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에는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개관기념 마지막 특강으로
연세대 조한혜정 명예교수의 <돈, 집, 마을, 나의 재구성>이란 주제의 강연이 진행됐다.
조한 교수는 자신을 문화인류학자로 소개하면서
“전환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할까?”에 대해 강연을 시작했다.
지금이 신자유주의가 한계를 드러내는 ‘전환의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시간이었다.

 

 

 

전환의 시대에 맞이한 위기들

 

조한교수는 인류가 사냥꾼에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발전하며 살아온 과정에서 쓰레기 더미가 쌓여왔고 우리는 그 위에서 물질과 돈이 최고인 세상을 만들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강의를 시작했다.

2008년 월가 파동,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2016년 기후변화 파리협약의 지지부진한 이행, 일본 평화 헌법 개정 반대 시위, 영국의 브렉시트,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인터스텔라의 영화 이야기까지 최근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위기의 사례를 들며 그동안 우리가 과학주의와 물질적 축적을 진보로만 알고 앞만 보고 달려 왔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설국열차’에서처럼 한쪽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이 발생하고, 식량난 등이 점점 심각해지는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으며 국민은 국가를 믿었지만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

우리나라의 경우 제국에 의한 근대화,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 장기집권 독재시대를 거쳐 민주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얻었다. 그러나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선망국’이 될 처지가 되었다.
특히 수많은 사건 사고에 대한 국가의 대응을 보면서 국민은 언제든지 버려 질 수 있다는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과연 국민이 국가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에 국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이중 위험사회

 

조한 교수는 이러한 사회를 ‘이중 위험사회’ 또는 ‘이중 위험국가’라는 말로 설명했다. ‘위험사회’는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사용한 용어로 ‘근대 산업사회가 필연적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파괴의 단계에 이른 사회’를 의미한다. 계속 생겨나는 ‘위험’을 ‘성장’으로 더 이상 가릴 수 없는 사회라는 의미로 경제성장 중심의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다.

1789년 파리에서, 1990년 서울에서 근대시민들이 출현하기 전 까지는 “자신의 사적인 경험을 자기만의 고통으로만 말할 줄 알지 남들도 들어줄만한 공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언어로 전환해내진 못한다.(엄기호/단속사회)”로 표현되는 상황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의 외환위기로 경제가 휘청거리자 명문대학교에서도 신입생 모집광고를 내야 했으며, 산업의 자동화로 인한 청년 실업문제와 88만원짜리 청년들의 삶이 문제가 되었다. 급기야 2010년에는 ‘오늘 저는 대학을 그만 둡니다’라는 대학생 1인 시위가 있었고, 2013년에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학생의 대자보가 붙여졌으며 ‘청년, 난민 되다’라는 책까지 나왔다.

조한 교수는 이제는 근대 자본주의를 낯설게 볼 시점이라며 지금은 모든 것이 발전/진보할 것이라는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가 주던 믿음이 *파상(破像)되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 파상 : 김홍중 교수가 발터 벤야민의 연구 방법론에서 착상을 얻은 개념으로, 기왕의 가치와 열망의 체계들이 충격적으로 와해되는 체험

 

조한 교수는 김홍중 교수의 이론을 인용하여 우리 사회는 여러 차원에서 집합적 파상을 체험하고 있다며 신자유주의적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 민주주의의 후퇴, 지배카르텔의 무능과 부패, 삶의 안전을 위협하는 각종 재난과 사건들, 사회적인 것들의 모든 경계들(계급, 세대, 지역, 젠더, 종교)을 가로지르며 분출되는 혐오 등을 들었다.

 

모든 애벌레들이 나뭇잎을 먹기만 하면 종국에는 나무도, 애벌레도 죽게 된다. 나비로 탈바꿈하여 꿀을 먹어야 애벌레도, 나무도 살 수 있다는 것. 이중 위험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제는 시민들이 ‘해방적 파국’이라 할 만큼의 탈바꿈이 필요한 때다.

 

 

나누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다. Living is sharing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야 할까? 조한 교수는 우리 사회는 지속 가능한 소통과 돌봄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느린 시간, 멈추어 있을 장소, 느슨하나 지속적 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수세기 동안 우리는 독립을 선언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 의지하자고 선언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티파니 쉴레인의 말을 인용하며, 고양된 만남이 가능한 시간과 장소가 중요하다고 했다. 조한 교수는 또 이제는 개인적인 자유보다는 함께 자유로운 ‘사회적인 자유’가 있어야 한다며 ‘하자센터’에서 주최하는 ‘난감모임’을 소개했다. ‘난감모임’은 각자가 처한 난감함을 얘기하는 모임이다. 이 자리에서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말하지 않도록 한다. ‘난감함’만을 얘기하여 상황을 인식을 하고 의논하는 연습을 철저히 한다. 이렇게 하면 공감과 합의의 과정을 통해 서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과 사람을 이해하는 시각으로 보는 게 좋다고도 했다. 아이들과 자손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시각이 필요하다며 층간 소음으로 살인을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은 사람이 서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좋은 사회는 신뢰의 사회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는 마을에서 의제를 만들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안적인 사회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여러 시도를 소개했다. 놀이터에서부터 대학까지 이어지는 학습생태계의 전환을 위해 노력하는 오디세이 학교, 에너지 절약을 모색하는 에너지제로 전환하우스, 놀이와 일은 하나라는 노리단, 건강한 먹거리 나눔 공동체 콩세알, 토종씨앗 도서관 등이 우리 주변에서 이뤄지고 있는 시도들이다.

 

 

대의 민주제를 넘어서는 거버넌스

 

소규모 공동체 단위의 노력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변화와 혁신도 필요하다. 특히 새로운 경제와 정치를 위한 질문과 실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과 시민배당의 제도화에 대해 복지가 아닌 권리로 접근해야 한다. ‘1인1 투표제’는 ‘1인 1주 시민 배당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 얘기와 함께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도 강조했다. 특히 1만 여명의 시민이 서명한 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처리하게 하는 식으로 국회의 입법 활동에도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과는 ‘다른 사회’가 필요함을 역설한 조한혜정 교수.
그는 격변의 시기를 맞은 우리사회가 한 단계 진전되길 바라는 기대와 함께 강의를 마쳤다.

 

 

 

/ 이계복 50+모더레이터 · 사진/ 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