(P.153)

 

그녀는 숙소 앞마당에 수줍게 봉오리 진, 크고 작은 진주알을 매단듯한 매화나무를 보는 순간 희열에 찬 안도감을 느꼈다. (p.154)

 

그날은 며칠 새 기온이 급속히 올라 모든 꽃들이 서수적 시간에 항거하듯 일시에 꽃망울을 터트린 날이었다. 절기의 경계가 흐려지고 미리 폭발한 생명들로 천지에 다디단 향기가 가득했다. (p.161)

 

새들은 살뜰하게 뭔가를 속닥거리듯 계속 호로로로록 호로로록 울었다. “눈동자 같은 소리군요.” (P.169)

 

6) 제목 <역광>에 대하여

 

* 역광 ; 물체(物體)와 마주 대했을 때, 그 물체(物體)의 뒤쪽에서 비치는 빛살.

* 역광 촬영 : 대상물의 뒤에서 조명하면서 대상물의 앞에서 촬영하는 일. 대상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거나 화면의 공간적 깊이를 나타내려고 할 때 이용한다.

 

- 신형철 평론가는 <호모 파티엔스에게 바치는 경의>에서 소설 제목 <역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상처받는 한 예술가가 있고 그런 그의 이야기를 내가 들어주는, 내밀한 진실과 섬세한 배려가 오가는 그런 시공간으로서의 환상, 이 소설의 제목이 역광인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역광을 이용하면 피사체의 윤곽은 또렷해지되 그 경계선 내부는 어둡게 가려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 사진이 드라마틱한 느낌을 주는 까닭을 심리학적으로 말해보자면 그 피사체에 내 환상을 마음껏 투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 그러니 그녀가 레지던시에 도착한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그녀의 환상이었던 것, 애초 위현이라는 인물 자체가 상상의 산물이었던 것

 

이니, 위현의 나르시시즘 역시 그녀 자신의 판타지가 투영된 것일 뿐이겠다.’

 

- 역광이 비추면 눈이 부셔서 눈을 감게 되고 따라서 눈앞은 순간적으로 캄캄한 암흑 세계가 된다. 작가는 그런 암흑세계를 상상해 본 것일 수도 있고, 위현의 상태를 암시한 것일 수도 있다. ‘저는 앞도 못 보지만 뒤도 볼 수 없다’(p.163)는 위현의 농담같은 말에서도 제목 역광이 떠올려진다.

 

- 글을 마무리하며

 

<역광>_안녕, 주정뱅이를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역시 권여선 소설 중의 수작이라는 것, 위현이 말한 새파랗게 젊은 주정뱅이 아가씨는 곧 젊을 때의 권여선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복선의 정교한 활용( , , , 단풍나무 등등), 소설 전개의 매끄러움 뒤의 급작스런 반전, 곳곳에 보석처럼 빛나는 자연물에 대한 뛰어난 묘사 등은 권여선 작가를 애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중요 요소들이다.

2023년 신간 <각각의 계절>에서는 2016새파랗게 젊은 주정뱅이 아가씨가 조금은 주변의 타인과 자신에게 너그러워질 줄 아는 중년의 베르타로 거듭 성장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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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수 (1)

  • 강성자

    수고많으셨습니다

    2023-09-05 13:2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