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아름다움을 품은 제천 의림지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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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추폭포

 

제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50+세대에게는 사통팔달의 기차역과 의림지가 익숙할 것이고, 아래 세대에게는 레저와 체험을 즐기기 위한 청풍호 관련 관광시설이거나 한방엑스포 정도일 것이다. 유명한 관광도시는 아닐지라도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기에 그만인 곳, 지방 소도시, 슬로시티 제천을 느리게 여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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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봉산에서 바라본 청풍호

 

제천은 고속도로는커녕, 지방도로조차 부실하고 부족했던 시절, 중앙선, 태백선, 충북선이 열십자로 교차하는 철도 교통의 요지였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추억으로만 남았지만, 서울에서 강릉 가는 야간 기차는 제천을 경유해 밤새도록 달려 동해안 일출과 마주했다. 아스라한 기억의 뒤편에선 완행열차 비둘기호와 더불어 별이 총총 빛나는 캄캄한 제천역, 황량한 밤공기 그리고 더운 김나는 가락국수가 상흔(傷痕)처럼 떠오르게 된다. 역과 광장 주변은 인간 군상들의 기다림과 설렘, 이별의 슬픔과 탄식이 뒤섞이면서 몽환처럼 교차하면서 아른거린다.

 

제천은 청주, 충주에 이은 충청북도 제3의 도시로, 인구 13만 명에 면적은 서울의 1.5배 정도의 크기다. 고만고만한 지방 중소 도시의 하나로 힘겹게 생존을 고민하고 있지만, 천혜의 자연환경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활용해 자연치유 도시, 한방도시를 표방하며 관광과 서비스 산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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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림지 전경


제천 10경 중 제1경인 의림지(義林池)는 삼한시대 축조된 역사적 명승지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다.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더불어 3대 인공 수리시설로 신라 진흥왕 때 가야금 명인 우륵이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의림지는 제천시의 주산(主山)인 용두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막아 가뭄과 침수로부터 농경지를 보호하였고, 홍수 때는 넘치는 물을 모래와 함께 서쪽의 용추폭포를 통해 흘려보냈다. 농업이 경제의 중심이었을 때 의림지는 산간 지역인 제천에서 제천평야 대부분에 물을 공급하던 저수지로서의 기능을 담당한 외에도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였으며, 예로부터 문인들의 격조 높은 풍류 장소였다. 당시의 정자와 누각은 지금까지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제림(提林)이라고 하는 제방 위에 조성된 소나무와 버드나무 군락도 의림지의 자랑거리인데, 제천 시민들을 비롯해 관광객들에게 제공하는 휴식 공간의 기능도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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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림지 역사박물관

 

저수지 둘레는 1.8km(경복궁 담장 둘레와 비슷하다), 수심은 8~13m, 저수 면적은 32평 아파트 1,432개 크기라 한다. 전망대 성격의 큰 정자인 경호루, 조선 순조 때 건립되었다는 영호정(1954년 중건)이 있으며 우륵의 자취(우륵대, 우륵샘)와 수백 년 지켜온 노송들이 그림 같은 경관을 연출한다. ‘호서(湖西)지방은 충청남·북도를 통칭하는 말인데, 의림지의 서쪽 지방이라는 연원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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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봉산 정상에 있는 모멘트캡슐

 

돌이켜 보면 내 청춘의 방황기에 제천역과 의림지가 있었다. 밤늦게 제천역을 나와 터덜터덜 걷다가 여관인지 여인숙인지, 초라하고 곰팡내 나는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기억, 이튿날 이유 없이 의림지에 가서 나라는 존재와 막연한 미래에 대한 상념으로 가득했던 기억이 그것이다.

 

그때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들렀던 곳, 이제 흐릿한 잔상으로만 남아있는 송학춘(松鶴春)이다. 송학춘은 중국음식점 상호인데, 생경하고 이채로워서 아직도 제천을 생각하면 기억이 꿈틀꿈틀 살아난다. 당시 중국음식점 상호는 대개 지명 뒤에 반점을 붙여 산동반점, 홍콩반점 등이었고, 중국과의 수교 후에도 북경반점이나 만리장성 등이 추가되었을 뿐, 실내외가 붉은색과 금색이 조화를 이룬, 낡고 허름한 집들이 다반사였다. 지금은 고상한 이름을 지닌 격조 높은 중국음식점들이 지천이지만, 송학춘은 상호만으로 보면 시대를 30년 이상 앞선 것 같다. 송학춘의 짜장면의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글쎄, 지금은 어디에 있는 건지, 있기나 한 것인지, 그때 초로의 주인장은 지금도 살아서 짜장면을 만들고 있는지?

 

제천은 조선시대 3대 약령시장 중 하나였고 지금도 양질의 약초를 재배, 가공, 유통하고 있다. 특히 기를 보하고 양기를 북돋운다는 황기는 전국 유통량의 80%에 달하며, 더덕, 인삼, 도라지 등 약채도 흔하다. 근래에는 약초+한방`의 이미지를 이용해 만든 종합건강 음식 브랜드인 약채락(藥菜樂 : 약이되는 채소를 먹는 즐거움)‘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여느 중소 도시와 마찬가지로 고령화와 인구감소, 경제력 쇠퇴로 고민하고 있으며 지방소멸론을 극복하고 도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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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봉산 케이블카

 

제천은 의림지 외에도 청풍호 문화재단지, 비봉산(청풍호반 케이블카, 모노레일), 제천 치유의 숲, 박달재, 월악산, 베론성지 등 다양한 관광지가 있으나 대중교통으로 둘러보기엔 상당히 불편해서 자가용으로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족 : 제천 사람들은 호수 대부분이 제천이 위치하기 때문에 제천호, 또는 청풍호라고 부르자고 하고, 충주 사람들은 충주에 만든 충주댐 때문에 생긴 호수가 아니냐면서 충주호로 하자고 한단다.


 

 [글/사진 : 50+시민기자단 4기 정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