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작된 일상의 디지털 에이징

#장면1. 추석 명절을 앞두고 지인들과 온라인으로 모임을 가졌다. 코로나19 때문에 그간 만남이 뜸했던 사람들과 가볍게 안부를 묻는 ‘온라인 티타임'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이번 추석엔 어디 가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이번 명절엔 양가 부모님들과 온라인 가족모임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인 부부의 동생들이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줌(Zoom)에 접속하는 ‘기술자' 역할을 하기로 했고,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 대화 주제나 간단한 프로그램 같은 것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뉴스에서나 보던 사람들이 가까운 데에 있었다며 다들 놀라워했다.

 

 

#장면2. 장모님이 ‘당근마켓’을 시작했다. 월 이용자 수 1,000만 명을 넘기며 유명해진 지역기반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을 말이다. 집에서 안 쓰는 소파를 팔기 위해 마켓에 사진을 올리고 거래 중이라고 하셨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자연풍경 사진을 종종 보내주시긴 했지만, 당근마켓 앱에 중고제품을 올리고, 구매자와 소통하고, 만나서 거래를 진행하는 장모님의 모습은 사실 상상이 잘 안됐다. (장모님이 첫 거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있는 요즘, 50+세대가 디지털 도구로 새로운 방식의 소통에 참여하는 장면들이다. ‘그래도 어떻게 온라인으로 모이냐?’, ‘나는 스마트폰으로 복잡한 건 못한다'라며 아날로그 세상에 머물던 50+세대. 이들이 디지털 공간으로 향하는 걸음이 가속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디지털 기술을 배워 잘 쓰며 나이 듦‘을 뜻하는 ‘디지털 에이징(digital aging)'이란 용어가 50+세대에게 더욱 중요한 개념이 되고 있다. 고령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활동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며,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방안과 전략을 뜻하는 ‘디지털 에이징’은 확실히 앞으로 중요한 사회적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시대, ‘활기찬 노년'의 커뮤니티 생활은 어떻게 가능할까?

50+세대의 활동 현장에서는 아직 디지털 에이징이 쉽진 않아 보인다. 얼마 전 필자는 ‘코로나19 시대의 50+커뮤니티 활동'에 관한 회의에 다녀왔다. 이 회의에는 커뮤니티를 직접 운영 중인 50+당사자들이 참석했는데, 오프라인 모임을 못하니 커뮤니티 활동이 어려워졌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곳에 모여 이야기 나누고, 활동하던 커뮤니티 활동이 멈춘 것이다. 적극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던 사람들일수록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의 타격을 받았다. ‘액티브 에이징(active aging, 활기찬 노년)’을 지향하며 활기찬 커뮤니티를 꾸리고 있던 분들이 오히려 더 위축된 상황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활기찬 노년 생활에 있어서 관계를 두텁게 하고 활동을 확장할 수 있는 커뮤니티 활동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참석했던 회의에서도 느꼈듯이, ‘커뮤니티 활동’은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위축되고 있는 노년 활동 중의 하나이다. 서두에 언급한 장면들처럼 커뮤니티도 디지털로 전환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교육, 쇼핑, 정보이용 등 개인 활동은 디지털 전환이 비교적 쉽지만, 다수 구성원들이 소통하고 협력해야 하는 커뮤니티 활동은 아직 디지털 전환이 더디게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50+세대의 커뮤니티 활동을 어떻게 디지털 공간에서 이어갈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해볼 수 있을까? ‘액티브 에이징', ‘활기찬 노년의 삶'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디지털 커뮤니티 활동을 나의 삶과 별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능동적으로 하고 있는 활동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커뮤니티 활동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고 온라인 공간에서도 시도한다는 관점으로 활동을 확장해보는 것, 조금 느리더라도 탐색과 실험을 통해 스스로 경험하다보면 두려움을 줄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활기찬 디지털 커뮤니티를 시작하고자 하는 50+세대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개인의 회복과 느슨한 디지털 커뮤니티

느슨한 개인들의 디지털 커뮤니티를 시작해보자. 코로나19로 인해 멀어져서 아쉬운 관계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멀어져서 마음이 편안해진 관계도 있다. 심리학자 최인철은 한 칼럼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관계의 재구성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 내가 억지로, 의무적으로 참여해온 사회적 관계들을 재고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관계와 나의 정체성, 자기실현을 위해 필요한 관계를 분리하고 재배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생긴 관계망의 여유 공간을 ‘느슨한 개인주의자들의 커뮤니티’로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따로 또 같이, 느슨하게 연결된 커뮤니티를 만들 때 디지털 기술의 장점이 빛을 발한다. 한날한시에 모이지 않더라도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 가능한 디지털 커뮤니티는, 고독을 즐기는 개인주의자들이 느슨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데 좋은 장이 되어준다. 관계를 끈끈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자율적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느슨한 디지털 커뮤니티는 생애주기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그로부터 삶의 전환을 모색하는 50+세대에게 자유로운 실험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나에게 잘 맞는 ‘디지털 연장통’ 만들기

호기심어린 눈으로 디지털 도구를 써보고 커뮤니티 활동에 활용하자. 거듭 말하지만, 디지털 서비스나 기술이 아니라 나의 활동, 커뮤니티의 활동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나의 활동을 디지털 도구에 끼워 맞추지 말자. 사람들이 많이 쓰는 서비스를 따라 쓰는 게 아니라, 내가 활동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찾아보고 가볍게 써보자. 그리고 쓸 만한 것들만 나의 연장통에 차곡차곡 모아보는 것이다.

 

우선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도구를 생각해보고 그 쓸모를 재발견해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화상 모임을 할 때 굳이 줌(Zoom)이나 웹엑스(Webex) 같은 전문적이고 비용이 드는 서비스가 아니라 카카오톡 화상통화 기능을 쓸 수도 있다. 사실 도구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도구를 평가하고 자기가 필요한 곳에 적절히 쓰는 역량과 태도이다. 칼 손잡이로 마늘을 빻고, 두꺼운 대학 전공서적을 냄비받침으로 쓰듯이, 우리는 디지털 도구의 제공자가 의도한 것과 상관없이 내 뜻대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다른 대화는 금지되고 ‘짤’(웃긴 사진이나 그림)만 올리며 소통하는 ‘고독한 카톡방’ 놀이, 아무도 사지 않을 것 같은 이상한 중고물건이나 귀여운 반려동물 사진을 올리며 즐거워하는 당근마켓 사용자들처럼 대중적인 서비스들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이용하고, 거기에 더해 놀이의 공간으로도 쓸 수 있다.(기업들은 이러한 사용자들의 행태를 관찰해서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힌트를 얻기도 한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커뮤니티 활동에 있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방식이 다양하고 기발해지고 있다. 디지털 도구를 부분적으로만 쓰거나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섞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화상회의 공간에 접속해서 몇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각자 자신의 일이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는가 하면, 만들기 재료와 간식을 참가자들의 집으로 배송해주고 온라인 예술 교실을 진행하는 방식이 꽤 보편화되어 있다. 물론 새로운 방식의 발견에는 언제나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피로감과 좌절감을 맛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 자체도 커뮤니티에서 함께하는 즐거운 활동의 과정으로 본다면 어떨까? 디지털 도구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새로운 활동 방식을 상상해보고, 조금만 공부해서 시도해 보자. 호기심을 갖고 상상하고 실행하다보면 더 재밌고 풍부한 활동을 벌이는 커뮤니티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부담은 줄이고 임팩트는 키우는, 사회참여 디지털 커뮤니티

50+세대의 사회참여 커뮤니티를 디지털 커뮤니티로 만들어보자. 액티브 에이징을 지향하는 50+세대는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사회공익 활동에 참여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다. 한 사회의 도움을 받아 쌓아온 자신의 경력과 전문성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마음이 사회참여 커뮤니티 활동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2019년까지 활동 한 커뮤니티 332개 중 공익⋅사회공헌 커뮤니티는 20.8%를 차지했다. 이러한 사회참여 커뮤니티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 사람을 모으고 협력하는 데 디지털 커뮤니티를 활용할 수 있다. 다수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무한히 확장할 수 있고, 활동이 자연스럽게 기록으로 축적될 수 있는 등 디지털 기술의 장점이 사회참여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쓰레기덕질'이라는 디지털 사회참여 커뮤니티에서 운영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하고 있다. 쓰레기덕질은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디지털 커뮤니티이다. 플랫폼에 가입하면 누구나 대화와 활동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인 이곳에서는 일상에서 쓰레기를 줄이고 싶은 개인들의 고민부터, 기업의 무책임한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을 고발하는 문제제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오고 간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의식과 관심에 맞는 소모임에 참여하여 프로젝트 활동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쓰레기덕질 사람들은 프랜차이즈 카페의 플라스틱 일회용 컵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여서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금지 정책을 만들고,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부활시키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처럼 디지털 커뮤니티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공감을 나누며, 혼자서는 하기 힘든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기쁨의 활동을 위한 공공의 인프라 만들기

코로나 시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위축된 50+커뮤니티 활동을 디지털 커뮤니티로 되살려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모든 50+세대가 지금 당장 디지털 커뮤니티를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세대는 그 세대만의 보편적인 소통 기술과 문화가 있는데, 장년층에 접어들며 디지털 시대를 맞이한 50+세대는 디지털 도구의 자연스러운 학습과 활용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 면에서 ‘50+세대가 어떻게 디지털 커뮤니티를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개인이 풀 문제라기보다는 공공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문화연구자 엄기호와 응용언어학자 김성우는 『유튜브는 책을 집어 삼킬 것인가』에서 일반적으로 ‘읽고 쓰는 문해력'으로 풀이되는 ‘리터러시(literacy)’를 “경쟁의 도구가 아닌 공공의 인프라로,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가 누리는 기쁨의 활동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2 디지털 커뮤니티를 위한 리터러시 또한 공공의 인프라와 기쁨의 활동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적절한 디지털 플랫폼을 찾고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기술과 같은 디지털 커뮤니티에 관한 리터러시가 존재한다. 이러한 디지털 커뮤니티에 관한 리터러시를 공공의 인프라로 구축하고 다양한 실험과 사례를 발굴하여 공유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비영리적 목적, 공적 가치에 기반을 둔 커뮤니티 플랫폼을 시민과 공공이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앞으로 50+세대의 디지털 커뮤니티 활동이 ‘기쁨의 활동’이 될 수 있게 하는 공공의 인프라가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1 최인철, “[마음 읽기] 내성적인 사람이 온다.” 중앙일보 칼럼. 2020.07.01. https://news.joins.com/article/23814359

2 김성우⋅엄기호(2020),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따비.