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실패박람회 토크콘서트를 가다_정재찬 교수의 '낭만실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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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보물 같은 실패이야기

 

 

8월 20일(목)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두루두루 강당에서는 2020 실패박람회 토크콘서트 2탄이 열렸습니다. 대놓고 실패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는 이 행사는 유튜브 실시간 중계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정재찬교수의 <낭만실패전>은 서부캠퍼스 강당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서하경님의 진행으로 정재찬 교수님(한양대 교수, 시ㆍ에세이스트)을 강사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50+ 연사로는 안은영님과 유상모님이 함께했습니다. 먼저 정재찬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할까요? 

 

(왼쪽부터) 서하경 사회자, 안은영 연사, 정재찬 교수, 유상모 연사 

 

 

한 번도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 있긴 하다.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나 연봉 2억 미만으로만 벌 거야. 난 서울대를 가지 않겠어.(웃음) 우린 그동안 너무 목표 중심으로만 휘둘려서 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목표를 이루어야만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목표를 이루지 못한 웬만한 사람들은 스스로 실패자라고 낙인찍고 있는 게 아닌가.

 

실패하지 않을 방법이 또 하나 있다. 내 인생을 과정과 결과로 생각해 보자. 과정에 충실했으면 우리는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목표 중심으로만 살다 보니 인생이 힘들어진다.

 

 

실패에 대해 얘기를 나누려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다. 윤성학 시인의 ‘소금 시’를 보면

 

로마병사들은 소금월급을 받았다./나는 소금병정.../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을 내주고 소금을 받는다./울지 마라. 눈물이 너의 몸을 녹일 것이다. (중략)

 

우리가 먹고 살려면 소금이 필요한데 월급을 벌려면 우리 몸 안의 소금기를 다 쏟아야만 한다. 애처로운 일이다. 냉정하게 보면 밥이 우리 몸의 에너지원을 얻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밥벌이의 문제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본질은 같다. 인생은 이렇게 비애다. 좁은 취업의 문 앞에서 좌절을 겪는 청년 실업자들, 경단녀들. 이 지겨운 밥벌이를 위해선 유예하는 청춘 뿐 아니라 노년층의 인간적인 자존감마저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40, 50대들은 어떨까? 김사인 시인의 ‘중과부적’을 보자.

 

조카학비 몇 푼 거드니 아이들 등록금이 빠듯하다/ 마을금고 이자는 이쪽 카드로 빌려내고.../시골노인들 팔순 오고 며칠 지나 장모님 관절염으로 입원 하신다/다시 자동차세와 통신요금내고.../문상마치고 막 들어서자 처남 부도나서 집 넘어갔다고 아내 운다.

 

이게 우리 중년들의 삶이다. 40대의 삶은 ‘나도 한 번 스트라이커 같은 인생 살고 싶은데 맨날 사는 건 골키퍼 같은 인생’이다. 고된 일이나마 있으면 다행이고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평균 41세가 되면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라고 한다. 50대는 어떤가. 되게 아프니까 50이다. 돌아가며 아프니까 50이다. 하지만 50대는 아파봤다. 아픈 게 심지어 나쁜 게 아닌 거 안다. 아픔을 통해 배우는 게 있다는 걸 안다. 청춘들에겐 이게 사실 희망이 될 수 있다. 인생의 디폴트를 아픈 거다 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원래 인생은 힘든 것이다. 이 정도만 살아도 괜찮다. 나를 버티게 해주는 것만 있다면 살만하다.

 

 

사회는 사회대로 사회안전망이 중요하다. 얼마나 우리에게 기회를 허용해주는가. 실패를 거듭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가 이게 필요하다. 실패를 해도 된다는 희망. 그러면 버틸 수 있다. 버티는데 많은 것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닐 수도 있다. 안도현 시인의 ‘퇴근길’을 보자. 두 줄짜리 짧은 시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없다면/아, 이것마저 없다면

 

이 시의 배경은 IMF다. 그때는 온 동네가 삼겹살에 소주 한 잔으로 버텼다. 이 시를 거꾸로 읽으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있다면 그것 하나만 있어도 버텨지는 게 삶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우린 버틸 수 있다. 나를 지켜주는 희망만 있으면 견딜 수 있다. 

 

 

나는 ‘일과 삶’에 대한 주제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양면성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일은 무조건 힘들고 삶은 즐거워야 하는 것인가. 워라밸을 얘기할 때 워크에는 가치를 두지 않고 괴로운 것인 양 생각하는데 워크도 라이프고, 라이프도 라이프다. 균형이 중요한 것이다. 인간은 노동을 하면서 자기 삶의 본질을 추구한다. 노동은 신나는 것이다. 가령 책상을 하나 만드는데 그 책상이 자식에게 주는 책상이라면. 힘들까? 힘들면서도 즐거울 것이다. 일에서 기쁨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이 하는 말이 있다.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란다.

 

이렇게 얘기하면 젊은이들은 꼰대 같은 소리한다고 한다.(웃음) 당장 먹고 살아야하니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고 한다. 내 인생의 목표가 직업이라면 그게 이루어지고 난 30대 이후는 뭘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목표는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가 되어야 한다. 존경스러운 사람이 되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한다. 존경스러운 의사, 존경스러운 선생님, 자신이 각자의 업의 본질을 다했다면 존경받고 성공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인생에 시, 낭만, 사랑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40,50대는 반드시 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러려면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이 필요하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뭘까? 일과 삶의 양면성을 보면서 성공도 고귀한 일이지만 실패가 가르쳐 준 인생의 낭만, 시, 사랑도 추구해보자. (짝짝짝. 모두 환호와 박수)

 

 

서하경(교유연극협동조합 재미사마대표)

 

2부의 시작은 유튜브 생중계 채팅창에 올라온 댓글 소개로 시작했다.

 

“노동은 신성하고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 아버지 얘기를 책으로 내고 싶었다. 50+에서 기회가 있었는데 하지 못했다. 정교수님 얘기 듣고 책을 못낸 건 그건 실패가 아니었다고 깨닫는다.”

 

정재찬 교수: 우리 세대는 표현에 대한 욕구가 많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요즘은 삶의 이야기가 시장에 많이 나오고 있고 많은 매체가 있다. 정식으로 멋지게 출간해야만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신춘문예만 있는 것도 아니니 일단 쓰자. 우리는 다른 세대가 흉내 내지 못하는 콘텐츠가 있다.

 

안은영(표현하는인생연구소 협동조합대표)

 

댓글에 이어 실패에 대한 본인의 사연을 안은영 님께서 소개해 주셨다. “강사님께서 아마추어에 대한 얘기를 하셨는데 제가 바로 그 아마추어 연극 늦둥이다. 3년 6개월 전에 난 중년의 실패자였다. 외국 생활 마치고 한국 돌아와서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었고 경력이 단절되었고 일상은 통증으로 전신이 아팠다. 경제적으로도 바닥. 인생 2막 준비? 1막도 못한 상태였다. 고국 땅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신감을 잃었고 신변비관이라는 말이 공감되는 순간이었다. 이때 떠오른 말. 나를 한 번만 더 믿어주자 라는 말이었다. 내가 제일 잘하고 즐거웠던 일이 무엇일까? 9살 때 동네 시장통에서 애들과 연극하던 게 떠올랐다. 이때 운명처럼 다가온 게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의 연극클래스였다. 거기서 지금의 협동조합 회원들을 만났다. 하다 보니 ‘피어나는 연극협동조합’ 개업식을 하고 ‘강 여사의 선택’이라는 연극을 쓰고 연출까지 하게 됐다. 참 별난 극단 B2S를 만들어서 5060 회원들과 함께하고 있다. 또 일 년 동안 치유하는 글쓰기 작업을 한 결과 생각지도 못했던 책이 나오게 되었다. 무모해 보이는 시도를 하다 보니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고 앞으로도 꿈을 꿀 수 있다. 시니어 전문 극단을 만들 것이다.”

 

유상모(루덴스쿱대표)

 

뒤이어 50+실패의 아이콘 유상모 님의 경험담이 계속되었다. “인생학교 동기들하고 루덴스협동조합 시작할 때 매우 기뻤다. 2017년 루덴스키친이라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조합원 68명이 조합비 백만 원씩 내면서 개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50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대로 연구하지 못한 게 실패의 원인이라 생각한다. 실패박람회를 제의받았을 때 설렜다. 누군가에게 나의 아픔을 보여주고 그걸 말할 기회가 있는 것,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것 자체가 나를 설레게 했다. 같이 망해본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 자리를 빌려 함께 해준 조합원들에게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서하경 사회자: 우리는 신중년 세대라고 불리는데 이 나이쯤 되면 객관적으로 규정되어야 하는 어떤 것. 뭔가 보여줘야 하는 게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러기에 준비가 안 되어 있지 않나?

 

정재찬 교수: 내 대학원은 시절 암담했다. 처음부터 공부하려던 게 아니었고 교사생활 4, 5년 하다가 공부를 시작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라는 책을 53살 때 냈다. 40대 중반에 준비했지만 두 장짜리 서문을 쓰는 데 6년이 걸렸다. 세상에 말을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50넘어서야 들었다.

 

 

정재찬 교수: 무엇을 시작할 때 공통의 증상이 대박을 꿈꾼다. 안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뜻대로 안 된다.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는 것을 반드시 승인해야 하고 그래야 성공하지 못했을 때 감사하는 맘이 생긴다. 안되면 될 일을 해라.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게 낫다. 서안나. 곡선의 힘.

 

남한산성을 내려오다 곡선으로 휘어진 길을 만나다/... 나는 곡선과 격렬하게 싸운다. 나를 붙잡으려 내가 쏟아진다./(중략)

 

원심력과 구심력 갈등관계. 내가 살려고 하는 관성에 집중하면 넘어지고 이탈하게 된다. 새로운 힘과 잘 적응해가면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잘나가던 직선에서는 몰랐던 나의 슬픈 배후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구비치는 강물이 바다에 이르는 것처럼 곡선으로부터 힘을 얻어 보면 어떨까? 모두에게 보편적인 교훈과 속담은 없다. 나에게 맞는 말은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카르페디엠(현재를 즐겨라. 때를 놓치지 마라) 메멘토모리(죽음을 잊지 마라. 왜 끝이 있으니까) 이 두 말은 같은 말일 수 있다. 내 인생에 끝이 있다는 걸 알면 시간이 귀한걸 알게 된다. 

 

 

모두 카르페디엠, 메멘토모리를 외치며 실패박람회 토크콘서트를 마쳤습니다. 이런 얘기를 조금 젊었을 때 들었다면 우리 인생이 달라졌을까요? 그때는 이런 말들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자잘한 실패들을 쌓아가면서 바다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더라도 나쁘지 않습니다.

삶이 우리를 속였을지라도 결국은 알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