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매혹시킨 인왕산 숲길, 그곳에서 만난 인왕제색도

  

지난 가을, 몇 년 만에 친구를 만나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이 좋은날을 실내에서만 보낼 수 없다며 함께 산책에 나섰다.

원래는 인왕산성곽길이 목표였지만 시간이 늦어 자락길이라도 걸어보자는 심산으로 길을 잡았다. ‘인왕산숲길’이라는 표석으로 시작된 길에서 나는, 상상도 못할 만큼 수려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인왕산을 만날 수 있었다.

 

‘인왕산숲길’을 10분 남짓 걸으면 정선(鄭敾, 1676~1759)과 인왕제색도를 설명하는 나무 간판이 나타난다. 수성동 계곡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풍경이 사뭇 달라진다. 계속되던 숲길은 사라지고 갑자기 너른 바위가 나타나고 산 정상을 바라보면 거대한 바위가 늠름하게 솟아 있다. 겸재 정선이 1751년 그렸다는 인왕제색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물기를 머금은 듯 검은 빛을 띤 산봉우리와 바위들, 바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작은 폭포, 그림 한켠의 커다란 기와집을 둘러싸고 구름인지

안개인지가 머물고 있다. 그 집에는 정선의 60년 지기인 이병연이 살고 있었다. 인왕제색도는 정선이 일흔여섯에 오랜 벗인 이병연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를 알고 난 뒤에 인왕제색도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선의 마음이 내게 전해진 듯 애잔한 느낌이 들었다.

 

 

수성동계곡으로 나가 정선의 그림에 나오는 기린교 근처로 다가가자 거대한 바위틈으로 꽤 많은 양의 물이 흘러내린다. 물은 큰 바위 틈에서 아래로 쏟아지는데

그 울림이 웅장하고 활기차다. 수량에 비해 물소리가 큰 것은 바위틈으로 물이 쏟아져 내리면서 그 소리가 증폭되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 조상들이 왜 그곳에

물소리라는 의미의 수성(水聲)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이해가가는 순간이었다.

 

 

 

수성동계곡은 청계천의 발원지이다. 청계천 발원지라는 팻말을 지나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이중섭의 ‘황소’ 그림을 만날 수 있다. 가난 때문에 가족을 일본으로 보낸 이중섭은 인왕산 근처에서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중섭의 그림이 지금처럼 가치를 인정받고 비싼 값에 팔렸더라면 그가 가족과

떨어져 쓸쓸한 죽음을 맞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어 인왕산숲길의 해맞이동산에 이르면 눈앞이 확 트이는 전망대가 있다. 그곳에 서면 남산이 눈앞에 보이고 날이 맑은 날이면 멀리 잠실의 롯데타워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 높지 않은 산등성이에서 서울을 그렇게 조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인왕산의 상징인 호랑이 표지에 다다르면, 대금 명인 정약대가 인왕산에 올라 대금을 연습했다는 장소가 나온다. 설명표지판에 인쇄된 QR 코드를 찍어 인터넷에

연결하면 대금곡도 들을 수 있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화장실 옆길로 들어서면 청운동 문학도서관이 있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윤동주문학관이 나온다. 꽃담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은 한옥으로 지어져 운치를 더한다. 널따란 마루에 앉아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 예약하면 공간이용도 가능하다. 한옥도서관을 둘러보고 오른쪽 계단을 올라 시인의 언덕을 지나면

윤동주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어느덧 숲길 산책이 끝났다. 나는 이번 산책길에서 또 많은 것을 배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 산에 갈 때면 잎이 아카시아처럼 생긴 키 작은 나무들이

궁금해서 이번 길에 동행해한 ‘숲 해설가’에게 물었더니 싸리나무라 한다. “이것이 빗자루 만들고 회초리로 쓰던 그 싸리냐?”고 거듭 확인했더니 그렇다 한다.

시골 출신인 내가 이 나이되도록 싸리나무를 몰랐다니 참으로 허무했다. 그래서 공자님이 말씀하셨나 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사랑한다고 했던가? 이번 숲길 여행을 통해 나는 더욱더 인왕산을 사랑하게 되었다. 인왕산숲길은 길도 그리 가파르지 않고 거리도 짧으니 많은 50+들도 가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