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과 석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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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흥선대원군에 관해 관심이 생겼다. 그를 빼놓고 근대사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인물을 알기 위해서는 관련 장소를 살펴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여겨 석파정부터 방문했다.

 

석파정은 부암동에 있는 별서 정원이다. 부암동은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 있고 멀리 북한산이 보이는 곳이다. 계곡과 숲이 울창하다. 근처에 백석동천, 윤웅렬 별장, 안평대군의 무계정사 등 멋진 정원이 모여 있다. 별서는 휴양을 위하여 경치 좋은 터전을 골라 집과 별도로 마련한 건축물로, 자연을 즐기기 위해 만든 제2의 주택이다. 정원은 현실에서 잠시 물러나 다시 도약하기 위한 장소, 학문과 수양을 위한 장소로 활용된다.

 

천세송(옆 건물이 사랑채이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통해 석파정에 들어가면 오른쪽에 천세송이 눈에 띈다. 수령 600여 년의 소나무가 멋진 모습으로 서 있다. 이름과 같이 천년을 살아남을 것 같다.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이 사랑채로 안채, 별채와 연결되어 있다. 안채에서 화계를 거쳐 별채로 간다. 별채는 고종이 하루를 보낸 곳이다. 사랑채 옆에 있던 별당은 현재 한정식집 석파랑의 부속건물로 이용되고 있다. 완전한 석파정을 보기 위해서는 석파랑까지 가 보는 것이 좋다.

 

안채(둥근 문 뒤 화계를 통해 별채와 연결된다)

 

천세송 뒤에 3곳의 계곡물이 흘러드는 곳이라는 뜻의 삼계동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어 과거에 물이 풍부하게 흐른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별채 (고종이 묵은 왼쪽 방에 고종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위로 올라가면 제일 높은 곳에 웅장한 바위가 보인다. 너럭바위이다. 코끼리처럼 보인다고 코끼리 바위, 소원을 비는 곳이라 소원바위라고 불린다.

 

삼계동

너럭바위

 

물을 품은 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오면 이국적인 정자가 보인다. 석파정이다. 청나라와 조선의 건축기법이 혼합된 정자이다. 내부에 마루나 방이 없고 난간만 있다. 4모지붕에 기와를 씌우지 않았다.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누각에서 단풍을 감상하니 마음이 절로 평온해졌다.

 

석파정(유수성중관풍루: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

 

길을 따라 내려오면 ‘물이 깃들이고 구름 발을 드리운 집’라는 뜻의 소수운렴암이 나타난다. 바위를 올라가면 신라 시대 3층 석탑이 반겨준다. 석파정과 조화를 이룬다. 2012년 경주에서 이전했다.

 

소수운렴암(바로 뒤에 3층 석탑이 보인다)

3층 석탑

 

입구에서 시작하여 천세송부터 신라 시대 3층 석탑까지 보면 스탬프에 찍힌 곳은 다 관람한 셈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 길을 천천히 걸으며 자연을 감상해 보라. 석파정의 모든 시설은 아름다운 풍경을 음미하기 위한 창이다. 특히 봄, 가을 경치가 황홀하다. 비 오는 날 운치도 그만이다. 바위와 물이 잘 어울린다. 눈 내리는 날 경치도 놓칠 수 없다. 울적하고 세상이 내 맘과 다르게 흘러간다고 느껴질 때 오면 치유를 받는다. 전반적으로 모든 시설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그 당시 상류사회에서 화려한 청나라 양식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왕조 마지막을 예감한 반응이 아니었을까.

 

석파정 유래

조선 숙종 때 문신 조정만이 만든 별장 소운암을,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이 개조하여 삼계동 정자를 지었다. 고종이 즉위하자 흥선대원군이 김흥근에게 팔라고 요청하였지만 거부하였다. 대원군이 자신의 아들 고종을 별채에 묵게 하자, 결국 김흥근은 대원군에게 이곳을 헌납하였다. 대원군이 왕이 거처한 곳은 신하가 사용할 수 없다는 관례를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흥근은 대원군 야인시기에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김흥근이 대원군의 섭정을 공개적으로 반대하자 사이가 틀어졌다. 보복조치로 삼계동 정사를 인수한 게 아닐까?

 

대원군은 이곳을 바위와 언덕이 많은 곳이라 석파정이라 부르고 자신의 호를 석파라 정했다. 향후 그의 행보가 바위처럼 너무 강직하고 유연하지 못해 자신과 조선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안타깝다. 별당에서 대원군은 서예와 난초를 그리며 지친 심신을 충전하였다. 석파정은 왕실 후손에게 대물림되다 6.25전쟁때는 콜롬비아 고아원과 병원으로 사용됐다. 현재 개인소유가 되어 서울미술관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인간은 거쳐 갈 뿐이다. 소유자는 바뀌어도 자연은 변하지 않고 맞아준다. 멀리 가지 않아도 부암동에서 시대를 초월한 자연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깊어가는 가을에 무계정사, 백석동천, 석파정, 서울미술관, 석파랑, 세검정 등을 돌아보는 부암동여행은 내적 충만을 얻을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