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란 공자님의 익은 말씀으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이다. 

 

필즈상(Fields Medal) 수상자 허준이 교수가 어느 대학의 졸업식에서 행한 말이 화제다.

“취업, 창업, 결혼,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정신 팔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알다시피 수학계 노벨상은 40대 미만을 대상으로 한다. 다시 말해 허 교수는 아직 40대 전인데도 젊은 사람 말이 이순(耳順)의 나를 능가한다.

 

image00001.jpg
▲ 필즈상 메달.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초상을 형상화했다.

 

소위 셀럽(Celeb)들의 가치이다.

수많은 사람이 루비콘강을 건넜지만, 폼페이우스의 사주를 받은 원로원이 갈리아에 있던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리자, BC 49년 1월 그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외치고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의 내비게이션을 찍는다.

 

요즘 언론이나 금융권의 포트폴리오에서는 팍팍한 삶에 대한 ‘노후 준비’라는 말이 화두다. 해 있을 때 건초더미를 말리라는 식으로 편안한 노후를 위해서라면 미리미리 현재의 시간과 자산 등을 저당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노후 준비’라는 말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직장 다니고 나이 들어 퇴직하며 노년을 보내다가 죽는 것이 순리라지만 머리가 희어지는 때도 못 미쳐 세상을 떠난 사람이 부지기수다. 노환, 숙환보다 사고사, 병사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든 아무 때나 죽을 수 있다.

 

그렇다니 미국의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Theodore Roethke)가 말했듯이 “늙음이란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오히려 일견 축복이다. 그래서 옛말에도 “백발이 성성한 어른이 들어오면 일어서고, 나이 든 어른을 보면 그를 공경하라.” 했다.

 

노인 특히 백년해로의 노부부를 보면 우리는 마땅히 존경해야 한다. 왜냐하면 불륜이나 성격차, 경제적 이유 등으로 헤어질 결심을 하는 부부들이 풍조가 되는 세상에 두 손을 꽉 쥐고 걷는 황혼 부부는 참으로 경이롭다. 

 

나 역시 취업, 결혼, 야근, 예비군 훈련받는 젊은이들을 보면 법인카드도 없고 오후 5시 같은 쪽볕 햇살이래도 지금이 좋다.

 

image00002.jpg
▲ 자전거 타는 50플러스

 

물론 어렵고 힘든 노후도 많다. 돈 없이 늙는 ‘무전장수(無錢長壽)’, 직업 없이 늙는 ‘무업장수(無業長壽)’, 병들어 골골 늙는 ‘유병장수(有病長壽)’, 처자식 없이 늙는 ‘독거장수(獨居長壽)’ 등…

 

하여 요새는 ‘노후’를 넘어 ‘사후’가 화두다. 어떻게 사는 줄도 모르면서 죽는 것을 걱정하는 세상인 셈이다. 순우리말에는 ‘오늘’과 ‘모레’는 있어도 ‘내일’은 없다고 조크하신 이어령 선생의 생전 암 투병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왜 요즘인가요?

- 사람 만날 때도 그 사람을 내일 만날 수 있다, 모레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농밀하지 않다. 그런데 제자들 이렇게 보면 또 만날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리면 내년에 또 볼 수 있을까. 저 꽃을 또 볼 수 있을까. 그럴 때 비로소 꽃이 보이고, 금방 녹아 없어질 눈들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너는 캔서(암)야. 너에게는 내일이 없어. 너에게는 오늘이 전부야’라는 걸 알았을 때 역설적으로 말해서 가장 농밀하게 사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나쁜 일만은 없다.”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걷는 이길, 지금 하는 일, 지금 느끼는 감정들 이 모든 것이 ‘내일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우린 더 농밀한 삶을 살 수 있다.

 

image00003.jpg
▲ 마이야르 반응. 겉바속촉의 삶

 

맛있는 불판에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갈 즈음,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다. 아미노산과 환원당 사이의 화학 반응으로 음식 조리 과정에서 갈색으로 변하면서 특별한 풍미가 분출되는 순간이다. 50플러스들의 삶이 그래야 한다.

‘겉바속촉!’ 살갗도 표정도 겉은 비록 바삭하나 속은 여유와 아량으로 촉촉한 삶. 

 

김소월 님의 시처럼 독백처럼 불편한 진실이나 풍문인들 웽웽거려도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yphwang@skku.edu)

 

 

황용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