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 감상의 여러 단계

 

10월은 정말 많은 축제가 열린다. 서울뿐 아니라 방방곡곡이 그렇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은데 분신술 재주는 없어, 행사 일정표를 보며 한숨 쉬기 일쑤다. 그래서 한 가지 주제만 골라 나들이한다. 20239월은 프리즈FRIEZE와 키아프KIAF 등의 미술 전시와 행사에, 10월은 건축과 부산국제영화제에 꽂히기로 했다. 대부분 축제가 놀고먹는 비중이 크지만, 위의 행사들은 문화와 지적 욕구를 채워주니 이 아니 좋은가. 아쉬운 건 예전에는 이들 행사장을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비싼 입장료에 예약까지 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몰린다는 것. 나 홀로 미술관을 독점하곤 했던 옛날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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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홈페이지 

 

 

10월의 건축 관련 행사 중 가장 중요하고 큰 행사는 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https://2023.seoulbiennale.org).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을 주제로 1029일까지 열린송현녹지광장,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서울시청(시민청) 등에서, 건축 관련 전시와 학술행사, 시민 참여 프로그램 등을 선보인다. 워낙 행사가 많아 선별해서 찾아가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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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 홈페이지 

 

 

건축에 관심 많은 이라면 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이전에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렸던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https://heatherwickstudioseoul.com)를 필시 찾았을 것이다. 세계적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토마스 헤더윅Thomas Alexander Heatherwick과 그의 스튜디오의 30여 년 프로젝트를 보며, 왜 우리나라에선 이런 건축과 디자인을 볼 수 없는가,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내가 창의적이지 못한 건 획일적인 성냥갑 학교와 아파트에서 성장한 탓이야.”라는 한탄도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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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15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홈페이지 

 

 

또한 9월에는 15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https://www.siaff.or.kr)가 열려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 작품을 스크린으로나마 감상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전시와 행사는 많지만, 우리나라에선 건물 완공 축하연에 건축 설계자를 초청하거나 호명하지 않는 건 물론, 그들의 이름을 적은 명판조차 걸리지 않는다고 자조하는 건축가들 글을 여러 번 읽었다. 외국에는 설계한 건축회사, 협력 건축회사, 시공회사 등의 당연한 정보들이 날짜와 함께 기록되어 걸린다는 데. 우리도 이렇게 하면 똑같은 외양도 부실시공도 줄어들 텐데.

 

아쉬운 대로 국내 외 건축 다큐멘터리와 책을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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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BS 홈페이지 

 

 

앤 메이크피스Anne Makepeace감독의 <아이엠 페이의 건축 세계 I.M. PEI: Building China Modern>(2010)‘AMERICAN MASTERS' 시리즈의 한편으로 제작된 53분 길이 다큐멘터리다. 아이엠 페이(Ieoh Ming Pei, 1917- 2019)는 루브르 박물관의 투명 삼각 피라미드 입구를 디자인한, 중국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다. 다큐멘터리는 당시 풍수학자들이 비난했다는 홍콩 중국은행 타워를 간략하게 이야기한 후, 쑤저우박물관(苏州博物馆) 건립 전 과정을 기록한다. 사무실을 함께 운영하는 아들과 중국계 직원들 증언을 곁들이며, 나이 들어서도 멈추지 않았던, 특히 고향에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정을 다했던 쑤저우박물관 설계에서 행정가 설득, 개관식까지를 차분하게 따라간다.

중국은 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500여 년간 기념비적 작품이 없어 내가 기여할 게 있을 것 같았다.” “다음 세기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가 주요 문제다. 문화대혁명 때 많은 전통 건축이 파괴되었다. 마오쩌둥은 베이징을 파괴했다. 서양은 자발적 현대화를 이루었지만 공산주의자는 적은 돈으로 획일화된 날림 건물을 지으며 그걸 현대화라고 여겼다.”는 말이 꼭 중국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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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사 진진 

 

 

미즈노 시게노리(Shigenori Mizuno)<안도 타다오Samurai Architect Tadao Ando>(2017)는 국내에도 팬이 많은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 1941- )의 건축 세계는 물론 인간적 면모까지 담아낸다. 고등학생 시절, 2년여의 프로 권투 생활을 접고 건축 관련 서적을 읽으며 해외여행에 나서, 각국 건축 양식을 연구하며 건축가 꿈을 키웠고, 28세에 안도 타다오 건축 연구소를 설립해 건축가가 되었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 건물 기초에나 쓰이던 콘크리트를 외부 마감재로 노출하는 노출 콘크리트 공법’, 공간과 자연, 인간의 합일점을 찾는 건축을 최우선에 두고 빛의 교회, 지중미술관, 푼타 델라 도가나 미술관 등을 설계해, 1995년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안도 타다오 건축 기행을 할 수 있다. 가평의 한화인재경영원, 제주도의 유민미술관과 글라스 하우스와 본태박물관, 원주의 뮤지엄산, 여주의 마음의 교회, 서울의 엘지아트센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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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사 두타연 

 

 

<고양이를 부탁해>(2001)로 유명한 뚝심 있는 감독 정재은은 <말하는 건축가Talking Architect>(2011)에 정기용(鄭奇鎔, 1945~ 2011) 건축가의 마지막 1년을 담았다. 무주 프로젝트, 기적의 도서관,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사저 등을 설계한,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 공공건축 대가는 대장암 후유증으로 죽음을 향하던 시기에도 일민미술관 전시회, 후배 양성 등으로 바쁜 모습을 보인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무주군 내 31개 건물의 신축, 리모델링 작업을 아우르는 무주 공공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보자. 무주군청, 무주반디랜드공충박물관, 무주군농어촌종합지원센터 같은 규모 있는 건물은 물론 반딧불장터, 등나무운동장, 무주 버스 정류장 등에서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다라는 정기용 건축가의 철학을 잘 읽을 수 있다. 무주에 가거들랑 정기용 건축 투어를 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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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도서출판 비채 

 

 

건축 관련 소설 한 권을 덧붙인다.

마쓰이에 마사시松家仁之2012년 발표작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원제목 火山のふもとで 화산 기슭에)>> 23살에 몸담은 건축 유토피아建築 Utopia로 요약할 수 있겠다. “여름 별장에서는 선생님이 가장 일찍 일어난다.” 이 첫 문장으로 시작되어, 29년 전 23살 건축학도가 흠모하던 노 건축가 사무실에 입사하여, 국립현대도서관 설계에 참여하며 보낸, 여름 별장에서의 나날을 기술한다. 이토록 아름답고 세세하고 전문적인 풍경, 자연, 인물, 사물 묘사가 가능하다니! 건축은 당연하고, 아사마 화산 기슭 여름 별장의 세부, 함께 기숙하며 설계에 임했던 스승과 선배들의 인품과 성정과 특기, 함께 들었던 음악과 와인과 음식 차림의 품격과 격식, 심지어 새의 외양과 소리까지 세세하게 표현한다. 꽃의 특징, 자동차와 오토바이 묘사 수준까지 최고급 최상이다. 이런 시절과 스승과 선배와 환경을 누렸다니, 주인공 사카니시 도오루 정말 부럽고, 형님 말대로 행운아’, 그것도 일본 국민 아닌 전 세계인 중,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복을 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건축 기행/소개 책을 읽었지만, 이 소설 한 권에 묘사된 건축 설명에 미치지 못했다. 책을 통째로 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아사마 화산 인근 지도를 펼쳐놓고, 소설에 언급된 건축과 새까지 찾아가며 읽으려면 이틀은 걸린다.

 

 

 

 

시민기자단 옥선희 기자(eastok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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