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과 주민, 창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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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의 낡고 좁은 골목길을 발길 닿는 대로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삶의 흔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장소와 공간은 자신만의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창신동 명소와 창신동과 관련된 키워드를 중심으로 글을 써볼까 합니다.

 

 

■창신동 명소

창신동하면 생각나는 키워드는 백남준, 박수근, 김광석, 전태일, 채석장, 문구·완구거리, 쪽방촌과 동신교회 그리고 DRP(동대문 옥상낙원 DRP(Dongdaemun Rooftop Paradise), 네팔 음식거리, 매운족발,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지랩(공간플랫폼기업)과 도시재생 등이 있습니다.

 

 

지면상 하나하나 설명은 어렵고, 동대문아파트채석장만 간단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동대문아파트는 국내 현존하는 아파트 중 2번째로 오래된 아파트인데, BTS 뮤비 촬영장소, 영화 세븐데이즈와 숨바꼭질 촬영장소였고, 이주일, 백일섭 등 유명 연예인들이 거주해서 한때 연예인 아파트로 불리기도 했었습니다. 1967년 준공되었고, 131세대 6층짜리 1개 동으로 전부 9평짜리인 아파트입니다. 어느 집에서든 복도로 나오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중정(중앙정원)이 인상적인 아파트입니다. 복도에서 복도를 연결하는 빨랫줄과 도르래, 오래된 대문과 폰트가 있는 풍경이 마치 홍콩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낙산과 동망봉 사이에 위치한 채석장은 일제 강점기 경성역(문화서울역)과 조선총독부 등을 지으면서 돌을 캐냈던 곳입니다. 인기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그리고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와 주인공 승민이 주로 이야기를 나누던 배경지가 채석장 동네입니다. 이 외에도 창신동에는 깨알처럼 많은 이야기가 구석구석 박혀 있습니다.

 

■안양암 

사대문 바로 바깥인 창신동은 나이가 들어 퇴직한 궁녀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었습니다. 퇴직 궁녀들이 기거하던 거처는 이미 오래전 헐리고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 그 궁녀들이 귀금속을 시주하며 말년의 평안을 기원했던 안양암(조계사에서 관리 중이며, 서울시 지정 문화재)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도시재생

성공적인 도시재생이나 로컬리티 확립은 정부와 외지인(주로 청년들)에 달리지 않았습니다. 도시를 되살리고, 상권을 활성화하는 것은 결국 주민의 몫이고 역할입니다. 그것이 곧 지역(로컬)의 힘이고 시간 지나면 그것이 역량이 됩니다. 공무원은 인사발령나서 이동하고, 떠날 외지인은 어차피 떠납니다. 지자체에서 무언가 하기 시작하면, 당장 무언가 진행되는 것처럼 여겨질 테고, 별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지역 자체의 힘과 역량이 없으면 남아있는 자가 져야 할 무게는 무겁습니다.

 

 

결국 도시재생은 지역주민이 도시재생을 어떻게 인식하고, 참여하고, 주도하고, 평가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도시재생 플레이어들은 제주도에 투자한 중국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창신동의 도시재생은 어떻게 이뤄지게 될까요? 동네 혹은 도시재생은 인간성, 욕망 그리고 그것이 만든 시간의 문화가 자연스럽고 적당하게 섞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너무 삭막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 “적당하게”라는 말이지만..ㅠㅠ)

 

■세로로 

성곽길을 올라가다 보면 숲에 가려져 있는 조그만 협소주택 “세로로”가 있습니다. 건축은 풍경에 놓여 또 다른 풍경을 만드는 요소가 되곤 합니다. 경관을 헤치지 않으려 지은 작은 집. 이 주택 앞에 서면, 저는 부질없는 욕망은 줄이면서 착해져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건축비 때문에 작게 지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유명인으로 만들어준 1976년 스미요시 주택 이후로 집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 삶의 결핍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일본 국민들은 누구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좁고 긴 주택 중앙에 비가 떨어지는 마당을 구겨 넣어 지친 도시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자 했던 강렬한 바람은 이후 일본의 주택설계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삶(라이프스타일 혹은 취향)의 차원으로 이끌어 갔다고 합니다. 건축가 승효상도 『비움의 미학』에서 “거주자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석양이 보고 싶으면 창문을 열고, 별빛이 생각나면 뚫린 천장으로 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여백을 남겨서 그 여백을 거주자가 스스로 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50년간 미국 중산층 집 크기는 2배 가까이 커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50년간 미국인의 몸이 커진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가족 구성원 수는 줄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2배 커진 집은 물건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눈만 뜨면 모든 매체에서 더 크고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해야 더 행복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물건을 사기 위해서 우리는 또 열심히 일합니다. 그리고 그 많은 물건을 넣기 위해서 더 큰 집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큰 집을 사기 위해 또 더 많이 일해야 합니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우리나라에서 다가구나 단독, 빌라는 주택이 아닙니다. 오로지 아파트입니다. 아파트 가격으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합니다. 똑같이 찍어낸 제품에 담긴 의미(획일화된 공간의 폐쇄성과 위화감, 편리함과 위대함 등)를 강조한 뒤샹이나 앤디워홀을 보면서 기성작가들이 느꼈을 혼란과 유사할 듯합니다. 관점의 차이는 서로의 입장에 따르는 상대적인 문제일 뿐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삶의 새로운 방식(different ways of living), 작은 집이 가져온 사소하지만 큰 삶의 변화를 기대해 봅니다.

 

 

창신동 골목을 거닐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사하게 눈부셨던 봄날을 지나, 벌써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장맛비를 피해 잠시 정자에 앉으니, 그동안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지나갑니다. 일어나 다시 걸어봅니다. 가을의 길목에서 지난 시간을 하나씩 뒤로 내려놓으며 걷습니다. 앞으로 어떤 길목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될지 기대됩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 더욱 상식적이고 보편타당한 삶을 지향하고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