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30년 차 수간호사, 최기문 간호과장 인터뷰

-

후배에게 존경받는 30년 차 수간호사

코로나19 방역 최일선, 최기문 구로성심병원 간호과장

환자 돌보며, 삶의 지혜도 배워

-

 

 최기문 간호과장, 그는 서울 구로구 ‘구로성심병원’ 수간호사다. 구로성심병원에서만 20년 근무했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출산·육아 휴직을 빼고도 지금 30년 차 간호사의 길을 걷고 있다. 병원 수간호사 중 최고참 수간호사다. 상사는 간호부장이 유일하다. 지난 9월 26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병원 5병동에서 만나, 간신히 인터뷰했다. 한 달 전부터 인터뷰하기로 했으나, 때가 때인지라 그는 여유가 없었다. 한 번은 인터뷰 약속 전날, 코로나19에 대한 업무 과중과 병원에 급한 환자가 생겨 인터뷰를 취소하기도 했다. 그만큼 귀하고 어려운 인터뷰였다.

 

 간호사는 입원 환자와 종일 24시간 같이 지낸다. 혈압, 맥박, 체온을 체크하고, 약을 주고 주사를 놓으며, 검사를 진행하는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입·퇴원 행정 사항을 돕는다. 24시간은 데이(Day), 이브닝(Evening), 나이트(Night)로 나눠, 3교대 근무한다. 간호사 달력에 ‘D, D, E, E, /, /’라고 적혀 있으면 이틀은 ‘데이’ 근무하고, 3일 차, 4일 차는 ‘이브닝’근무에 들어간 다음, 이틀 휴식한다는 근무 표이다.

 

 24시간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는 의사보다 환자의 심리적, 신체적 변화를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일일 회진 때 전날 환자의 정보를 주치의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 간호사의 역할이다. 수간호사는 병동의 책임자다. 수간호사 최기문 간호과장은 병동 전체의 환자를 돌보며, 특이 환자에 대한 조치와 간호 업무에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래서 이른 아침 출근 후, 간밤 환자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으면, 병실을 먼저 순회한다. 그리고 주치의가 아침 회진을 할 때 동행한다. 그가 맡은 5병동은 외과, 호흡기 내과 병동으로 평시 30~40명의 환자가 있으며, 수술 환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최기문 간호과장이 근무하는 병원 5병동, 5병동 알림판

 

환자 현황을 체크하는 최기문 간호과장

 

 오전 회진이 끝나면, 그는 1층 출입구 옆에 있는 코로나19 선별 진료소에 내려가 현황을 파악하고 지원 사항을 점검한다. 금년 초 ‘우한 폐렴’이 알려졌을 때, 그는 여름이 되기 전까지만 고생하면,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래갈지 몰랐다며, “우리 병원은 중소병원으로 발열, 호흡기계 질환 환자들의 1차 진료를 위해 선별 진료소를 운영하게 됐어요.”라고 했다.

 

 

근무 인수인계하면서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최기문 간호과장

 

올여름 선별 진료소에서 당직 근무 하는 모습

*그의 페이스 쉴드에 부착된 살색 밴드에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쓰여있다.

 

 그는 선별 진료소 당직 근무 경험을 들려줬다. 방호복을 먼저 착용하고 장갑, 마스크, ‘페이스 쉴드’도 갖추고 근무에 임하지만, “내가 검사한 사람이 양성으로 나오면, 정말이지 겁이 덜컥 나요.”라고 했다. 자신이 감염되면 병원 전체의 진료가 중단되고, 또 가족은 격리되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게 되므로, 양성 반응은 최악의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가 걱정되어 검사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다며, 웃었다. 동시에 나는, 내가 마스크를 정확히 착용했는지, 손으로 확인하고 따라서 웃었다. 초기에는 코로나19 방역에 투입되어야 할 인력이 모자랐다며, 체력이 뒤따르지 않아 힘들었다고 했다.

 

 그에게 어떤 동기로 간호사가 되기로 했는지 물었다. “저는 4녀 1남중 셋째 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많이 도와드리면서 남들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 보였나 봐요. 언니들이 간호사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해서 간호대학을 갔죠.”라면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보람도 많았고요, 이 길을 후회하지 않아요.” 그래서 힘들었을 때와 보람이 있었던 일을 이어 물어보았다.

 

 “점차 병원 내 민원 건수가 늘어나는 추세예요. 환자 권리가 높아지고, 목소리도 커진 거죠. 그러다 보니 ‘진상 환자’라고 말하면, 환자의 말을 들으려고도 안 하는 경향이 있어요. 간혹 지나친 요구를 하는 환자도 있지만, 귀를 기울이면 대화로 풀릴 수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경험이 부족한 간호사들은 잘 대처를 못 해요. 이럴 때 제가 나설 수밖에 없지요.” 병원에서는 환자 민원처리와 환자 응대에 대비한 간호사 교육이 지속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그는 교육 때 환자를 먼저 이해하려는 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그리고 “기억나는 환자가 있었어요. 보통 퇴원할 때 누구나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리고 병원 문을 나서면 그만인데, 그분은 달랐어요. 그분의 부친께서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다 우리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식이 끝나자, 떡을 해서 다시 찾아오셨어요. 살아계셨을 때 정성으로 돌봐주시고, 마지막도 잘 모실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시면서요.” 화내는 환자도 많지만, 건강을 되찾고 환하게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할 때 가장 기쁘다는 그는, 그럴 때 자신이 간호사라는 게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후배 간호사들에게 “흔히 말하는 진상 환자가 있더라도, 내 가족이고 내 부모라고 생각하자.”라고 말한다. 그와 오랫동안 생활한 후배 간호사는 그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선물했다. 아마 존경의 표시와 닮고 싶은 롤 모델로 여겼던 것 같다.

 

 

후배 간호사가 선물로 만들어 준 미니어처와 최기문 간호과장(사진 촬영 요청으로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방문 환자의 혈당을 체크하고 있다(코로나19 상황 이전 간호 모습).

 

 코로나19 때문에 본업 이외에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최기문 간호과장은 종종 무력감을 느낀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진료 일선에 있는 의료인도 단순한 일상들이 연속되면 무기력해진다. 더욱이, 병원에서는 잠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힘들더라도 아직은 긴장을 풀지 말고 좀 더 버티자고 말한다. 만약 시기적으로 환절기에 독감에 걸리면, 발열 때문에 독감에 코로나 검사까지 해야 할 판이니, 걱정이 앞선다고 덧붙였다.

 

 요즘 그가 반복적인 일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을 하고 있다. 그것은 ‘마이너스 집안 정리’이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내놓는 거예요. 그동안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 그걸 사느라 돈과 시간을 썼는데, 정말 쓸데없는데 ‘투자를 많이 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불필요한 물건들을 나눠주고, 버리니 집안이 넓어지고, 가벼워졌어요. 50대부터는 하나를 사면, 반드시 하나를 버리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워킹 우먼에게 ‘집’은 또 다른 직장이라고 그는 말한다. “퇴근하면 휴식이 아니라 또 다른 직장으로 출근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가정이라는 직장은 무겁거나 번잡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미니멀 라이프’가 코로나를 이겨나가는데, 조금은 힘을 덜어준 듯하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최기문 간호과장은 전화를 받았다. 간호사 중 한 명이 휴가를 나가면서 근무 일정을 조정하는 것 같다. 문득 생각이 나는 질문이 있었다. 언제부터 간호사 복장이 바뀌었는지 물었다. “중년 세대들이 알고 있는 간호사의 하얀 캡과 복장은 나이팅게일을 상징하는 의복이지만, 실제 환자를 돌보기에 많이 불편해요, 2000년 초반에 바뀐 것 같아요. 캡에 검정 줄이 없으면 실습 간호사, 줄이 있으면 정식 간호사”라고 말을 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간호사 직업은 과거처럼 헌신하고 희생의 덕목을 존중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직업의 하나로 선택해요. 그래서 퇴직이 아주 자유로워요. 어떤 이는 장기간 해외여행을 준비했다면서 그만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중소병원은 간호 인력 운영이 참 어렵습니다. 대학병원은 대기 간호사가 많아요. 우리처럼 중소병원은 신입 직원을 채용하기도 힘들어요.”

 

 30년 차 간호사 최기문 간호과장은 지금까지 직장이 있고,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응급실에 구급차가 도착하고, 의료진들이 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마운 일상인지 몰라요. 매일매일 별일 없이 지낸다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병원’이라는 직장과 ‘가정’이라는 2개의 직장에서 늘 감사하게 지내고, 자신의 삶에 ‘만족’이라는 점수를 주고 있는 그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