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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에 착한 영화 한 편 보기

 

맹렬했던 더위가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성큼 다가온 가을 분위기가 세상 분위기를 또 다른 색감으로 물들이고 있다. 가을 들판으로 나가보면 뿌듯한 결실이 눈앞에 있고 하늘의 구름도 이쁘다. 이럴 때 좋은 친구를 만나 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좋은 계절을 나누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착한 영화 한 편 보고 싶어서 안방 TV의 VOD 서비스에 약간의 비용을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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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스틸컷

 

고양이 여행 리포트 (旅猫リポート, The Travelling Cat Chronicles, 2018)

영화 전편에 흐르는 색감이 환하고 밝아서 좋다. 푸른 바다 빛, 노란 유채밭, 다정한 미소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종일관 이어진다. 시끄럽거나 자극적인 화면이 아니어서 안심이다. 일본스러운 신파가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은 했지만, 그 또한 어느 정도 기대를 했다. 물론 기대 충족은 되었다. 또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미묘한 복선이 깔리는 알쏭달쏭한 내용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이런 밍밍한 듯 편안함이 끝까지 이어져 가길 바라면서 영화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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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스틸컷

 

고양이와 사람 간의 이야기이기에 초반에는 상투적일 수 있다는 예상은 했다. 우리도 ‘돌아온 백구’나  ‘오수의 개’와 같은 동물과 의리 있는 감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있듯이. 하지만 그런 줄거리가 뭐 그리 중요한가.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따뜻함이나 위안 또는 카타르시스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예전에는 동물을 키운다면 개와 고양이가 거의 전부였는데 이제는 새, 도마뱀, 토끼나 미니 돼지는 물론이고 북극여우,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와 같은 곤충들까지 희귀 애완동물로 함께 하는 걸 쉽게 본다. 사실 요즘 동물을 키우는 이들에게 애완동물이라는 말은 심하게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것도 사실이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동물은 더 이상 옆에 두고 즐거움을 누리는 존재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의지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라는 것이다.

 

또한 동물의 생명권을 지키려는 이들의 연대활동이 활발해서 길고양이들의 생존을 걱정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길고양이도 보호되어야 할 소중한 생명체로 존중과 아량을 베푸는 일은 이제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자동차 트렁크 안에 개와 고양이 사료를 싣고 다닌다. 다니다가 혹시라도 굶주린 듯한 고양이나 개를 보면 내려서 먹이를 주고 물을 떠다 주는 등의 극진한 동물 사랑을 보기도 한다. 동물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부드러워지고 함께 공존하는 일상으로 나아가는 추세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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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 VOD 화면 촬영

 

나는 고양이다. 이 영화의 첫 말이다.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에는 주인공 사토루가 키우는 나나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또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꼬리가 7자 모양으로 휜 모습이라 지어준 나나라는 이름이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하치 이야기’라는 개가 주인공이었던 일본 영화가 있었다. 이때도 강아지가 우뚝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八자와 같다고 하여 ‘하치’라 이름 붙였다는 내용이었다. 이름 지을 때 숫자를 연상하는 건 일본의 특징인 건지. 암튼 시작부터 사토루의 반려동물인 나나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릴 적 부모를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잃은 사토루에게 다가온 고양이 나나, 여기서는 도도하고 똑똑한 길냥이 나나에게 간택된 순수 청년 사토루가 끝까지 동행한다. 그렇게 사토루와 가족으로 지내오던 나나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할 사정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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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고양이 나나의 시점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의 찰떡같은 목소리 연기로 나나의 내레이션이 진행되어 재미를 주기도 한다. 이제부터 사토루와 나나의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어린 시절의 친구, 고등학교 때의 첫사랑, 시골에 사는 순박한 친구, 부모님을 잃은 사토루를 키워준 이모… 누구 하나 거부하지 않고 나나를 맡아주려는 좋은 친구들도 있고 인생을 함께해 준 반려묘 덕분에 애잔하지만 행복했던 사토루의 마지막 모습은 따뜻하다. 덤으로 보여주는 일본인들의 일상 모습과 일본 전역의 멋진 자연 풍광은 힐링을 선물한다. 

 

둘만의 이별 여행을 하면서 나나를 안고 후지산을 바라보는 사토루의 애틋한 뒷모습, 유채밭의 노란 물결 속에서 나누는 둘만의 소중한 존재감은 뭉클하다. 클로즈업되는 고양이 눈동자의 감정선이 명연기를 불러온다. 결국 나나를 키워줄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둘은 다시 함께하기로 한다. 그러나 사토루에게 예정된 죽음이 다가온다. 병색이 완연한 사토루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주변을 맴돌던 나나는 단순히 사람이 키우는 애완동물이 아닌 동반자 관계였다.

 

“내 마지막 고양이가 너여서 참 좋았어.”

푸른 수국에 내리던 비가 그치고 바다 건너편으로 일곱 빛깔 무지개가 떠오른다. 사토루와 나나의 아름다운 관계처럼.

 

 

50+시민기자단 이현숙 기자 (newtree1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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