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생학교 심화 2기 ‘오플장구’와 떠난 어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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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생학교 심화 동기들과 춘천여행을 했다. 정확히는 심화 2기 프로젝트 세 팀 중 ‘오플장구’ 워크숍에 따라나선 것이다. 50+세대 열두 명이 4대의 차에 나눠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차로 이동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가을처럼 푸르다. 춘천에 들어서기 바쁘게 그 유명한 닭갈비를 먹었다. 간판이 숫자로 시작하는, 춘천에서 제일 맛있는 집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뛰놀았을 운동장

 

우리가 간 곳은 2001년도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된 곳이다.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관광지도 아닌 이곳을 찾은 이유는 동기 중 한 사람의 지인이 폐교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데, 장소가 넓고 모임을 진행하기 좋아서 이곳으로 결정되었다.

 

폐교 운동장

 

폐교는 상상한 것보다 더 작았다. 이렇게 작은 학교도 있구나? 할 만큼 교실이 몇 칸 안 되는 단층의 작은 건물이었다. 신기했다. 주인의 인심을 말하듯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서자 지금은 보기 힘든 예전 물건과 미술 작품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주로 서양화였다. 인수한 지 얼마 안 되어 계획한 일들을 조금씩 진행 중이라고 했다.

 

드러난 흙 사이, 씩씩해 보여서 밟아도 덜 미안한 잡초인지 잔디인지 모를 풀이 듬성듬성 있는 것도 좋았고 미처 손닿지 못한 가장자리로 풀과 꽃이 함께 자라는, 예전에 운동장이었을 너른 공간도 좋았다. 차에서 내렸을 때 여기저기 피어있던 계란꽃으로 불리는 개망초가 많아 좋았고 낮은 폐교 앞뒤로 보이는 넓은 하늘이 푸르른 것도 좋았다. 도로에서 아래로 내려와야 보이는 폐교를 사방이 둘러싼 형태라 따스한 엄마의 자궁처럼 느껴진 것도 좋았고, 움푹 들어간 운동장을 서성일 때마다 뜻 모를 그리움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도 좋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괜히 나섰나?’ 했던 마음이 불현듯 떠올랐다.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들킨 듯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사실 하루 전만 해도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다. 장구팀도 아니었으니 자리가 남아 얹혀간 것이나 다름없다. 때마침 아이와 콩닥대고 마음이 복잡한 상태였다. 집에 있으면 더 나빠질 게 틀림없었다. 피하고 싶었다. 아이도 나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잘한 선택이라고 도닥이며 나선 길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주 잘한 일이었다. 한때는 마을 아이들의 작은 숨소리가 들렸을 교실을 둘러보는 동안 마음이 안정되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배낭을 내려놓고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녁에는 바비큐 파티를 했다. 오는 길에 장을 봐선지 음식이 푸짐했다. 고기를 양껏 먹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나중에는 집주인이 기르는 두 마리의 풍산개도 거들어야 했다. 직접 담근 된장을 풀어 끓인 된장국은 두부 몇 개 호박 몇 개에 파를 듬뿍 넣었을 뿐이었지만 세상 어느 요리보다 꿀맛이었다. 때로는 좋은 사람들과 먹는 한 끼의 밥이 최고의 기쁨인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가르치는 스승도 배우는 제자도 모두 심화 2기 동기다.

 

장구를 챙겨온 동기들이 있어 돌아가며 장구의 기본을 익힐 수 있었다. 잠시 배웠는데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장구를 치면 절로 체중이 줄 것 같았다. 한 번 해볼까? 자꾸 마음이 동했다. 역시 여행은 마음의 여유를 준다. 춘천에 있다는 사실이 집에서의 북적임을 잠시 잊게 해 주었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장구 연습을 위해 걸어둔 기본 가락이 인쇄된 현수막

 

별이 보인다는 말에 누구랄 것 없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나갔다. 커다랗게 빛나는 샛별 하나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밝게 보이던 샛별 하나가 “너였구나? 나야나” 하며 아는 체 하는 것 같았다. 불빛에서 좀 더 벗어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더 많은 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밤하늘 가득 보석이 박혔다. 누군가 한 줌 집어서 뿌린 것 같았다. 서울에서 볼 수 없던 북두칠성이 고개를 들 때마다 보였다. 그저 별을 본 것뿐인데 가슴 밑바닥에서 울컥하는 찌릿함이 올라왔다. “별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어느 영화 대사가 떠올랐다. 한동안 그렇게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저녁에 운동장에서 바라본 이제는 아이들이 떠난 학교

 

센스 있는 동기가 스파클라 폭죽을 꺼내더니 불을 붙여 뱅뱅 돌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폭죽을 손에 든 동기들이 까만 운동장을 콩콩 뛰기 시작했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아이가 된 어른들. 저마다의 기쁨이 환호성이 되어 까만 세상을 채우고 있었다.

 

남은 시간 동안 LP판이 있는 공간에서 영상을 띄우고 함께 음악을 들었다. 화면에 이십 대 초반이었을 소지섭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여배우가 있었다. 그저 예쁜 포즈를 취한 정지된 모습일 뿐인데 이상하게 슬펐다. 2년 전이었나? 롤링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믹 재거(Mick Jagger)가 앳된 모습으로 ‘As Tears Go By'를 부르던 초창기 영상을 보고난 후의 슬픔과 비슷했다. 청춘이 사라진 그들의 모습이 나인 듯해서 슬펐던 것 같다.

 

한쪽 벽을 장식한 오래된 영화 포스터

 

불쑥 떠난 여행인데 오래 계획한 여행보다 좋았다. 마음에 말을 걸듯 ‘둥둥’ 거리는 장구소리도 좋았다. 직접 키운 콩을 갈아 만든 콩국수의 고소한 맛도 기억난다. 춘천에 머무는 동안 장구를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장구에 대해 검색하고 있었다. 춘천에 다시 갈 땐 장구를 신명나게 두드릴 수 있을까? 아는 체 하며 반짝이던 샛별에게 ‘둥둥’ 하며 말을 걸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