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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esented by Keith Johnston from Pixabay)

누구에게나 그들만의 리그가 있습니다.
시원하게 치고, 열심히 달리고, 때론 슬럼프로 벤치에 앉아서 쉬어가기도 하는 그들의 삶에
심판으로 끼어들어 세이프냐 아웃이냐를 결정해주려하는건 욕심입니다.

그저 관중석 너머에 머물면서 그들의 삶에서 멋진 플레이가 나오기를 목청껏 응원해주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삶의 장면에 가슴 벅차해하는 정도로 만족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습니다.

세대, 성별, 직업군, 경제군, 지역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구성원들을 분류했을 때
모든 그들만의 리그에는 저마다의 어두운 단면과 아픔이 있게 마련이고,
랜턴을 켜서 어느 그룹에 집중해서 불빛을 비추냐에 따라
그 그룹원들에게 새겨져있는 생채기는 더욱 도드라져보이게 되며,

본 <억울 완화 집단 상담>은 그러한 다양한 그룹들 중 '중장년 남성' 그룹에 빛을 조명해 보기 위한,
강동50플러스센터와 아주대학교 심리상담센터의 관학협력 프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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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 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비애와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오늘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길어진 그림자 뒤로 할 말은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 '아버지와 나 Part.1', 넥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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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프로그램들은 참석자분들의 사적인 영역을 다루는 과정이므로,
본 후기에서는 프로그램 중에 진행되었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기술은 지양하고,
프로그램 특징 소개와 읽을거리 하나를 대신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장년 남성 억울 완화 집단 상담> 프로그램은,

-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아들러의 상담심리학을 이론적 토대로 합니다

- 아들러의 심리학 이론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
  호흡 명상, 집중 명상, 바디 스캔 등의 마음챙김 기법을 추가로 접목해서 구성한
  아주대학교 상담심리센터의 상담심리 프로그램입니다

- 강동50플러스센터는 올 해 5월에 1기 과정을, 7월에는 2기 과정을 개설하였습니다

- 진행자는 중재자 혹은 퍼실리테이터라 불리는 촉진자의 역할을 맡아서
  참석자들이 프로그램의 과정을 따라오면서 장벽을 낮추고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안내하게 되며,
  아주대학교 상담심리센터의 박선영 상담사님이 본 과정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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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들은 프로그램 참여와 소통을 통해 심리적 완화와 해소 과정을 경험하게 되며,
  상담심리센터에서는 본 프로그램이 가지는 효용성에 대한 실질적 경험치를 추가로 축적하게 됩니다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상담 및 치유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어색함과 낯설음을 안고 시작한 참석자분들이 얼마나 빨리 서로에 대한 적응 과정을 거치면서 친숙해지느냐와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솔직히 들려줄 수 있게되느냐가
본 프로그램의 효과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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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서, 아들러의 상담심리학 이론에서 추천하는 치유 기법 중의 하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마주해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재로 하는 잔잔한 읽을거리 중 하나로는 폴 빌라드의 '이해의 선물'이 있으며,
교과 과정에 '위그든씨의 사탕가게'라는 제목으로 종종 실리기도 했던 원작의 길이를 좀 줄이고
내용을 일부 각색하여, 글맺음으로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아련한 어린 시절 기억들을 오늘쯤은 한번씩 선명하게 떠올려보시는건 어떨까 합니다.

 mc1.png↓피프티 플러스 씨의 악보 가게

피프티 플러스씨
                  악보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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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 한구석 누나의 낡은 피아노 앞에 몰래 앉아
그 중에서 제일 하얀 건반 하나를 눌러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나의 연주 생활에 조금씩 실력이 붙어갈 즈음,
나는 누나를 따라 피프티 플러스씨의 악보가게를 처음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그 많은 악보들에서 풍기던 잉크 향기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내 머릿속에 생생히 되살아난다.
나는 그처럼 마음을 사로잡는 멋진 기호들이 한꺼번에 펼쳐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악보들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른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먼저 한 악보 속의 음표들을 머릿속으로 충분히 연주해보지 않고는 다음 것을 고를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내가 고른 악보가 하얀 봉투에 담길 때에는 언제나 잠시 괴로운 아쉬움이 뒤따랐다.
다른 곡이 더 멋진 소리를 담고 있지는 않을까? 더 오래동안 연주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가게 문에 달린 조그만 방울이 울릴 때마다 플러스씨는 언제나 조용히 나타나서, 카운터 뒤에 섰다.
그는 꽤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머리는 구름처럼 희고 고운 백발로 덮여 있었다.

플러스 씨는 골라 놓은 악보를 봉투에 담은 다음, 잠시 기다리는 버릇이 있었다. 한 마디도 말은 없었다.
그러나 하얀 눈썹을 치켜올리고 서 있는 그 자세에서
다른 악보로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산대 위에 악보값을 올려놓은 다음에야 비로소 하얀 봉투는 테이프로 봉해지고,
잠깐 동안 주저하던 시간은 끝이 나는 것이었다.

그 무렵, 나는 돈이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누나나 부모님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건네 주면,
그 사람은 또 으레 무슨 꾸러미나 봉지를 내주는 것을 보고는
'아하, 물건을 팔고 사는 건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가지 결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플러스씨 가게까지 두 구간이나 되는 먼 거리를 나 혼자 가 보기로 한 것이다.
상당히 애를 쓴 끝에 간신히 그 가게를 찾아 커다란 문을 열었을 때 귀에 들려 오던 그 방울 소리를
지금도 나는 뚜렷이 기억한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천천히 진열대 앞으로 걸어갔다.

이쪽엔 달빛에 취해 들려오는 숲의 노래를 모티브로 하는 곡이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여러 곡들을 모아서 편곡한 조곡 악보가,
그 뒤쪽에는 연주를 해보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 들것만 같은 빠른 템포의 곡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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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충분히 오래동안 연주를 해볼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내가 몇 개의 악보를 골라 내놓자,
플러스 씨는 나에게 몸을 구부리며 물었다.
'너, 이걸 살 돈은 가지고 왔니?'

'네.'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는 주먹을 내밀어, 그동안 절대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던,
별이 다섯개나 그려져있어서 내가 가장 아끼는 동그란 딱지 열장을 플러스 씨의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

플러스 씨는 잠시 자기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한동안 내 얼굴을 구석구석 바라보는 것이었다.

'모자라나요?'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나서 대답했다.
'돈이 좀 남는 것 같아. 거슬러 주어야겠는데…'

그는 계산대에 놓여 있는 '철컹' 소리가 나는 서랍을 열었다.
그러고는 몸을 굽혀, 앞으로 내민 내 손바닥에 동전 하나를 떨어뜨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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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로서는 그 모든 사건이 내게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바쁜 성장 과정을 지나는 동안,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몇 번의 이사와 그만큼의 시간을 거치면서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음대에서 만난 아내와 함께 조기 은퇴 이후에는 악기를 판매하는 가게를 열었다.

내가 바쁘게 악기들을 손질하던 어느 화창한 오후,
매우 어려 보이는 남자 아이 하나가 제 누이동생과 함께 가게에 들어왔다.
두 아이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다양한 종류와 모양의 악기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남자아이가 소리쳤다.
'우와! 우리도 여기 있는 것들 살 수 있죠?'

어린아이 둘만 온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가게를 시작하지 얼마되지 않았던 시기라서 하나의 물건이라도 더 팔고 싶었던 나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온 아이들이려니 생각하기로 하고는 대답했다.
'그럼. 돈만 있다면야.'

'네, 돈은 많아요.' 남자 아이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 말하는 폼이 어딘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얼마 동안 악기들을 살펴보더니,
손가락으로 칼림바와 오카리나를 가리키며 하나씩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아이들이 고른 것을 포장한 후, 아이들에게 건네 주며 말했다.
'멋진 소리를 내는 악기들을 골랐구나,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

'네.' 남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 누이동생을 돌아보고 말했다.
'네가 돈을 내.'

나는 손을 내밀었다. 다음 순간, 꼭 쥐어진 여자 아이의 주먹이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태를 금세 알아챘다.
그리고 그 어린 소녀의 입에서 나올 말까지도.

소녀는 쥐었던 주먹을 펴고, 내 손바닥에 500원짜리와 100원짜리 동전 몇 개를 쏟아 놓았다.

그 순간, 나는 먼 옛날에 플러스 씨가 내게 물려준 유산이 내 마음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제서야 비로소, 지난날 내가 그 노인에게 안겨 준 어려움이 어떤 것이었나 알 수 있었고,
그가 얼마나 멋지게 그것을 해결했던가를 깨닫게 되었다.

손에 들어온 그 동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는 그 조그만 악보 가게에 다시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옛날 플러스 씨가 그랬던 것처럼 두 어린이의 순진함과,
그 순진함을 보전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 날의 추억이 너무나도 가슴에 벅차, 나는 목이 메었다.
소녀는 기대에 찬 얼굴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모자라나요?'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돈이 좀 남는 걸'. 나는 목이 메는 것을 참으며 간신히 말했다.
'거슬러 줄 게 있다.'

나는 진열대로 다가가, 작은 오르골 두개를 집어들고는 아이들에게 하나씩 건네 주었다.
그리고 나서, 악기와 음악상자를 보물처럼 소중하게 들고 길을 걸어 내려가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을 문가에서 지켜보고 서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와 보니, 아내는 현악기들을 조율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관절 무슨 까닭인지 말씀해 보세요.' 아내가 나를 보고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나는 아직도 목이 멘 채로 대답했다.

내가 플러스 씨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아내의 두 눈은 젖어 있었다.

'아직도 그 악보들의 잉크 향기가 잊혀지지 않아.'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금관악기들을 닦으면서, 어깨 너머에서 들려 오는 피프티 플러스 씨의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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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사업지원단 - 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