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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 기형도, 진은영 詩에 빠지다...

■ 활동명 : 책읽는 풍경 2월의 만남
■ 일  시 : 2023년 2월 20일(월) 16:00~20:00
■ 장  소 : 서대문50+센터 내 회의실, 강옥순 고문댁
■ 참가자 : 강성자, 강옥순, 임영신, 마정숙, 김기수
■ 주요 내용           
   - 만남의 기쁨을 만끽              

   - 「커뮤니티 날다!」지원을 위한 세부활동 계획 및 일정 논의

   - 기형도, 진은영 시인의 詩감상 공유 
■ 향후 계획
   - 3월 10(금) 11시, 서대문 센터에서 만나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책을 정하기로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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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서모임은 다른 때와 좀 달랐다. 예정됐던 장소는 우리 서대문50++센터.  지니샘이 직접 만든 소스와 빵의 

등장으로~~ 명와샘은 "우리집!?"을 제안하고,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마실 것과 과일을 준비하고 함께 명와샘 댁으로 

향했다. 

후다닥 잘차려진 식탁에 둘러앉아 기형도, 진은영 시인들의 세계를 함께 이야기했다.

엘리샘의 진지하고 성실한 준비는 늘 우리 귀를 쫑긋케 한다. 책과 늘 함께한 샘들과의 수다는 무궁무진하고 일상의

세계를 넘어선 화제들로 신선하다.  독서모임의 매력이 아닐까...  그.렇.다...

장소를 넓혀 4월엔 경주 방문도 계획해보고 년간 모임도 구상해본다. 나이 들어감에 매번 선물 같은 시간이다.(강성자 )

 

 

  2월의 도서를 선정하고 감상문을 준비한 마정숙 회원의 글을 공유한다.(아래)

 

1. 들어가는 말 _시에 관한 단상

 

- 한병철 < 사물의 소멸 2022> 중에서 인용

 

예술품은 사물이다. 심지어 우리가 통상 사물로 취급하지 않는, 를 비롯한 언어적 예술품도 사물의 성격을 띤다. ...기표들 곧 언어적 기호들로 이루어진 형태의 구조물로서의 는 의미들로 용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물이다, 물론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를 읽을 수도 있지만, 의미는 의 전부가 아니다. 는 감각적 신체적 차원을 지녔으며. 그 차원은 의미 곧 기의를 벗어난다. 다름 아니라 기표의 과잉를 농축하여 사물로 만든다. 우리는 사물을 읽을 수 없다. 사물로서의 시는 스릴러물이나 술술 넘어가는 소설을 읽을 때처럼 의미와 감정을 소비하는 읽기에 저항한다. 이런 읽기는 까발리기를 추구한다. 이런 읽기는 포르노적이다. 반면에 소설같은 충족, 소비를 일절 거부한다. 포르노적인 읽기는, 신체로서의 텍스트, 사물로서의 텍스트 곁에 하염없이 머무르는 에로틱한 읽기의 반대다. 는 우리의 포르노적 소비주의 시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오늘날 우리는 를 거의 읽지 않은다.

로베르트 발저는 가 아름다운 몸이라고, 신체적 사물이라고 서술하다. “ 아름다운 는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 몸이어야 한다. 그 몸이 (...) 쉽게 잊히지 않게. 거의 생각없이 종이에 적은 단어들로부터 피어나야 한다. 그 단어들은 내용 곧 신체를 팽팽히 감싼 피부를 이룬다. 예술의 본령은 단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조형하는 것, 바꿔 말해 단어들이 단지 시-신체 형성을 위해 수단이 되는 것이다. 단어들은 생각없이쉽게 잊히게종이에 적힌다. 요컨대 쓰기는 단어들에 명확한 뜻을 부여하려는 의도로부터 해방된다. 시인은 거의 무의식적 과정에 자신을 내맡긴다. 는 뜻을 생산하는 고역으로부터 해방된 기표들로 직조된다. 시인생각이 없다. 그의 특징은 모방하는 순박함이다. 그의 진지한 관심사는 단어들로 하나의 신체를, 하나의 사물을 조형하는 것이다. 단어들은 피부로서 하나의 의미를 둘러싸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팽팽히 감싼다. 짓기는 사랑의 행위, 신체와의 에로틱한 놀이. (p.91~93)

 

2. 기형도의 걷기와 길

 

시인 기형도(1960 ~ 1989)는 나보다 2년 먼저 태어났다. 내가 대학 졸업 후 1년을 잡지사에서 근무하다 퇴사하고, 1년 준비 끝에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 해인 88년도에 시인은 '시작메모'를 썼고, 89년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할 때쯤 시인은 영화관에서 느닷없이 죽었다. 그 당시 내가 기형도 시인의 시를 알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지금 나이 60을 앞에 두고 나는 그를 처음 만난 것만 같다. 길 위에서 걷고 있는 나와 먼 길과 길에서 만났던 많은 눈들에 대해 그토록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시인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본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입 속의 검은 잎

시작 메모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

 

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

 

하였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

 

[ 있음을 지금도 나는 믿는다.그러한 믿음

 

이 언젠가는 나를 부를 것이다.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눈이 쏟아질 듯하다.

 

 

 

1988 11

 

기형도

 

 

2-1 길을 소재로 한 시 모음

 

1) 가는 비 온다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2) 어느 푸른 저녁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여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3) 가수는 입을 다무네

걸어가면서도 나는 기억할 수 있네

 

4) 기억할 만한 지나침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5) 10

흩어진 그림자들,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 짧은 그림자가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6) 그날

나를 끌고 다녔던 몇 개의 길을 나는 영원히 추방한다.

 

......내가 지나치는 거리마다 낯선 기쁨과 전율은 가득 차리니 .....

 

*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나치며 만난 낯선 기쁨과 전율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때론 가는 비에 간판이 젖는 거리이고, 때론 눈이 퍼붓는 캄캄한 거리이며, 정오의 어두운 숲길이기도 하고 영원히 추방하고 싶은 거리이기도 하다.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기형도 30주기 기념)기형도 시전집

 

3. 기형도 <조치원>과 이병률 <수색역>

기형도의 시 <조치원>'사내가 달걀을 하나 건넨다.'로 시작하는 첫 구절부터 저 깊숙이 가라앉아있던 유년의 세계를 단번에 강렬하게 휘저어놓았다.

그 먼 유년 시절의 기차역과 기차 여행과 철도원이셨던 아버지가 차례차례 머릿속을 지나갔다. 아버지는 다른 역보다 조치원에서 더 많이 근무했을까. 철도 노선도를 검색해 보았다. 낯익은 역이름이 몇 개 더 나왔다. 서쪽으로 문산, 파주에서 동쪽으로 대성리, 덕소, 멀리는 춘천까지 어릴 적 아버지가 근무했던 역들이다. 그 당시 철도 공무원 가족은 무임승차가 가능했다. 그 혜택을 누려 우리 가족은 자주 기차 여행을 했었다. 온천은 온양으로, 마늘 철에는 제천으로, 쌀은 군포로 등등...주로 목적이 뚜렷한 기차 나들이였지만.

기차역 주변의 침목 향과 역사 주변에 무성하게 자라던 붉은 꽃과 나무들의 기억들이 생생하다. _특히 윤이 반들반들 나던 사철나무 울타리...철길 주변으로 나무들은 더없이 건강한 생장을 했다. -

침목의 특유한 향이 차창 안으로 들어오고 출발하는 기차 소리가 커져갈 때쯤 기차 안의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안심하는 표정이 된다. 낯선 이가 어린 나에게 달걀 하나를 건넨다. 차 창밖으로 눈발도 흩날렸으리라.

 

'조치원이라 쓴 네온 간판 밑을 사내가 통과하고 있다

나는 그때 크고 검은 한 마리 새를 본다

틀림없이 사내는 땅 위를 천천히 날고 있다

 

어른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반은 졸면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누가 먼저 역에서 내렸고 나는 무척 서운해했던 것 같다. 먼저 차에서 내려, 갈 길을 간 그가 크고 검은 새가 되어 공중을 날아간다는 상상은 가슴을 헉 막히게 할 만큼 기이하면서도 현실처럼 느껴져 왔다. 사람의 뒷모습이 크고 검은 새로 변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마치 그 광경을 목격이라도 한 듯이.

 

이후로 기형도의 <조치원>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읽는 시가 되었다.

 

며칠 전, 우연히 한 주민센터 옥상 카페 서가에 비치된 시집 한 권(이병률)을 꺼내 읽었다. 거기에 <수색역>이란 제목의 시가 들어 있었다. 수색역! 역시 친근한 이름의 역이다.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당신이 산다고 했습니다

그 역의 막차 시간 앞에서 서성거리다

추운 그 역 광장에

눈사람 만들어 놓고 왔습니다'

 

역과 추운 겨울의 눈과 연결시킨 시린 사랑의 정서가 또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내가 살았습니다. 기차역 앞 마당은 동네 놀이터 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방인 여행객들과 친근한 이웃이 뒤섞여 늘 북적대며 활기가 넘치던 공간.

거기에 유년의 보물을 묻어 두고 참 오래 멀리 떨어져 살았습니다. 젬마, 평옥이, 영미, 원희, 여자애들과 잘 어울려 놀던 인구까지.’

 

4. 기형도의 <어느 푸른 저녁>과 주민현의 <밤의 영화관>

 

어떤 시들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가 서로 비슷하게 느껴져 올 때가 있다. 아주 주관적인 느낌일 수 있겠지만. 기형도의 <어느 푸른 저녁>과 주민현의 < 밤의 영화관>을 나는 자꾸 겹쳐 읽게 된다. 눈에 띄는 공통점은 저녁 시간대에 길을 홀로 걷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면서 기형도 시 속 화자는 이상한 기분, 낯선 기분에 휩싸이고 저녁은 신비한 그러나 병약해 보이는 푸른 빛을 띤 저녁이 된다. 주민현에서도 밤과 탄천은 걸어 들어가고 싶은 죽음에로의 유혹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깊은 고독과 사색의 세계로 안내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어느 푸른 저녁 - 기형도

 

1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

 

,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검은 와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무방하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본다

 

 

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 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

 

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

 

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

 

언제나 뒤늦게 온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2

 

가장 짧은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결정들을 한꺼번에 내리는 것일까

 

나는 까닭 없이 고개를 갸우뚱해본다

 

둥글게 무릎을 기운 차가운 나무들, 혹은

 

곧 유리창을 쏟아버릴 것 같은 검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

 

낮은 소리들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걸어오는 것이다

 

몇몇은 딱딱해 보이는 모자를 썼다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 가는

 

나는 그것을 습관이라 부른다, 또다시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라, 감각이여!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투명한 저녁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모든 신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밤의 영화관 - 주민현

 

밤에 탄천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구나. 앞뒤로 손, 뼉을 치며 경보하는 사람들 틈에서 성형외과 의사 아

내로서 당신은 고독하다.

 

경기가 예전 같지 않아, 이럴 때 사람들은 장바구니에서 필요 없는

목록부터 뺀다고. 당신, 애들이 새파랗게 어린 건 생각도 안 하지?

 

이름을 바꾸어 개업하는 의사의 아내로서 당신은 불안하다. 그는 가

슴을 열고서 닫지 못한 적이 있다. 칼을 드는 건 내 적성이 아닌 것 같

. 적성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다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으로 의사의 시계가 똑딱똑딱 흐르기 시

작하는데, 의사의 아내로서 당신은 탄천의 불빛으로 상념에 잠긴다.

가슴이 비뚤어지고 코가 내려앉은 사람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어느 날 앞서 걷던 여고생이 강물로 뛰어든 적이 있다, 무언가 반짝

이는 게 있어서 그랬어요, 얕은 물에서 이마를 문지르며 일어섰는데,

반짝이는 것이란 쉽게

 

사람의 마음을 끌지, 동전같이, 사기꾼같이, 탄천은 반짝이는 것을

품고서 한강을 향해 유유히 흐르고 밤의 탄천에선 각자 상영되는 영하

속을 걷고 있구나. 의사의 아내인 당신은 걷다가 깊은 밤과 깊은 고독

에 한 발 빠지는 것이다.

 

 

* 이수명 시인의 기형도 시 분석

 

이수명, 문학과 사회 하이픈 (2020)

자아가 시의 주요 요소로, 의미있는 콘셉트로 구성되는 또 다른 시인은 기형도. 기형도의 시에 나타나는 삶이나 가족, 지인들의 모습, 그리고 당시의 풍경을 통해 1980년대에 이십대 청년의 삶을 살아간 한 시인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하고 고독하고 시대적 고뇌를 잔득 지고 있던 이 청년 화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시에 보편적일 수도 있는 삶의 내역이나 가족사를 구체적으로 묘사해서라기보다는 이러한 상황 속에 한 점의 풍경처럼 배회하는 자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억압적인 시대와 곤궁한 가족의 폐허에 결박당한 듯하면서도, 아니 결박당한 채 홀로 떠도는 자아 말이다. 자유롭지도, 자유롭지 못한 것도 아닌 이 고립된 자아는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자신을 홀로 남겨둔 장소들을 흘러 다닌다. 충분히 시대적이지도 충분히 개인적이지도 못한 이 우울한 자화상이야말로 그 어떤 삶의 직설적 무게보다 선명한 진실로 보였고 그리하여 1980년대라는 시대성을 넘어 20세기말의 고단을 아우리는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이수명, 표면의 시학 (2018)

 

기형도를 한마디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유고 시집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지속적인 그 놀라운 호응도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그의 개인적인 불행이나 죽음도 전부는 아니다. 그보다 그의 시 속에는 분명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마력이 숨어 있음을 간파해 한다. 그와 같은 귀기울임이라는 상황이 그렇게 심도 있게 진행되는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동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후대에게도 대등한 힘을 발휘하는 드넓은 그의 보편성을 지나칠 수는 없다. 이 힘을 기형도 특유의 권유의 힘이라 상정할 수 있지 않을까.

......... 표제작인 잎 속의 검은 잎을 위시하여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1980년대가 스러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한 고독한 내면을 담고 있다. 또한 한 시대가 마감되는 것을 보면서 아주 천천히 고백조의 어투로, 결코 마감되지 않은 무엇인가를 호소하고 있다. 그 무엇인가가 이 시집의 매력이다. 그것은 철저히 개인적인 진실이지만 동시에 시대적 명제를 적절히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배력을 갖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형도의 고백은 고백을 넘어서는 고백이며, 은밀히 횡적으로 공유된다. 그것은 사회 속으로 들어가 용해되지 않으며, 모두가 개인적으로 간직하는 증언이며, 그런 의미에서 사적으로 연대되는 고백이다. 그의 개인사는 모두의, 각자의 개인사에 들어앉는다. 그의 시는 한 사람 한 사람과 깊게 관계 맺는다.

 

5. 진은영의 시

-철학자 한병철의 시론(?) 에 기대어 진은영의 시를 읽어보다.

 

‘.......시인은 거의 무의식적 과정에 자신을 내맡긴다. 는 뜻을 생산하는 고역으로부터 해방된 기표들로 직조된다. 시인생각이 없다. 그의 특징은 모방하는 순박함이다. 그의 진지한 관심사는 단어들로 하나의 신체를, 하나의 사물을 조형하는 것이다. 단어들은 피부로서 하나의 의미를 둘러싸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팽팽히 감싼다. 짓기는 사랑의 행위, 신체와의 에로틱한 놀이. ...’

 

1) 청혼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2) 당신의 고향집에 와서

나는 사랑의 민달팽이들을 풀어놓을 겁니다.

 

3) 생일

사랑의 간장병을 쏟으신다 하얀 종이에

가장 맛 좋았던 내 유년 시절에

달팽이 눈처럼 얌전한 하루가 솟아오르고

.....

내 몸의 슬픔이 완두콩처럼 자라났다

달까지 무성하게

..........

 

4)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무한한 녹색 심장을 짜를 수 있다

빛나는 여름의 몸속을 흘러가는 모든 동맥을 끊어놓을

수 있다

나뭇잎을 날카롭게 휘두르며 가로수 길을 난자할 수

있다

나는 수만 개의 핏방울이 금붕어처럼 튀어 오르는

가지들 사이에서 팔딱거릴 수 있다.

 

5) 봄여름가을겨울

작은 엽서처럼 네게로 갔다. 봉투도 비밀도 없이. 전적

으로 열린 채. 오후의 장미처럼 벌어져 여름비가 내렸다.

나는 네 밑에 있다. 네가 쏟은 커피에 젖은 냅킨처럼.

개의 파란 전구가 마음에 켜진 듯. 가을이 왔다. 내 영혼

은 잠옷 차림을 하고서 돌아다닌다. 맨홀 뚜껑 위에 쌓인

눈을 맨발로 밟으며.

 

시 읽기는 하염없이 머무르는 에로틱한 읽기라는 말에 동의하고 싶어진다. 시인은 생각없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시 쓰는 행위에 내맡긴다. 단어(기표)들은 저들끼리 살아서 춤추고 난리다. 시인은 문득 그 춤판에 끼어들 수도 있고 아예 무관심한 척 할 수도 있다. 시를 읽는 는 에로틱한 그 무엇 속에 발을 들여놓는다. 진은영의 시는 특히 더 에로틱하다.

 

며칠 전 헨델의 옴브라 마이 푸를 우연히 듣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또 우연히 진은영의 시에서 지나쳤던 <카살스> 시를 읽고, 진은영 시의 빛나는 어떤 지점을 발견한 듯 기뻤다.

 

6) 카살스

음악은 밤의 망가진 다리

하느님이 다리를 절며

걸어 나오신다.

 

음악은 영혼의 가느다란

빛나는 갈비뼈

물질의 얇은 살갗을 뚫고 나온

 

음악은-호박에 갇힌 푸른 깃털

한 사람이 나무로 만든 심장 속에서

시간의 보석을 부수고 있다.

 

음악은 무의미-

우주 끝까지 닿아 있는 부드러운 달의 날개 아래서

길들은 펼쳐졌다 잠이 들었지.

 

6. 시 앞에서 우리가 할 일들

6-1 두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았던 시, 각각 한편씩 낭송하기

6-2 어떤 시가 연상작용을 일으켜 생각나게 한 사건이나 추억 말해보기

전체댓글수 (2)

  • 강성자

    오늘도 기수샘의 수고로 책모임은 그 두께를 더해가네요. 4월의 외출을 기대하면서 ..고맙습니다.

    2023-03-02 09:33:28

  • 김기수

    시를 읽는 아름다운 시간에 못 가 아쉽다는 우리 삐삐님! 생전 처음 미국 본토땅에 계신다는 우리 삐삐님! LA...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라고 하네요. 행복한 여행 일정 잘 마무리하고 어여 오세요~~

    2023-02-24 11:5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