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여가·건강·가족관계

 

 

송양민 (가천대학교 헬스케어경영학과 교수)

 

인생의 후반부를 즐겁게 지내려면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취미·여가생활이 활발해야 장수의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건강관리를 잘못하여 골골거리면 삶의 질이 뚝 떨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소중해지는 것은 가족이다.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도 배우자와 자녀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면 인생에서는 실패한 사람이 된다. 또 좋은 친구는 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윤활유와 같다. 친구가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오래 산다.

 

 

인생의 후반전이 중요하다

 

축구 경기에는 ‘하프타임(halftime)이 있다. 전반전을 뛴 선수들이 휴식을 가지면서 후반을 어떻게 뛸 것인지 작전을 협의하는 시간이다. 전반전에 밀리던 팀이 하프타임 후에 새로운 팀으로 변신해 경기를 뒤집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본다. 그래서 축구 경기는 전반전이 아니라 후반전에서 판가름 난다는 말이 있다.

 

평생을 달려가야 하는 인생 마라톤에도 하프타임이 있다. 현 시점에서 우리 한국인들의 기대수명을 90세로 본다면 50~60세 전후가 거기에 해당될 것이다. 인생도 축구경기에 비유해볼 수 있다. 50세 이전 시기를 인생의 전반전(前半戰)이라 한다면, 이후는 인생의 후반전(後半戰)에 해당된다. 하프타임에 전반전에서 저지른 실수를 되짚어보고 새 기술을 연마한 사람은 후반전에서 ‘인생 역전’을 노려볼 수 있다. 반대로 하프타임을 잘못 보낸 사람은 후반전에서도 부진할 수밖에 없다.

 

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 교수는 95세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현역으로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그가 93세 때 신문기자로부터 "당신은 평생 7개가 넘은 직업을 가졌는데 언제가 인생의 전성기였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드러커 교수는 곰곰이 생각하다 "나의 전성기는 열심히 저술활동을 하던 60대 후반이었다"고 대답했다 한다.

 

드러커 교수의 사례를 보면, 인생의 전반부만 살펴보고 성패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수명 100세 시대에서 ‘이모작’, ‘삼모작’ 인생을 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장수노인이 많은 선진국들은 이미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인생의 후반부를 멋지게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돈을 얘기하지만, 돈만으로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은퇴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행복한 은퇴생활은 활기찬 삶(active aging)을 살아가고, 원만한 가족 및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데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여가(예술·스포츠) 활동 시간을 늘리자.

 

활기찬 삶을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취미·여가 생활이 활발해야 한다. 인간의 노화(老化, aging) 과정은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새로운 자극을 통해 계속 기어를 넣으면 심신이 건강하게 유지되지만, 기어를 중립에 놓아두는 사람은 급속도로 늙는다. 따라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인생의 발전을 끊임없이 이끌어낼 수 있는 취미·여가 생활은 은퇴계획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한국인들은 전반적으로 취미여가 활동이 부진하다. 특히 은퇴자들에게 취미를 물어보면 대부분 등산이라고 말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쉽게 할 수 있고, 돈도 별로 안 들어간다는 장점 때문이다. 등산을 하지 않는 사람은, 집 근처를 산책하는 게 고작이다. 등산이나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TV를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문화체육관광부 국민여가활동조사, 베이비부머여가활동 조사 참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단조로운 생활이다.

 

2014년 국민 여가활동 순위

 

 

한국의 중장년층들은 대체로 직장을 위주로 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직장을 떠나면 ‘외딴섬’에 갇힌 것처럼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끊어지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다. 이런 때일수록 취미‧여가활동을 통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잘 유지해야 한다. 취미 여가활동이 부진해서 은퇴생활의 재미가 없다보니, 노년기의 삶의 만족도가 뚝 떨어지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건대, 은퇴 후 인생을 풍요롭게 즐기는 데는 예술 활동과 스포츠 활동이 최고다. 미술, 음악, 사진, 문화재 등 은퇴자들이 즐길 만한 예술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예술과는 다소 다르지만,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것(gardening)도 좋은 소일거리다. 아내와 함께 사교댄스를 배우거나, 친구들과 탁구 축구 야구 등 구기(球技) 스포츠를 즐기는 것도 노년의 행복감을 증진시킬 수 있다.

 

백화점 문화센터와 구청 문화센터들은 은퇴자들과 가정주부들을 위한 다양한 취미생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색소폰과 클라리넷 같은 악기를 다루는 법, 서양화와 동양화 그리는 법, 클래식 음악 감상법 강의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해 예술과 문화 활동의 묘미(妙味)를 알게 되면 노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예술 활동을 즐기려면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그림 2> 베이비부머 여가활동 상위 4개 유형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박물관은 관람료가 거의 무료이고, 고궁 입장료도 저렴하다. 민간 미술관과 공공 예술회관 가운데서도 입장료가 싼 곳이 많다.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에서는 입장료를 5000원~1만원으로 대폭 낮춘 대중 음악회를 주기적으로 개최한다. 큰 비용을 쓰지 않고도 예술 활동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술을 즐기는 데는 별다른 비결이 없다. 전문가들은 ?많이 가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최고?라는 말을 자주 한다. 많이 보고 들으면 어느 순간에 느낌이 오고, 언젠가는 깊은 안목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평생학습도 훌륭한 취미·여가 활동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 용량은 아주 커서 평생 동안 절반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 노년기의 학습활동은 뇌를 자극하기 때문에 치매를 예방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의사들이 고령자들에게 외국어를 배우거나 악기 연주법을 배우도록 권하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령자들이 큰 부담 없이 다닐 만한 평생학습기관으로는 대학들이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이 있다. 시청과 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원도 좋다. 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문화원은 시설도 좋을 뿐만 아니라 고령자들을 위한 교양 프로그램을 많이 갖추고 있다. 또 문화원은 대부분 도서실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자기 공부를 할 수 있다.

 

 

노년의 고독을 피하려면 가족을 챙겨라

 

은퇴설계는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재무적인 준비’와 돈 이외의 문제(여가활동과 건강관리, 가족·친구 관계, 주거계획 등)에 대비하는 ‘비재무적인 준비’ 2가지로 크게 나뉜다. 비재무적인 준비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취약한 분야가 바로 가족관계이다. 우리나라 은퇴자들이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고통 중의 하나가 바로 고독(孤獨)이라는 병이다.

 

은퇴자들의 인간관계가 원활하지 않는 이유는 3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학연, 지연과 같은 기본적인 네트워크가 은퇴 후엔 점차 힘을 잃어간다는 점이다. 젊었을 때는 이런 네트워크가 위력을 발휘하지만, 나이가 들어 서로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면 영향력이 줄어든다. 그 대신 이웃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지게 된다. 그런데 한국 은퇴자들은 좋은 이웃관계를 형성하는 게 너무 서툰 모습을 보인다.

 

두 번째로는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은퇴 전과 은퇴 후에 크게 변화한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부부관계가 크게 변화하며, 친구들과의 관계 역시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이런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현역 시절처럼 아무렇게 행동하는 은퇴자들이 많다. 은퇴 후엔 생활의 중심이 일터에서 가정과 이웃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하고,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그림 3> 우리나라 50대 부부의 가사분담 실태

 

인간관계 중에서도 특히 시간을 가장 많이 함께 보내는 배우자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의 부부관계 만족도를 조사(보건사회연구원)한 결과에 따르면, ‘대충 만족하고 산다’는 부부들의 비중이 무려 62%에 달했다.

 

왜 우리나라 장년층 부부들은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대체로 남자 탓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온 남편들은, 은퇴 후 집에서 쉬면서 갑자기 무기력증에 빠지거나 아내와 자녀들과 자주 마찰을 빚는다. ‘은퇴남편 증후군(Retired Husband Syndrome)’이라는 것인데, 인생의 보람을 잃은 데서 생긴 병이다.

 

이렇게 살면 가족관계에 점차 틈이 생기게 된다. 은퇴 후, 남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자기의 역할을 빨리 되찾는 것이다. 생활비를 벌어다주는 전통적 가장이 아니라, 아내의 멋진 친구로서, 자녀들의 멋진 아버지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되찾는 것이다. 이런 노력은 ‘머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행동’의 변화를 통해 실천해나가야 한다.

 

우선 가장의 권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아침에 커피도 끓여 먹고, 집안 청소도 하고, 간식도 만들어 먹는다. 때때로 직접 요리를 하여 아내와 아이들을 기쁘게도 해 본다. 은퇴 전엔 아내에게 대부분 맡겨두었던 가사(家事) 일을 적극적으로 분담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 아내와 자주 산보를 하고, 노년 주거계획과 건강관리, 취미여가활동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보면 소원했던 부부관계가 회복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워지는 것이 친구들이다. 오래 살다보면 배우자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개인적인 고민과 비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로울 때 전화를 걸면 언제든지 달려와 놀아줄 수 있는 친구 4명만 가지면 성공한 삶을 살았다는 말을 듣는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런 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생의 정취가 풍성해지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이다.

 

서울의대 박상철 명예교수가 발표한 ‘한국 장수인 연구보고서’를 보면, 친구를 잘 사귀고 솔직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대체로 오래 살고 100세까지 장수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은퇴자들의 경우 집에만 머무르지 말고 밖에 많이 나가 친구를 적극적으로 사귀라는 얘기다. 친구 수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 오래 산다는 의학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Living Longer가 아니라 Living Better

 

사람들은 오래 살기를 꿈꾼다. 실제로 생활수준의 향상과 의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수명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러나 오래 산다고 다 행복해지는 것일까. 몸이 불편해 침대에 누어서 보내야 한다면, 또 노후에 소일거리를 찾지 못해 집에서 하루 종일 TV를 바라보며 지낸다면 그것이 행복한 삶일까. 긍정적인 장수(長壽)는 본인의 만족도도 높고, 가족 들을 기쁘게 하지만, 부정적인 장수는 개인도 고통스럽고, 가족들도 어렵게 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living longer)’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living better)’이다. 일본은 세계 최장수국으로 꼽히지만 병원에서 지내는 노인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3500만 명을 넘어선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5%인 180여만 명이 치매와 여러 노인병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꼼짝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이 같은 상황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

 

<그림 4> 2015년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기대여명

 

 

일반적으로 어떤 나라의 국민이 건강한가를 따질 때 평균수명을 자주 비교한다. 그러나 평균수명으로는 삶의 질의 변화를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오래 산다는 것이 반드시 건강한 삶(healthy life)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 ‘건강수명(health expectancy)’이다. 평균수명이 ‘사람이 태어나서 그냥 생존하는 기간’을 가리킨다면, 건강수명은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상태로 살아가는 기간’을 말한다.

 

WHO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2.1세(2015년 기준), 건강수명은 73.2세이다. 건강수명이 평균수명보다 9년 더 작은 것이다. 한국인의 삶이 앞으로 건강해지려면 평균수명과 건강수명 간의 격차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이 격차가 예나 지금이나 별로 줄어들지 않고 있다. 통계청은 유병(有病) 기간을 기준으로 하여, 2015년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남자 65세, 여자는 66세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도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사망하기 전, 14~20년간을 병석에 누워 지낸다는 것이다. WHO는 한국인의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질병으로 5가지를 꼽고, 이에 대한 예방 활동을 주문하고 있다. 그 다섯 질환은 ①우울증·불안증 등 정신질환, ② 척추디스크·관절염 등 근골격계(筋骨格系) 질환, ③당뇨병, ④협심증‧심근경색증 등 심혈관(心血管) 질환, ⑤폐렴·감기 같은 전염성질환 등이다.

 

사람이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는 70% 이상이 본인의 책임에 달려 있다. 보건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수명의 30%만이 유전(遺傳)과 관련이 있고, 50%는 개개인의 생활방식(life style), 나머지 20%는 개인의 경제적 사회적 능력이 좌우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 잘못된 생활습관이 오랫동안 쌓이다 보면 노년에 몸에 탈이 난다는 뜻이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비만 등과 같은 ‘생활습관병’이 그런 질환이다.

 

생활습관병이 심각해지면 암과 뇌졸중, 심근경색증 등 치명적 질병으로 발전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한 번 몸에 붙은 습관은 쉽게 바꾸기 힘들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좋은 생활습관으로 추천하는 3가지는 ①올바른 식습관 ②운동 습관 ③금연과 절주 등이다. 한국인은 80세가 넘으면, 암에 걸릴 확률이 34%, 치매에 걸릴 확률이 20%에 달한다고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세 가지 생활습관을 꼭 실천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이나 금융회사들은 노후에 들어가는 생활비, 의료비, 상속계획 등과 같은 재무설계(financial planning)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노후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재무적인 문제를 넘어서서, 여가활동과 건강관리 등 비(非)재무적인 준비를 종합적으로 포함하는 생애설계(life planning)를 할 때가 되었다. 생애설계는 은퇴 후 삶의 목적을 결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실천하는 계획을 말한다. 노후준비가 단순한 재무설계를 뛰어넘어야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은퇴설계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