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교감 또는 세대 교류와 세대 공유란 말이 왜 자꾸 나오고 있는 걸까. 세대 차이란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온 말이다. 그 구분은 기본적으로 젊음과 나이 듦이었다. 그 안에서 대체로 생각이나 선택의 차이가 세대 차이란 말로 이어진 듯하다. 아무튼 그렇게 젊음이든 늙음이든 각자의 입장에서 삶을 살면서 나이 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세대 차이란 말도 한물간 느낌이다. 물론 함께 사는 세상이지만 ‘당신과 나는 세대가 다르옵니다’ 하면서 각자의 개체를 냉혹하게 칸막이 쳐 놓은 기분을 자주 느낀다. 이렇게 세대를 구분하고 특징짓다 보니 상호 간 소통이 원활하기가 쉽지 않다. 급기야는 이젠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다양한 모습의 판을 깔기도 한다.
근래 들어 주변의 기관이나 단체에서 ‘세대 차이를 둔’ 사람들을 불러들여 직접 만나 상호 교감하면서 공유와 협력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다. 얼마 전 지역에서 하는 세대 교감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았다. 물론 젊음들을 만나는 나이 듦의 입장을 선택하고 참여자가 되었다.
‘세대 교감 프로젝트’라는 타이틀로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구분되어 양쪽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요리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만났지만, 세대를 뛰어넘어 서로 짝을 이루어 요리하고 도움을 주고받는다. 초반엔 어색했다. 나이 좀 들었다고 넉살 좋고 눈치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아들 딸뻘 되는 젊은이들에게 쉽게 말도 못 걸고 내 앞에 주어진 순서에만 몰두한다. 도와주고 싶지만, 혹시나 원치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힐끗힐끗 보기만 한다. 내 앞의 이십 대의 젊은 파트너는 어찌나 수줍음이 많은지 내게 눈을 맞추지 못한다. 내게 식재료를 건넬 때도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가만히 밀고 싱긋 웃는다.
흔히들 젊은이들의 사고방식 중에 주변은 아랑곳없이 자기 것에만 몰두하고 옆에는 관심 없을 듯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었다. 또한 젊은 청춘들이 때론 이기적이고 버릇없이 싹수없다고도 말하는데 내 눈앞의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찌나 예의 바르고 착한지 너무 예쁘기만 하다.
이날 함께하는 요리 수업은 서로 배려하면서 도움도 주어야 하는 디테일한 작업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물어보고 도움을 주며 한두 마디씩 대화를 나누며 비로소 눈빛이 부드러워진다. 요리 강사님이 퀴즈처럼 질문을 던지면 물론 요리의 연륜이 많은 어른들이 잘 맞추는데 이럴 때 청춘들이 ‘오옷~’ 하면서 보내는 발랄한 리액션으로 서로 즐겁다. 마지막 포장 상자를 조립할 때는 복잡하기도 했지만, 일부러 어려운 척 도움을 청했다. 어찌나 친절하고 겸손하게 도움을 주는지 착하고 기특하다.
물론 두 시간여가량으로 금방 친해지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맞은편 짝꿍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어가는 걸 느낀다. 그동안 지레 구분 지어놓은 선입견으로 거리감을 만들어 놓은 건 아닐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다. 통통 튀는 젊음의 텐션에 힘입어 한껏 기분이 오른 시간이었다. 그들 역시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고 얻었을지 생각해 본다. 함께 나누는 시간만으로도 이해도가 높아진다는 걸 비로소 안다.
세대를 구분 짓고 특정 짓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일은 아니란 생각이다. 분명 ‘다름’을 인식하고 가까이 다가가는 마음이 필요하다. 세대 교감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살아온 세월이 더 많은 기성세대들이 먼저 손 내밀고 품어주는 미덕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요즘 들어 MZ세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신조어다. 사실 우리 50플러스 세대들의 자녀들 아닌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과 급변하는 경제 성장을 경험한 성실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그들의 부모다. 그들이 뱉어내는 라테나 꼰대라는 말로 부모 세대를 폄훼하는 식의 말들은 어디서 시작되어 나온 말들일까. 스피디하게 변화해 가는 사회 속에서 디지털과 개인주의적 성향은 불가피하다. 현명한 MZ세대와 현명한 꼰대들의 이해와 어울림은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맛깔 나는 요리로 모인 이날처럼 또 다른 프로그램을 통한 이해와 나눔의 시간을 마련하는 것 또한 멋진 시도가 아닐지.
50+시민기자단 이현숙 기자 (newtree14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