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인구소멸 도시, 남원의 팬슈머 경험해보기 >

 

 

일본의 수도 도쿄의 변두리가 공동화되면서 인프라가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다. 지방도시가 아닌 메트로폴리스인 도쿄 도심의 외곽까지라고 하는 건 충격이 크다. 거주민이 거의 없어져 시설복구 인프라가 통폐합되면서 전기가 나가고 수도가 끊겨도 바로 수리가 안 되고 치안 공백도 심각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먼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89개 지역이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이다. 춘향의 도시 남원은 202377천 명이다. 2006년에 91천 명에서 무려 15%가 줄었다. 2018년 감소인구는 700여 명 수준이었지만 22년에는 1400여 명으로 2배나 증가했다. 6만 명대로 들어서면 병원과 같은 기반 인프라를 유지하기조차 힘들 거라는 암울한 전망이었다.

 

남원은 팬슈머를 간절히 원한다. ‘팬슈머’, 무척이나 생소한 말이다. 이 신조어는 팬과 컨슈머의 결합어이다. , BTS의 열렬한 팬(fan)이 아미(ARMY)이듯이 남원이라는 도시의 팬이면서, 그곳에서 나는 생산품에 대해 컨슈머(consumer; 소비자)가 되자는 의미이다. 인생 후반전을 맞이하면서 멋진 곳에 세컨하우스를 짓거나 빌려 단기간 혹은 여러 해 지역살이를 소망하는 중장년 입장에서 맛보기로 며칠 체험하는 컨셉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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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도 남원시 생활인구 활성화 교류사업에 참여한 남원팬슈머 활동가들의 모습. ⓒ  시민기자단 서상록 기자 

 

 

남원팬슈머 활동은 총 23일간 진행되었다.

 

첫째 날 오후에는 행정안전부에서 지역특성살리기 사업 일환으로 발효테마 마을카페로 탈바꿈한 하주 발효마을에서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곳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의 노하우를 활용한 발효빵과 발효떡 만들기 체험이 진행되었다. 나중에 손수 만든 빵을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맛보게 했더니 정말 맛있다는 칭찬에 지난 체험이 더욱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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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발효마을에서 남원팬슈머 활동 참가자들이 갓구운 발효빵을 담을 종이상자를 만들고 넣는 등 행복한 체험을 하고 있다. (출처: 김만희 패스파인더 대표) 

 

 

저녁에는 솔바람 지역공동체 마을에서 마을의 사무장이 진행하는 디퓨져 와 화장품 만들기 체험을 마치고, 이어서 남원 시골 딸내미를 운영하는 청년 기업인과의 대화의 시간이 진행되었다. 시골 딸내미? 기업인이 여성? 소토의실에서 만난 기업인 농부는 앳돼 보이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알고 보니 전국에서 선정된 10대 청년 농부 중에서 유일하게 1차 생산품인 쌀을 생산하는 20대 여성 농부였다. ‘시골딸내미라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을 물고기인 추어미(鰍魚米)라는 브랜드로 유기농 백미, 흑미, 통밀, 적미, 찹쌀 등을 판매 중이었다. 농약이나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서 논에 미꾸라지가 많이 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팬슈머로 지원한 구성원들은 사회적 기업 대표, 소셜 인플루언서, EBS 강사 등 다양했다. 하나라도 도움이 될 만한 자문을 해주기 위해 수많은 질문과 대답, 그리고 토의가 무르익어가던 중, 브랜딩 전문가(정언랑)가 신선한 아이디어를 하나 제안했다. 아예 추어미뿐만 아니라 추어(미꾸라지)도 같이 판매한다고 쇼핑몰에 상품을 등록하라고 조언했다. “논에 얼마나 미꾸라지가 많으면 판매까지 하겠어?” 유기농일까 하는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꿔주기에 충분한 아이템이라고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추어미에 대한 매출과 브랜드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밤 9시가 되어가는데도 열띤 자문 토의에 모두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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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0대 청년 농부에 선정된 20대 여성 기업가가 운영하는 시골딸내미 스마트스토어 온라인 매장의 유기농 추어미가 상품 등록되어 있다. ⓒ  시민기자단 서상록 기자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침 일찍부터 계획된 일정 때문에 3명이 배정된 숙소로 돌아왔다. 남원팬슈머 사업의 창시자인 김만희 패스파인더(Path-finder; 길 위에서 길을 찾다) 사회적 기업 대표와 현 사업의 리더 앙코르브라보노 사회적 협동조합 신창용 이사장이었다. 김만희 대표는 지방 인구 소멸에 따른 남원팬슈머 사업의 필요성을 5년 전 처음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여러 지자체가 외면할 때 유일하게 선견지명으로 한번 해보자고 화답한 남원시 공무원(, 기획실장 안상엽)과의 역사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지금은 경남 고령, 강원 인제 등도 남원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사업 추진에 아주 분주해졌다고 한다.

둘째 날은 새벽이슬을 머금은 신비로운 자연 건축물을 보면서 시작되었다. 숙소 근처의 호암서원을 산책하려고 나서다, 아침 안개 가득한 시골 뚝방길에서 강아지풀에 몇 날 며칠, 아니 수개월이 걸렸을지 모르는 거미의 경이로움을 맞이했다. 아마 강아지풀까지 감싸지 않으면 바람에 강아지풀이 흔들려 방사형의 수렵 터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숙고의 산물로 건축한 듯했다. 태어나서 흔하디흔한 거미줄을 보고, 아침 산책을 하던 팬슈머들이 모두 가던 길을 멈추고 연신 자연이 연출한 걸작이라고 감탄사를 토해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마 일상의 많은 문제를 내려놓고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아침의 특별함과 중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수성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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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가 지은 경이로운 자연 건축물이 새벽이슬을 머금고 있다. ⓒ  시민기자단 서상록 기자 

 

 

시골딸내미의 윤기 넘치는 백진주쌀과 맛깔난 밑반찬을 아침 보약처럼 먹고, 네 명이 렌트카 한 대로 맺어진 모둠별로 길을 나섰다. 우리 3조는 남원시 동편제 마을에 있는 희망씨앗농장에 오전에 들렸다. 정영학 대표의 산양체험과 유제품 생산으로 치유와 회복, 돌봄과 고용 등 사회적 농장을 실현하겠다는 큰 꿈을 듣고 응원하면서 화사한 가을 햇살을 안고 찍은 동편제 마을의 단풍나무를 추억으로 남겼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개설하신 실증사의 법인 스님과 인연이 닿는 분(이귀보 두두 협동조합 전 이사장)이 있어서 점심을 몸에 좋은 절밥으로 해결했다. 식사 후 농사를 많이 지으셔서 검게 그을린 스님이 정성스레 다려주신 차를 마시며 귀한 말씀을 듣고 바로 인접해있는 다음 목적지인 지리산 구절초 영농조합에 갔다. 구레나룻이 멋드러진 조합대표로부터 구절초 재배 현황과 현안들을 토의하며 응원과 홍보를 약속드리며 지리산 자락의 뜨거운 햇볕을 뒤로하고 오후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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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씨앗농장이 있는 동편제 마을 입구의 은행나무와 소나무가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긴다. ⓒ  시민기자단 서상록 기자 

 

 

마지막 날은 지리산 뱀사골 가을 산행이 계획되었다. 처음에 남원 여행 간다는 설레임이 대부분이었는데 생각과 달리 첫날부터 무척이나 빡빡한 일정에 내심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1986년의 지리산을 37년 만에 맛본다는 사실은 내게 특별했다. 지리산 해설사의 계곡과 나무들의 사연과 유래를 구성진 입담으로 들으며 느긋하게 올라가는 산행은 내 안에 잠든 세포를 깨우는 어린 시절의 즐거운 소풍이었다. 산행하며 간간히 셀프 촬영과 프로 사진작가들이 찍은 사진은 그 날의 생경함을 더 아름답게 색칠한다. 따사모 조윤희 이사장과 권태훈 사진 작가, 그리고 패스파인더 김만희 대표의 사진은 영혼을 불어넣듯이 자연과 사람을 어우러지게 하고, 진하다 못해 방금이라도 내 옷에 물들 것 같은 현란한 색채는 정신을 아득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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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뱀사골의 붉디붉은 단풍과 깊고 투명한 녹색 계곡의 대비가 인간계의 시름과 걱정을 모두 잊게 한다. (출처: 김만희 대표 사진) 

 

 

남원에서의 팬슈머 활동이 성공적인 정착으로 이어지면서, 최근에는 강원도 인제, 경북 고령 등 많은 지자체에서 팬슈머 사업을 시작했다. 남원은 공격적이면서 선도적인 정책을 하나하나 펼쳐나가고 있다. 디지털 관광주민증 발급받으면 남원에서 숙식은 물론 관광택시와 관광명소에서 수많은 혜택을 주고, 지리산 활력타운 조성 사업과 신중년 복합 이주단지 조성과 같은 중장년 생활인구를 맞이하기 위해 예산확보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문화예술전통이라는 남원만이 갖는 멋스럽고 고유한 키워드에 여수 밤바다와 같은 휘황찬란하며 첨단 미래산업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연결 중이다. 이러한 미래 청사진을 그려나가는 남원시 기획실장의 눈빛에서 생활인구 10만이라는 목표는 숫자가 아닌 확신으로 보인다.

 

중장년 대다수가 어딘가에 세컨드 하우스를 꿈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제주, 경남 남해가 0순위였지만, 이번 남원팬슈머는 남원도 포함하게 되었다. 지역살이에 단순한 지역과 음식만이 아닌 사람이 들어간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짧지만 23일간의 남원팬슈머 경험에는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다음 편에는 2일 차 탐방했던 <희망씨앗농장>에서의 값진 시간과 대표의 사회적 농장에 대한 원대한 꿈을 담는 기사를 작성할 예정입니다.)

 

 

시민기자단 서상록 기자(qmsss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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